전쟁이 쏘아올린 에너지난·식량 위기, 세계 경제를 흔들다

[러-우크라 전쟁 1년 기획③]
현실화된 경기둔화…에너지 대국 러시아·곡창지대 우크라 전쟁에 물가 폭등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선진국보다 경제력 취약한 나라들 피해 더 커
고금리·보호무역으로 대응하는 각국들…세계경제 추가 위축 우려도

연합뉴스·류영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美무능, 中묵인, 푸틴이 지른 우크라전 1년…전세계 고통 가중
②우크라이나 전쟁 후 펼쳐질 '新 국제질서'의 모습은?
③전쟁이 쏘아올린 에너지난·식량 위기, 세계 경제를 흔들다
(계속)
"향후 한국 경제가 슬로플레이션(Slowflation)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열흘 만인 지난해 3월 6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 슬로플레이션 가능성 점증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슬로플레이션이란 경기회복 속도가 느린 상황임에도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가리키는 경제용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 보고서를 통해 국제 교역 위축, 원자재 가격 급등, 한국의 수출 경기 하강, 경상수지 악화, 내수시장 침체를 전망했다.
 
이 전망은 발표 당시로부터 1년 가까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모습이다.
 
지난 17일 기획재정부는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내수 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부진 및 기업 심리 위축이 지속되는 등 경기 흐름이 둔화하고 있다"며 경기둔화를 처음으로 인정했다.
 

정부 "경기 흐름 둔화" 첫 인정…세계 에너지·곡물 책임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물가 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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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은 원자재 시장에서 가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기관인 비주얼캐피탈리스트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1년 기준 미국에 이어 세계 3대 산유국에 이름을 올렸다. 일일 산유량은 1094만4천 배럴로 2위인 사우디아라비아의 1095만4천 배럴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러시아는 천연가스(LNG)에서도 2021년 기준 701.7bcm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이는 3~5위이니 이란과 중국, 카타르의 생산량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수치다.
 
세계 2~3위 산유량과 천연가스 생산량을 자랑하던 러시아가 직접 전쟁에 나선 탓에 전세계 에너지 공급망은 대혼란을 피하기 어려웠다.
 
한국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전 하루평균 1억120만 배럴이 전망됐던 세계 원유 공급량은 전쟁 이후 1.3%나 감소하며 9990만 배럴 수준으로 하락했다.
 
공급 부진은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지난해 원유 가격은 기존 전망치인 76.7달러를 29.1%나 상회한 99.0달러로 상승했다.
 
천연가스 가격 또한 당초 전망치인 3.84달러/MMBtu보다 70.1%나 높은 6.54달러/MMBtu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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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지표인 네덜란드 TTF선물은 지난해 8월 340유로/MWh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후 이번 달이 돼서야 50유로/MWh로 진정됐다.
 
예년보다 따뜻했던 날씨로 인해 예상보다는 가격상승이 크지 않았다고 하지만 러시아의 병력 집결 전인 2021년 2월의 15유로/MWh보다는 여전히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 세계 밀의 3분의 1, 옥수수의 5분의 1을 생산하는 곡창지대인 탓에 곡물 가격이 급격히 오르는 현상도 일어났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쟁 직전 130대를 유지하다가 지난해 3월 159.7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다시 131.2로 낮아졌지만 2020년 6월의 93.3에 비하면 여전히 40%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인접국 20% 안팎, 의존도 높은 국가는 50%대 인플레…가난한 나라가 더 큰 피해 입어


독일 베를린에서 한 여성이 상점 앞을 지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같은 에너지와 식량난은 세계 모든 국가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의하면 전쟁 후 물가상승률은 당사국인 러시아가 11.8%, 우크라이나가 26.0%로 나타났으며, 인접지역인 동유럽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물가상승률 또한 10~20%대의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의존도가 높았던 튀르키예와 이란은 각각 57.68%, 52.2%로 물가상승률이 50%를 넘어섰고, 이집트도 25.8%나 올랐다.
 
주목할 부분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상황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취약한 국가들의 어려움이 더 컸다는 점이다.
 
지난해 선진국의 물가상승률은 7.3%였던 반면, 신흥국·개발도상국은 9.9%로 더 높았고, 특히 저소득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14.2%로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식량 공급망이 단편적이고 안정성이 떨어지는 아프리카와 중동 등의 피해가 컸다.
 
짐바브웨는 230%라는 믿기 어려운 물가상승률을 기록했고, 베네수엘라 156%, 레바논 122% 등도 세자릿 수 상승률을 겪었다. 러시아 밀의 최대 수입국인 나이지리아는 식료품 가격만 37%가 높아졌다.
 

물가상승이 이끈 긴축정책·보호무역…세계경제 더 위축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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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인플레이션은 각국의 긴축정책과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이끌고 있어 세계 경제를 지속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은 0%이던 기준금리를 지난해 3월을 시작으로 지난달까지 1년 동안 무려 4.75%p나 높였다.
 
같은 기간 기준금리를 2.25%p 올린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들도 고금리 정책을 펼치면서 유동성은 줄어들었고, 대출 이자에 대한 부담은 커졌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수십 년에 걸쳐 경제적 통합이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지리 경제학적 분절화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7%, 일부 국가는 8~12% 가량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1.7%로 1.3%p 하향 조정했는데, 이는 지난 30년 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2020년에 이어 가장 낮은 수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가격 등에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에 한국을 비롯해 모든 나라들이 이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불확실성이 크긴 하지만 전쟁이 지속된다면 아무래도 회복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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