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탄 후 싱글 '살아있는 것들'을 시작으로 첫 정규앨범 '죽은 척하기'까지, 꾸준히 음악 작업을 해 온 싱어송라이터 해파. 그는 지난 1일 자신의 트위터에 '카운팅 공연'에 관한 문제의식을 밝힌 후 앞으로도 이 같은 정산 방식의 공연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알렸다. 올해 초 서울의 한 공연장에서 다른 팀과 함께한 공연에서 음악을 들려주고도 보수를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1월 말이 되어도 공연비가 지급되지 않은 것 같아 공연장에 연락했더니 '정산은 완료됐다'는 답을 들었다. 해파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해당 공연은 관객에게 '응원하는 가수(팀)'를 묻고 지목 여부와 횟수에 따라 공연비를 지급하는 '카운팅 공연'이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공연장 측의 사전 고지는 없었다.
해파는 3일 CBS노컷뉴스에 "무언가 뜻을 가지고 공개한 건 아니"라면서도 "홍대 소규모 클럽의 '카운팅 정산' 방식이 이전에도 몇 번 화두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 정도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처음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전부터 카운팅 정산에 불만이 있던 뮤지션들과 관계자들의 의견이 모이고 또 '응원하는 뮤지션' 질문에 무심코 답변했던 관객들에게 이 질문이 어떤 의미인지 알리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관객에게 지목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급 노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공연자에게 돌아갈 최소한의 보수는 마련해야 한다는 비판이 줄곧 나오고 있다. 관행적으로 일어난 일이더라도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부분이 아니냐는 문제의식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카운팅 공연을 하지 않을 경우 신인이나 인지도가 낮은 뮤지션에게는 공연할 기회가 더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금까지 두 번의 카운팅 공연을 참여하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정산금을 받았다는 해파는 "정산받은 후 제일 먼저 '여기선 이제 나를 안 부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저희보다 많은 정산금을 가져간 팀은 그 기획처와 이후에도 공연했고, 저희는 공연 제의를 받지 못했다. 카운팅을 하든 동등 분배를 하든 모객력이 높은 팀의 공연 기회가 많아지는 것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이번 일은 '카운팅 정산'을 당사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해파는 "제가 모든 공연장을 경험해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카운팅 정산 방식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단정해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응원하는 한 팀만 골라야 하는 그 질문의 의미를 (공연장 쪽에서) 뮤지션과 관객에게 더 투명하게 알렸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해당 공연장과의 연락에서 '다른 뮤지션에게도 카운팅 공연으로 정산된다는 것'을 꼭 미리 설명했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한 이유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영기획 소속 김새녘도 해파가 공연한 공연장으로부터 섭외받을 당시 '아티스트별로 카운팅 후 보수가 따로 지급되는 공연'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이후 공연장 측으로부터 사과받았으나 "함께하는 아티스트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 결국 공연은 취소됐다.
공연장 측은 같은 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섭외 단계에서 정산 방식에 대해 고지가 충분하지 못했던 점은 명백히 공연장 측의 과실"이라며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며 앞으로는 섭외 단계에서 해당 부분에 대해 명확히 고지하도록 하겠다"라고 알렸다.
공연장 측은 주류나 음료 판매 없이 순수 공연 수익으로만 운영되는 점을 언급한 후 "대부분의 공연에서 공연장 측의 노동은 마이너스 노동이고 월세나 시설 유지비도 보존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지금까지 모든 공연을 5:5 이상, 4:6에서 최대 3:7로 뮤지션 측에 더 많은 수익을 드려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객들이 해당 뮤지션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문화로 변모한 시대에 라이브 클럽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공연을 잘 만들어주는 정도의 역할뿐이다. 이러한 상황이 정산 문화에도 반영되는 것이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공연장 측은 평소 개별 정산(카운팅 공연의 정산 방식)하고 뮤지션이 기획자인 경우 등 몇몇 공연에서 공동 정산을 해 온 지금의 방식을 유지하되, '개별 정산'이라는 점을 섭외 과정에서 좀 더 명확히 밝히도록 주의하겠다고 강조했다.
공연장 벨로주를 운영하는 박정용 대표는 3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관행이라는 이름 뒤에 숨지는 않아야 한다"라면서도 "이 방식이 사전에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 되었고 출연팀들이 동의했다면 그 자체로 도덕적인 지탄을 받아야 할 방식 또한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썼다.
해파와 영기획이 문제 제기한 공연은 '기획 공연'이지만, 홍대 라이브 클럽의 '일상 공연'에서 '카운팅 정산'은 나름의 고민 끝에 나온 방식일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박 대표는 "많은 팀들이 출연하고, 그 홍보를 공간이 떠맡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카운팅 정산 방식 또한 나름의 고민을 통해 지켜온 운영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실제 그렇게 운영을 해도 임대료 내기조차 빠듯한 상황일 것"이라며 "시장의 크기가 그대로여서 생기는 문제이고, 이는 생태계 구성원들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해파와 영기획 역시 '왜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지지하는 음악가들과 관객들을 서로 갈라놓느냐는 문제의식'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 같다고 바라본 박 대표는 "이런 카운팅 정산 방식은 낡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방식이 아니라 음악가들과 관객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을 고민하고 기획하는 게 맞다. 그런 고민을 하는 곳이라면 응원해 주셨으면 한다"라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