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살인미수 사건의 '피해자'가 경찰이 감식한 차량에서 범행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흉기를 발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재판 과정에서 이 흉기가 실제 살인미수 사건의 범행 도구로 드러났다.
당초 경찰이 범행 도구라고 제시했던 흉기는 피의자의 '자해'에 사용된 것으로 나타나 "경찰의 수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피해자가 발견한 흉기가 범행도구로…공소장 변경
이모(52)씨는 지난해 8월 3일 오전 11시 50분쯤 전북 정읍시 연지동의 한 은행 앞에 세워진 카니발 차와 그 앞에서 A(38)씨와 그의 남편 B(41)씨을 흉기로 찌른(살인미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씨는 B씨의 목 등을 수차례 찌르고 A씨의 쇄골을 찌른 뒤 B씨 소유의 카니발 차를 타고 도주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범행 발생 1시간 40여분 뒤 호남고속도로 서대전 IC인근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이씨는 경찰과 대치 중에 흉기로 스스로 목을 찌르는 등 자해를 시도했다. 경찰은 이씨가 자해에 사용한 흉기(1번 칼)를 살인미수 사건의 범행도구로 판단하고 흉기 등 증거 전반을 검찰에 넘겼다.
그런데 이 사건 피해자 B씨가 이씨가 도주에 사용한 자신의 카니발 차량을 정리하던 가운데 차량 팔걸이(조수석 쪽)에서 또 다른 흉기(2번 칼)를 발견했다. 피해자는 "'2번 칼'이 살인미수 사건의 흉기, 피해자를 찌르는 데 사용된 범행 도구"라고 주장했다.
재판 과정에서 "'2번 칼'이 범행에 사용된 도구"라는 피해자의 말은 사실로 밝혀졌다.
전주지법 정읍지원에 따르면 '1번 칼'의 칼날에서는 피고인의 DNA형이, 손잡이에서는 피고인과 피해자 B씨의 DNA형이 발견됐다. '2번 칼'의 칼날과 손잡이에서는 피고인과 피해자들의 DNA형이 각각 검출됐다.
검찰도 '1번 칼'은 범행 뒤 피고인이 자해하는 데 사용됐고, 피해자가 찾은 '2번 칼'이 살인미수 범행에 이용된 것으로 봤다. 검찰은 '2번 칼'을 범행도구로 공소사실을 변경했다.
결국 경찰은 실제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차량에 있었으나 감식까지 하고도 이를 찾지 못하는 실책을 범했다.
경찰, 명백한 부실 수사에도 책임은 無
감식까지 한 차량에서 피해자에 의해 흉기가 발견되는 명백한 부실 수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전북경찰청은 지난해 9월 1일 부실 수사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1번 칼'을 국과수 감식한 결과 피고인 이씨의 혈흔만 발견됐을 뿐 피해자의 혈흔은 나오지 않았다"며 "사건 증거 기록을 모두 확인하는 등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법조계에선 "경찰이 수사를 성급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의자의 자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자해에 사용된 흉기인지 살해에 사용된 흉기인지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진상 확인만 했을 뿐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 감찰은 진행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도구를 발견하지 못한 잘못은 있지만 피의자(이씨)의 범행에 대해 증거가 부족해 수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없다"며 "업무를 태만히 한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이씨는 전주지법 정읍지원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A씨와 내연관계를 의심하는 B씨가 1억 5천만 원의 위자료 전액 지급을 요구하며 합의각서를 써주지 않자 범행을 저질렀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공격할 의도로 칼을 준비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며 "피해자가 다행히 생명을 보전했으나 신체 여러 곳에 상처를 입는 등 피해가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