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참사 100일을 앞두고 이태원 상권은 여전히 참사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상인들은 코로나19에 이어 참사로 침체된 상권 분위기 속에 고통을 호소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14명 직원, 참사 후 2명만 남아…책임 회피하는 정부 시간끌기에 서민만 죽어나"
지난 2일 오후, 취재진이 찾은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는 군데군데 외국인 관광객과 데이트를 하러 온 연인들의 모습이 보였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 한산한 모습이었다. 그간 빚더미를 떠안은 상인들은 어떻게든 상권의 활기를 북돋기 위해 조명을 밝히고 음악을 틀었다.지난해 6월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식당을 연 권구민(27)씨는 "월세만 1천만 원이 넘는데 참사 이후 매출이 한 달 내내 300만 원에 머물렀다"며 "직원은 14명이었는데 현재 2명밖에 안 남았다"고 말했다.
이태원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정모(28)씨는 "참사 이후 매출의 80%가 줄었다"며 "'이태원은 사고 터진 곳, 놀러 가기 힘든 동네'라는 사람들 인식 때문에 장사하기 더 힘들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나마 테이블이 5개 남짓 되는 작은 만두 가게는 식사 시간 대에는 손님들이 자리를 채웠다. 이곳을 7년째 운영해온 정순화(63)씨는 "우리는 그나마 음식 장사라 조금 나은데 클럽하고 바엔 손님이 없다"며 "한두 집 잘돼봐야 시장이 살아나는 게 아니니 같이 살아야 한다"며 걱정했다.
정부는 지난해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피해에 대한 특별 지원대책을 내놨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용산구는 재해 중소기업(소상공인) 특례보증, 이태원 상권 회복자금, 긴급 중소기업 육성기금 등으로 지난 1월 17일까지 109억여 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지역상인들은 이마저도 몇 달밖에 못 버티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태원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건우(31)씨는 "3천만 원을 대출받았는데 직원 월급 400만 원, 가게 임대료 400만 원, 재료값 300만 원에 유지비용까지 들어 두 달밖에 못 버틴다"며 "정치적으로 너무 질질 끌고 정부와 구청, 경찰까지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니 지금 이태원 상권 자체가 결딴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생계를 위해 가게 문을 닫고 배달하러 다닌다는 상인도 있었다. 유모 씨는 "참사 이후 하루에 몇만 원도 못 팔아 인건비도 감당 안되고 세금도 못 내고 있다"며 "상권이 회복할 기미가 안 보이니까 살려고 배달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참사 현장 골목길에서 10여 년간 잡화점을 운영한 남인석(81) 씨는 "이태원은 이 사건 터진 이후로 장사 맥이 딱 끊어진 것 같다"며 "재난지역으로 선포했으면 현장에 나와서 어떻게 도와줄 건지 파악해야지, 그런 것도 없이 정부는 시간만 끌고 있고 서민들만 죽어난다"고 한탄했다.
손님이 없어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가게 문을 연다는 남씨는 "전쟁 이후 폐허 같은 기분"이라며 "내가 불을 끄면 골목이 컴컴한 게 싫다"고 말했다. 그는 "이태원이 좋아서 찾아준 젊은이들 159명의 죽음이 안타깝다"며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사고가 다시 나지 않게 정부가 나서서 추모공간을 조성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사고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억하는 공간 만들어야"…'안전한 이태원' 거듭나기 노력도 이어져
이태원 지역주민들도 답답함을 호소하긴 마찬가지였다. 10여년 넘게 이태원동에 살고 있는 권모(54)씨는 "나라에서 윗사람들은 그대로 있고 밑에 사람들한테만 책임 묻는 게 화가 난다"며 "그냥 불쌍한 시민만 죽음을 당한 것 밖에 안 되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참사 이후 이날 처음 세계음식문화거리로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온 주민 이성일(66)씨는 "옛날보다 많이 황량해졌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장사하시는 분들은 또 살아야 되니까 활달한 분위기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도와 원칙을 잘 지켜서 이런 참사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이 (제도의 부재로) 돌려지는 사회 분위기가 안됐으면 좋겠다"는 뜻도 밝혔다.
현장을 지나던 주민 허모(24)씨는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짧게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는 "20대 청춘들이 놀러 왔다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데에 짧은 애도를 표했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추모공간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참사로 친구를 잃은 허민영(22)씨도 이날 이태원에 왔다가 추모공간을 찾았다. 허씨는 "사고 소식을 두 달 뒤에 듣고 충격받았다"며 착잡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참사를 계기로 이런 대규모 인원이 몰리는 행사가 있을 때 정부에서 대책을 세워서 사람들이 즐길 걸 즐기면서도 불시에 어떤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방지할 수 있는 그런 책임을 갖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대구에서 이태원까지 와 추모공간을 찾았다는 전수현(27)씨는 "뉴스로 보고 이 거리가 어떤지 궁금해서 와봤다"며 "나라에서 이 지역을 관리해야 하는데 안전에 유의하자고 말만 하고 개선이 안 되는 모습이 안타깝고, 대책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참사 추모공간을 이태원 지역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자는 시민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근처 한강진역에 들렀다가 일부러 이곳까지 걸어왔다는 권민재(27)씨는 "직접 와본 일은 처음인데 골목도 엄청나게 좁고, (추모공간에 놓인) 가족이나 지인에게 쓴 편지가 많은데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한 기분"이라며 "이런 추모공간을 지자체에서 나서서 만들어 오히려 숨기지 말고 드러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모공간을 찾은 이진우(30)씨도 "실제로 이 공간에 와보니까 사람들 각각의 사연이 있어서 마음이 더 안 좋다"면서도 "이런 사고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계속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 이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이 만난 상인들은 상권 침체로 고통을 호소했지만, 상권을 다시 살려낼 방안도 고민하고 있었다. 이태원이란 공간은 이들에게 "죽을 듯이 열심히 사는" 곳이다.
이태원 상인 권구민씨는 핼러윈 참사 100일 즈음 이태원 지역 일대에서 열리는 자선 콘서트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는 "압사 사고는 언제 어디서 또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라 상인들도 참사로 인해 경각심을 갖게 됐다"며 "지역상인이 준비하는 자선 콘서트를 통해 이태원이 안전한 공간으로 거듭났다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시 이태원에 올 수 있게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상인 김건우씨는 "이태원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유롭고 어떤 방식으로 장사해도 다 되는 재밌는 곳"이라며 "대한민국에 또 하나의 나라 서울이 있다면, 그 나라 안에 또 하나의 외국이 있는데 그게 이태원"이라며 지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상인 남인석씨도 "이태원은 개성 있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창조적인 공간"이라며 "참사 현장을 보존하되 지역을 다시 살리는 방향으로 문화공간이 조성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