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한국인 최초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3위 입상, 1995년 서울대 음대 최연소 교수 임용,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 재직.
피아니스트 백혜선(58)의 이력이다. 이력만 보면 음악가로서 성공가도를 질주했을 것 같지만 알고보면 실패한 경험이 훨씬 많다. 최근 펴낸 첫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다산북스)는 그가 맛본 좌절의 순간들이 빼곡하다.
199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백혜선이 피아노 앞에 앉자 관객들은 비웃음을 지었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피로하고 무관심했다.
백혜선은 30일 서울 강남구의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열린 '나는 좌절의 스페설리스트입니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동양인 남성 연주자가 콩쿠르 무대에 오르면 관객들이 원숭이 구경하듯 했다. 동양인 여성 연주자가 나오면 더 심했다"고 회상했다.
그때 스승인 변화경의 말을 떠올렸다. "오늘 무대 위에서 네가 할 일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거야."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연주가 끝난 후 백혜선이 마주한 건 끊이지 않는 박수갈채였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위 없는 3위에 입상한 직후 서울대 음대 최연소 교수가 됐지만 10년 만에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음악은 귀로 하는 건데, 귀를 망치는 환경에서 음악을 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외국에서 승부를 보자'. 호기롭게 사표를 내고 미국행 비향기를 탔다. 홀로 두 자녀(1남 1녀)를 키우며 생계형 피아니스트로 살았다. "7~8년간 지방을 돌면서 연주만 했어요. 인생을 포기할 생각도 했죠." 백혜선은 이후 클리블랜드 음악원 교수를 거쳐 현재 모교인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변화경 선생님이 늘 '자서전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책 출간을 결심한 건 저와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죠. 지난 몇 년간 어머니를 포함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떠나보냈어요. '세상에 영원한 건 없구나' '하루하루가 굉장히 소중하구나' 느꼈죠." 백혜선은 울먹거렸다.
최근 한국 클래식 음악계는 젊은 천재들이 쏟아지고 있다. 백혜선은 "K클래식의 부흥을 이끄는 임윤찬, 조성진 등을 보면 자랑스럽다"면서 "나이 들어가는 연주자가 할 일도 분명히 있다. '가슴을 울리는 음악', '좋은 책을 읽은 것 같은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 책 출간을 기점으로 연주자로서 국내에서 더 활발히 활동할 계획이다. 4월 독주회(서울 예술의전당)를 열고 11월에는 인천시립교향악단과 브람스 협주곡을 협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