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학살 100년인데 정부는 뒷짐…추념식도 없이 잊혀진 원혼

대지진 희생양 삼아 조선인 수천명 살육…드라마 '파친코'에도 등장
일본 정부는 관여 사실 부인하지만 日변호사협회 등은 사죄 권고
정부는 올해도 추념행사 '0'…박진, 인사청문회 땐 "필요조치 하겠다"

연합뉴스

올해로 일본 간토(관동) 대지진과 이로 인한 조선인 학살 100주기를 맞게 됐다. 하지만 정부는 일본의 진상 규명과 사죄 요구는커녕 최소한의 추념식조차 없이 방치하고 있다.
 
30일 외교부와 주일본대사관에 따르면 올해 간토 학살 100주기와 관련한 정부 차원의 추념행사 계획은 전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부는 "우리 정부는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포함한 과거사 문제 관련 일본 내 동향을 주시하며 수시 파악하고, 일본 측에 과거를 직시할 것을 촉구해오고 있다"면서도 특정 사업 내역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간토 학살은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 등 간토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7.9의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이 재일조선인을 희생양 삼아 무참히 살해한 만행이다. 
 
무고한 조선인 6천여명과 중국인 800여명이 집단 학살된 참극으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식의 유언비어가 유포되는 등 일본 당국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지난해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드라마 '파친코'에서 끔찍한 참상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여론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개입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일본변호사연합회는 2003년 자체 조사를 통해 당시 일본군대와 자경단에 의해 자행된 학살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할 것과 진상 조사를 권고했다.
 
독립기념관 제공

그러나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추념식조차 열지 않는 등 철저하게 무관심으로 일관해왔다.
 
매년 9월 1일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주최하는 추념식에 주일대사가 참석하는 게 전부일 뿐, 그나마 대사가 추념사를 낭독한 일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친북 성향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와 일본 민간단체, 한국 시민단체까지 모여 함께 추념식을 개최했다. 
 
하지만 윤덕민 대사는 한일관계 영향을 우려한 탓인지 별도 장소에서 열린 민단 추념식에 참석함으로써 뒷말을 낳았다.
 
연합뉴스
[이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2017년부터 중단하긴 했지만, 그 이전에는 극우 성향의 전임자들까지 예외 없이 요코아미초 공원 추념식에 추념사를 보냈던 것과 비교된다.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 추진위원회 김종수 집행위원장은 "90주기 때부터 정부가 나서달라고 꾸준히 요청해왔지만 보수‧진보 정권을 떠나 단 한 번의 추도식도 하지 않은 것은 국가로서 매우 부끄럽고 해외 국민들에게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사건 발생 100주기라는 상징적 계기를 맞아 일본 정부의 국가책임 인정과 한국 정부의 진상조사 착수 등을 요구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축이 된 관련 특별법도 19대 국회에선 불발됐지만 이번에 입법이 재추진되고 있다.
 
간토 학살은 일본군 위안부나 일제 강제동원 문제와 비교해도 잔학성이 큰 반인류적 범죄다. 그럼에도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정확한 희생자 숫자조차 파악되지 않은 것은 한일관계 차원을 넘어 인류사의 오점이라 할 수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 윤창원 기자

이와 관련,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5월 인사청문회 때 간토 대학살과 관련한 유 의원의 질문에 "앞으로도 정부 차원의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 특별법에 대해서도 "(법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는 이후 한일관계 복원이라는 국정목표를 앞세우고 일제 강제동원 배상 해법을 서두르며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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