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왜 주한미군 필요하다 했나? 폼페이오 회고록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10월 7일 당시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오찬을 함께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내면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한반도가 중국의 변방지역이 된다는 의견을 미국 측에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은 24일(현지시간) 발간한 회고록 '한 치도 물러서지 말라, 내가 사랑하는 미국을 위한 싸움'에서 역사적인 평양 방문과 북미정상회담 등의 후일담을 자세히 기록했다.
 
차기 미국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면서 내놓은 국내 정치용 회고록이지만 모두 17개장으로 구성된 책에는 1장부터 17장까지 북한 관련 내용이 곳곳에 상당량 기술돼 있다.
 
이 가운데 제2장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북미정상회담을 열기로 김정은 위원장과 합의한 2018년 3월 30일 첫 만남 당시 상황이 상세히 나와 있다.
 
해당 부분에는 '독재자와의 대화'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CIA국장으로서 평양을 방문한 폼페이오의 방문 목적을 정확히 이해한다'면서 자신은 북한을 더 자급자족하는 국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폼페이오는 김 위원장에게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면 북한의 경제가 숨통이 트이고 외국의 투자가 뒤따를 것'이라는 논리로 받아쳤다고 한다. 
 
2018년 10월 7일 당시 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열린 오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폼페이오는 그러면서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설파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의 길을 걷는다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와는 다르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 비핵화된 북한은 번영할 것이고 북한 체제도 유지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어 중국과 관련해서도 두 사람은 심도 있는 대화를 이어갔다.
 
폼페이오는 "과거 중국이 한반도를 지배했던 기억은 북한의 마음속에 깊이 불타오르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중국은 880마일에 달하는 북한과의 국경을 따라 상당한 규모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논의하는 동안, 김 위원장은 미국이 한국과 일상적으로 실시하는 합동 군사 훈련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나는 또한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중국이 미국 측에 말해왔다고 그(김 위원장)에게 전했다"고 서술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이 중국은 거짓말쟁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폼페이오는 "김 위원장은 중국으로부터 북한을 보호하기 위해 주한 미군이 필요하다, 중국 공산당은 미군이 철수하면 한반도를 티베트와 신장처럼 다룰 것이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폼페이오는 이 대목에서 "정책 입안자들이 알아야 한다"면서 "한반도에서 미국의 미사일과 지상 능력을 확대하는 것은 북한 사람들을 전혀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고 적었다.
 
폼페이오는 당시 김 위원장이 세 가지를 약속했다고 소개했다. 
 
핵무기가 북한 경제적 부담이면서 국제사회에도 북한을 장애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인 만큼 완전히 없애겠다,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하겠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것이다. 
 
자신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회신을 가지고 평양을 재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어 8장에는 두 번째 평양 방문과 1, 2차 북미정상회담 뒷이야기가 자세히 서술돼 있다.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 과정을 설명하면서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결정권한은 김 위원장에는 없고, 중국이 배후에서 행사하고 있다는 취지로 서술했다.
 
또 1차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간의 첫 만남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배석한 볼턴을 가리키며 "존이 문제죠"라면서 김 위원장에게 소개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했다는 것이다.
 
폼페이오는 당시 "존 볼턴이 회담 내내 트럼프 대통령이 가게를 통째로 내줄까 봐 조바심을 냈다"고도 회고했다.
 
폼페이오는 2차 하노이 정상회담을 소개하면서는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합의정신을 깨면서 협상이 결렬됐다는 취지로 주장하며 책임을 김 위원장에 떠넘겼다.
 
협상이 깨지자 통역이 말을 옮기지는 않았지만 김 위원장이 욕설을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폼페이오는 회고록의 마지막장인 제 17장에서는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열린 미국, 한국, 북한 3자 정상 간 만남이 성사된 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각이 달랐던 볼턴 보좌관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이 역사적 만남에 참여하고 싶었다면서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폼페이오에게 여러 차례 직접 전화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만 만나고 싶어 한다고 문 대통령에게 설명했지만 문 대통령은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폼페이오의 이번 회고록은 역사적인 북미간 정상회담의 성사, 진행, 결렬 과정과 관련된 이면의 이야기들이 들어있어서 꽤나 유용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회고록의 제목에서부터 읽히듯이 이 책은 악마화된 북한에 물들어있는 미국 독자들을 겨냥한 '북한팔이용'으로 기획됐다는 비판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제목의 '한 치도 물러서지 말라'는 표현은 2차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양보하지 않았음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회고록 본문에서 사용한 문구다.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즉 '양보'가 필요한 협상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조차 부인하는 그의 비외교적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제목이다.
 
더욱이 그의 회고록에는 북한에 대한 각종 조롱과 경멸, 빈정거림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북한과의 협상을 "뉴욕의 지하철 바닥을 핥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일"이라고 하는가 하면, 김정은에 대해서는 "피에 굶주린 두꺼비"(bloodthirsty toad),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에 대해서는 "내가 만난 가장 고약한 사람"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그가 과연 얼마나 진지한 자세로 임했는지 의심케 하는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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