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단독]빌라왕 섭외 '토스실장'의 비밀…직접 취업해보니 ②무소불위 컨설팅 조직범죄…바지사장·중개사·세입자 '장기판의 말' (계속) |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전세사기 사태는 이른바 '빌라왕' 사건으로 불리지만, 그 '배후 세력'이 누군지를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빌라왕은 명의를 내준 '바지사장'으로 공범에 해당하지만, 판을 주도하는 이들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사태에서 도마 위에 오른 배후는 '부동산 컨설팅 업체'다. 이들은 건축주 등 매도인, 공인중개사, 명의 대여자 등으로 이뤄진 그물을 짜고 세입자가 걸려 들면 리베이트를 나누고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선다.
경찰의 집중 단속이 이뤄지고 있는 현재도 컨설팅 업체들은 '리베이트'를 내걸고 전세사기 '덫'을 놓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업체들은 투자 자문이라는 명목 하에 정부의 감시망에도 벗어나 있어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업체들과 이해관계가 맞는 건축주와 공인중개사 등은 암묵적으로 공모하고 때론 직접 판을 주도하는 식으로 범죄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경찰 단속 와중에도 'R' 내걸고 버젓이 전세사기
"그 젊은 애들이 명패 들고 돌아다니면서 다 그냥 순식간에 가져가 버린거야."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A씨는 컨설팅 업체가 휩쓰는 신축 빌라 시장을 설명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화곡동은 '1세대 빌라왕'으로 불리는 강모(56·구속 기소)씨의 주무대 지역이었다. 수도권 빌라·오피스텔 1139채를 보유하다 숨진 또 다른 '빌라왕' 김모(42)씨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대표 지역이기도 하다.
A씨는 "신축 빌라가 막 들어서는데 분양가도 거품이 낀 상태여서 건축업자보고 '그 금액에 못 판다'고 했다"며 "그러자 갑자기 젊은 애들이 명패 걸고 돌아다니면서 순식간에 신축 빌라를 다 가져가버렸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젊은 애들'은 분양 컨설팅 업체 직원들이다.
컨설팅 업체는 건축주 등 매도인에게 '빌라 거래를 도와주겠다'고 접근하고, 신축 빌라 전세를 적극 광고하면서 공인중개사를 통해 세입자를 구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부동산 컨설팅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동시진행'이라는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챙기고 뒷짐을 진다.
매매가 보다 높은 가격으로 전세를 놓을 수 있는 배경은 신축 빌라 시세를 세입자들이 좀처럼 알 수 없을 뿐더러,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 보증보험이 공시가의 150%까지 허용되기 때문이다. 가령 공시가가 1억 원이라면 1억 5천만 원까지 전세보증을 해준다. 세입자는 "보증보험이 가능하다"는 설명에 별 의심없이 계약을 진행한다. 세입자를 지킬 수 있는 보증보험이 오히려 '역전세'를 가능케 하며 사기에 악용된 셈이다.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경찰은 집중 단속에 나선 상태다. 그런데 현재까지도 컨설팅 업체들은 버젓이 '리베이트'를 내걸고 전세사기의 '덫'을 놓는 것으로 파악된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공인중개사들이 전용으로 쓰는 앱에는 컨설팅 업체들이 올려놓은 매물들을 다수 볼 수 있다. 해당 앱은 공인중개사 인증을 해야 접속이 가능하다. 지난 20일 CBS노컷뉴스가 직접 앱을 들어가보니 매물 주소, 전세가, 간단한 설명 등과 함께 'R+숫자'가 적혀 있었다. 업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R20으로 쓰여 있으면 리베이트 2천만 원이라는 의미"라고 귀띔했다. 공인중개사가 세입자를 구해오면 2천만 원의 리베이트를 챙겨줄 수 있다는 뜻이다.
리베이트가 높으면 그만큼 전세가 '거품'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앞서의 관계자는 "특히 신림동 지역 같은 경우는 R40(리베이트 4천만 원)까지 나온다"며 "단순히 앱만 보고 사기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R이 높은 경우 그만큼 사기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컨설팅 업계에서는 이러한 'R'이 붙은 매물로 세입자를 유인하는 방법이 내부에서 공유되곤 한다. 세입자에게는 상대적으로 비싼 정상적인 빌라들을 보여주다가 "훨씬 좋은 가격에 나온 매물도 있다"고 안내하는 식이다. 이렇게 R이 붙은 동시진행 매물을 보여주고 전세보증보험 가입은 물론 전세대출 이자, 이사비 등을 지원해줄 수 있다고 현혹한다. 만약 세입자가 여기에 걸려들면 전세사기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사기 및 바지사장은 터지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며 "전세사기는 현재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사각지대 활동 '컨설팅업체'…점조직 형태로 움직여
그렇다면 이러한 전세사기를 벌이는 컨설팅 업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부동산 업계에서는 한 마디로 '널리고 널렸다'는 반응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컨설팅 업체는 부동산 말고 신축 단지 근처 가보면 '분양' 사무실 있는 곳들이 다 컨설팅 업체들이다"라고 밝혔다.
공인중개사의 경우 공인중개사법에 따라 법적 테두리 안에서 그나마 관리되지만 컨설팅 업체는 다르다. 자유업으로 자격이나 등록이 필요 없고 사업자 등록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에 건축주와 이해 관계가 맞는 신축 빌라 등에 몰려 있다가 또 다른 매물을 찾아 유연하게 옮겨 다닐 수도 있다. 부동산 관련 법망이나 자격 의무도 없다 보니 정부 감시망에도 자연스럽게 벗어나 있다.
전세 계약을 할 때도 '바지사장' 이름이 서류상에 등장할 뿐, 판을 주도한 컨설팅 업체는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수사를 통해 추적해야만 정체가 비로소 드러나는 셈이다. 경찰이 최근 검거한 컨설팅업체 대표 신모(39·구속)씨는 2021년 7월 제주에서 사망한 '강서구 빌라왕' 정모씨의 배후였다. 신씨와 함께 검거된 업체 소속 직원, 분양업자 등 공범은 77명에 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씨는 '강서구 빌라왕' 정씨 외에 다른 여러 빌라왕들의 배후인 정황이 있다"며 "공모 부분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컨설팅 업체는 내부에 매도팀, 매수팀 등을 두고 영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팀 내에는 분양실장, 중개보조인 등이 구성돼 있으며 바지사장, 즉 명의 대여자를 섭외하는 '토스실장'도 있다.
업체 간판이 없고 수시로 업체명을 바꾸는 정황도 포착된다. '점조직' 형태로 움직인다는 증언도 나온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전가영 변호사는 "업체가 점조직처럼 움직여서 실체를 찾기가 굉장히 어려웠다"며 "올렸던 글도 다 지워버리고 대포폰 쓰고 연락처 바꿔버리고. 정체를 찾기 어려운 건 맞다"라고 밝혔다.
컨설팅 업체는 배후에서 공인중개사, 명의 대여자, 세입자 등을 '장기판의 말'처럼 사용하곤 한다. 전세사기를 위해 부풀린 전세금을 처음부터 정한 뒤 여기에 걸맞는 '말'들을 찾는 셈이다. 그런데 컨설팅 업체 뿐만 아니라 아예 공인중개사가 '배후'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1세대 빌라왕'인 강모씨는 일용직 노동자에서 3년여 만에 화곡동 등 수도권 빌라 283채를 소유하게 됐다. 그런데 강씨의 배후에는 공인중개사인 조모(54)씨와 김모(47)씨가 있었다.
조씨와 김씨는 매매가보다 높은 금액의 전세를 놓고 임차인을 모집한 후, 전세금을 건축주에게 지급하고 빌라 1채당 500만~1500만 원의 리베이트를 챙겼다. 이중 김씨 몫은 150만~200만 원 정도였다. 조씨와 김씨는 강씨와 함께 기소(불구속)됐지만, 조씨의 경우 폐업한 중개사무소 인근에 또 다른 중개사무소를 차리고 부동산 개발업과 임대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건축주가 직접 전세 사기를 주도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차명 보유한 주택 2700가구를 미끼로 266억 원 규모의 전세 사기를 저지른 건축업자를 검거했다. 해당 업자는 지인 등으로부터 명의를 빌려 아파트나 빌라 건물을 새로 지은 뒤 전세보증금과 주택담보 대출금을 모아 또 주택을 신축하는 식으로 부동산을 늘려갔다. 지난해부터 자금 사정이 악화됐지만 무리하게 전세 계약을 추진해 결국 대형 전세 사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업자에게 전세금을 떼인 한 피해자는 "내가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세입자가 왠지 불안하다며 이사를 서둘러 갔는데, 이사간 곳도 해당 업자의 주택이었다"며 "인천 미추홀 지역은 그가 거의 장악했다고 보면 된다"라고 밝혔다.
결국 전세사기의 전체적인 판은 컨설팅 업체들이 주도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묵인하고 동조한 건축주나 공인중개사, 명의 대여자 등까지 모두 사태의 공범으로 지목된다. 이를 넘어 사안이 이렇게 커지기까지 컨설팅 업체들을 방조하고 허술한 보증보험 체계를 방관한 정부의 잘못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형사정책연구원 승재현 연구위원은 "한 사람이 과도하게 빌라를 소유했거나 문제가 있는 거래는 국가적으로 적극적인 모니터링이 있어야 한다"며 "전세사기로 얻은 불법 수익은 철두철미하게 환수할 수 있다는 제도도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론보도]「무소불위 컨설팅 조직범죄…바지사장·중개사·세입자 '장기판의 말'」 등 기사 관련 |
노컷뉴스는 지난 1월 22일자 「무소불위 컨설팅 조직범죄…바지사장·중개사·세입자 '장기판의 말'」, 1월 24일자 「사망해도 계속 생겨나는 전국 '빌라왕'…배후, 뿌리를 뽑아야」, 1월 25일자 「막막한 설 보낸 전세사기 피해자들…"빌라왕 활개, 정부는 뭐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건축업자 A씨는 "경찰이 가로챘다고 한 보증금 266억원은 아직 피해 금액으로 현실화된 금액이 아니며,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세입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또한 "딸과 함께 사기친 건축왕으로 보도된 부분에 대해서는 딸은 입건된 사실조차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