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보낸이는 핼러윈 참사 유가족

아들의 읽음표시가 사라지지 않은 어머니 카카오톡 메시지. 남승현 기자

'사랑한다 내아들 효균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이 비통함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사람들은 시간이 해결해줄거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효균이 내아들 그리움이 겹겹이 쌓이네'


핼러윈 참사 희생자 故 문효균(32) 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편지를 쓴다.

읽음표시가 사라지지 않지만, 그 순간이 위로된다.

"머리속에는 먼저 간 아들, 딸이 박혀 있는데, 그 이야기를 해야 숨이 트이는데 그 얘기를 못 하잖아요."

생업을 마치고 따뜻한 두유를 들고 찾아온 문효균 씨의 아버지 문성철 씨(56)와 어머니를 만난 날, 전북 전주시 풍남문광장엔 핼러윈 참사 희생자 전주합동분향소가 유지되고 있었다.

희생자 얼굴이 걸린 현수막에서 맏아들 효균 씨를 찾자 손으로 가리켰다. 지난 추석에 아들이 오기 일주일 전부터 기분이 엄청 좋았다고, 아버지 문 씨는 말했다.

군복을 입고 장수에서 벌초하던 아들의 그때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이 흘렀다.

"다른 친척은 명절이면 가족이 모여서 즐거운데, 우리는 그게 안 되잖아요. 우리가 피해지는 것이죠. 명절 자체가 싫어요. 명절이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어요."

올해 32세, 전주에서 태어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첫째 아들이다. IT개발자 프로그래머 직장 4년 차에 접어들면서 후배들도 생기고 선임 팀장역할을 맡게 됐다. 12월 큰 업무를 앞두고 있었다.

전북 전주 풍남문광장엔 핼러윈 참사 희생자 전주합동분향소. 남승현 기자

문 씨가 비보를 접한 건 참사 다음 날 아침 11시였다. 아들에게 건 전화는 용산경찰서 직원이 받았다. 서울생활을 하던 두 살 아래 남동생이 급히 한남동 주민센터로 향했다. 이대 목동병원에 아들 효균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때마침 문 씨에게 서울 양천경찰서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참 아무 말을 못 하던 직원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망했습니다."

이들에게 국가는 없었다.

처남이 운전대를 잡고 전북 전주에서 출발해 오후 3시 30분 이대 목동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얼굴을 확인했고, 이제 아들을 데려가려는 데 발목이 잡혔다. 병원은 사망신고서를 유가족에게 요구했고, 한참을 헤매다 새벽 1시쯤 검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부검 얘기였다. 압사(壓死)가 분명하기에 아들의 부검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고 월요일 아침 8시 시신검안서가 나왔다. 월요일 아침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를 탔지만, 반대 방향이었다. 정신없이 병원에 오니 오전 10시였다. 뉴스에서 적극적으로 유가족을 지원하고 있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이 들렸다.

전주의 장례식장으로 아들을 데려오고 삼일장을 치렀다. 그 뒤로는 연락도 없었다. 159명이 죽어도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유가족들이 모였다. 협의회를 만들고, 시민단체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누군가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분향소에 붙은 포스트잇. 남승현 기자

유가족 이야기를 하다 보니 희생자들은 평범한 직장인, 학생들이었다. 전북은 공식적으로 8명인데 유가족 명부를 정부가 주지 않고 있다. 아들도 전북 전주 출신이지만, 서울 시민이다.  부동산 임대차 권리 때문에 주소를 옮겼기에 공식적으로 지역 통계로 잡히지 않았다. 타향살이에 연고지가 전북인 희생자는 비공식적으로 11명이다.

아들 효균이는 엄마를 잘 지킨 아들이었다. 1주일에 2~3번 통화하며 안부를 물었다. 참사 이틀 전 어머니는 담근 김치를 들고 서울에 올라가기로 약속했었다. 수육에 싼 김치를 함께 먹자던 아들의 대답, 그게 마지막이었다.

참사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식사를 못 하니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운전대조차 잡지를 못한다. 누가 옆에서 효빈이와 관련된 말을 하면 일을 하다가도 집으로 간다. 정상적인 삶이 아니다 보니 건강이 좋을 리가 없다. 이들이 기다리는 건 책임자의 모습이었다.

"용산이 서울이고, 서울이 대한민국이잖아요. 국민을 못 지켜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철저한 진상조사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바라는 것이죠."

전북 전주 풍남문광장엔 핼러윈 참사 희생자 전주합동분향소를 찾은 고 문효균 희생자 부모. 남승현 기자

유가족들은 여(與)도, 야(野)도 아니었다. 희생당한 자녀의 부모일 뿐이다. 군 장교로 8년을 생활한 문 씨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주말이면 이곳 전주 희생자 분향소를 나와 유가족들을 만난다. 희생자의 나이대가 20~30대가 많다 보니 부모들도 50대가 많았다.

서울 분향소 앞에는 보수단체가 확성기를 대고 피해를 주거나 조문객들에게 시비를 걸기도 한다지만, 얼굴도 모르는 많은 전주시민은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눈물을 흘리고 돌아간다.

22일은 이곳 전주 풍남문광장에서 유가족들이 모여 합동 차례를 지낸다. 객지에 나간 자녀를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은 핼러윈 참사 유가족에겐 외로움을 견디는 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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