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軍에 돈 특전사 문건에 직업군인 '가스라이팅' 논란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입수한 문제의 문건.

육군 특수전사령부의 한 부대에서 직업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고예방교육 문건이 군 안팎으로 퍼지며 반발을 사고 있다.

군 당국은 군인으로서 받는 여러 혜택들을 계속 받을 수 있게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특전사는 물론 다른 부대 직업군인들에게도 전혀 공감을 받지 못하며 오히려 '가스라이팅' 논란을 낳고 있다.

17일 육군에 따르면 인천에 위치한 해외파병 전문부대인 특전사 국제평화지원단은 지난 13일 부대 간부들을 대상으로 사고예방교육을 진행했다. 이 부대는 레바논 동명부대, 남수단 한빛부대 등 육군의 해외파병을 대부분 전담하며 특전사라는 부대 특성상 부사관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 교육 과정에서 부대가 자체 제작한 자료가 군 안팎에 퍼졌고,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이 자료의 전문을 입수했다. 자료 내용 대부분은 군 생활을 하면서 받을 수 있는 급여, 혜택 등에 대한 수치로 구성돼 있고, 음주운전 등이 적발된 경우에는 어떤 불이익을 받는지 다루고 있다. 취재진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5페이지짜리 문건의 전문을 공개한다.

<'인생 100세' 시대 '한방'에 날리시겠습니까> 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자료는 "사회에서 여러분의 친구이자 동년배 청년들은 취업 지옥의 힘든 역경을 이겨내며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취업 성공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다 보니 흔히 스카이(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이라 불리는 고학력자들도 공무원 시험에 몰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자료는 하사와 중사 등 부사관들과 일반 공무원, 경찰, 소방관 등의 급여와 혜택을 비교하며 "코로나19 상황에서 많은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직장인도 미래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불안전한 시대에 살고 있다"며 "안정과 미래가 보장된 지금의 모든 혜택을 버리시겠습니까?"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최근 공무원보다 직업군인이 좋은 33가지 이유가 회자되고 있다. 직업군인이 되는 순간 직업은 물론 대학, 유학, 대학원 문제까지 모두 군의 지원으로 갈 수 있으며 주거 문제도 자연히 해결되고, 부사관의 경우 평생직장으로서 노후 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이처럼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혜택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 건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글로 마무리한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입수한 문제의 문건.

그런데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접촉한 5명 이상의 현역·예비역 장교와 부사관들은 입을 모아 이 문건이 '가스라이팅'에 가깝다며, 부대의 현실을 모르는 지휘부의 실언에 가깝다고 평가하고 있다.

먼저, 특전사 출신의 한 예비역 장교는 "인구(출생률) 감소에 따라서 당연히 들어오는 인원도 줄어드니, 부대 규모를 줄이고 여건을 개선해야 하는데 정작 부대에선 장비·물자·전술 아무것도 개선하지 못하면서 구색만 갖춘다"며 "특전사로서의 명예나 자부심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고생하는 만큼 급여나 여건이 좋은 것도 아니며 본질적인 부분이 문제인데 지휘부에선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장교는 또 "초급간부들에게 '안정된 보장'을 포기하겠냐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론 모두가 장기복무와 진급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마치 모두가 가능한 것처럼 말하면서 사고예방을 핑계로 앞에 '나가지 말라'는 메시지를 넣은 것 같다"며 "그전에는 사고예방이라고 하면 문자 그대로 사고사례부터 시작해 음주 기준 등을 이야기했는데, 맨 앞에 다른 이야기가 나온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고 했다.

특전사는 군단급 부대로 취급되는데, 부대의 중축인 부사관들의 처우는 물론 장비, 전술 등이 진짜 필요한 '특수작전'을 한다고 보기엔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몇 년 전부터 부사관들은 물론 장교들도 전역하고 소방공무원이나 경찰특공대 특채에 지원하는 일이 많아져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몇 년 전 한 특전사령관은 "여기가 소방공무원 양성소인가"라는 말을 재임 시절 했다가, 부대원들이 왜 전역하려 하는지 모른다는 비판을 들은 적도 있다.

이 장교는 "야전부대도 최근 개편으로 인력이 많이 필요해 특전사에서 전출가는 경우도 많은데, 지난해 특전사 하사·중사들이 너무 많이 가서 사령부에서 이를 막은 적이 있었다"며 "부대는 달라지는 것이 없고, 뜻을 갖고 바꾸려고 해도 바뀌지 않아서 차라리 2신속대응사단이나 특공여단으로 전출가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하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입수한 문제의 문건.

특전사 출신의 한 예비역 부사관은 "지휘관 입장에서는 '함께 잘해보자'는 의도였던 것 같지만, 요즘 젊은 부사관들이 알 것은 다 안다. 저런 교육을 해 봤자 귀에 들어오겠나"고 한숨지었다.

그는 "중사·상사들이나 젊은 위관장교들이 전역하거나 야전부대로 전출가는 문제는 그전부터 있었다. 이를 지적해도 '그 인원들은 적응을 못했다'고 얘기하기 바쁘다"며 "나가는 인원들이 특전사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맞긴 하다. (지금의) 특전사가 (진정한) 특전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비꼬았다.

특전사 소속의 한 현역 부사관도 "이 문건은 사실상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에 가깝다"며 "요즘 대원들을 도대체 어떻게 알면 이런 뻔뻔한 이야기를 하나"고 비판했다. 다른 부대 소속의 한 현역 부사관도 "군에 들어온 부사관들의 살림살이가 지금 어떤지부터 알았으면 좋겠다"며 "군을 나가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겠지만 현실을 알려주기엔 너무 암울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재임 시절 부대 발전과 처우 개선에 힘썼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특수·지상작전연구회(LANDSOC-K) 고문을 맡고 있는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퇴역 육군중장)은 이 문건에 대해 "군인이라는 직종을 '직업'이냐 '소명'이냐는 관점이 아니라, 그냥 '직장'으로만 접근했다"며 "팩트는 맞는지 모르겠지만, 소명의식을 갖고 군 생활을 시작한 진짜 군인들이 왜 군을 떠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군 생활을 돈으로만 보는 가짜 군인만 남게 될까 심히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전 장군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대우'가 중요한데, 이 문서 작성자는 대우를 '돈'으로만 생각하지만 '사회적 관계나 태도로 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지금 하사·소위는 물론 중사·대위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되물었다.

연합뉴스

특전사뿐만 아니라 군 전체를 통틀어 봐도 초급간부의 자살률은 병사보다 훨씬 높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7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사망 사고 원인 1위는 자살로 이 기간 동안 335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계급별로 살펴보면, 간부가 217명이고 그 가운데 부사관은 143명, 장교가 52명, 군무원이 22명이었다. 군인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병사가 118명이었으니, 부사관은 자살자 수도 많고 자살률도 병보다 훨씬 높은 셈이다.

송 의원은 "간부급 자살사고의 경우 초급 부사관인 하사‧중사가 99명으로 전체의 47%"라며 "초급 부사관은 부대에서 장병 관리와 현장 통솔 등 실무적인 업무를 전담하지만, 급여와 복지 지원 등 정책적 지원은 열악해 경제적 문제, 과도한 업무로 인한 고충이 대표적인 자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육군은 취재진 질문에 대해 "간부들이 자기관리를 통한 사고예방과 직업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고취할 수 있도록 부대에서 제작한 교육 참고자료로, '인사혁신처 사이버 국가고시센터', '정부 의전편람' 등에 근거하여 작성한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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