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과 고용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임금피크제가 시행된 지 수년이 지나면서 각종 논란이 사회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대법원에서 특정 나이에 들어선 직원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임피제에 대한 실효성 여부도 도마위에 올랐다.
이런 가운데 한화갤러리아 직원들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정년과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인 임피제를 놓고 노동자와 회사간 엇갈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갈등을 겪고 있다.
20년 넘게 한화갤러리아에서 근무한 A씨는 임피제를 적용받으면서 그동안 해오던 업무와는 별개의 업무를 맡아 일하고 있다. 회사측에서는 업무 강도에 따라 기존 업무보다 낮은 강도의 업무를 맡게 했다고 하지만 정작 A씨는 해오지 않던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A씨는 "부서 발령을 내주면서 내가 해오던 업무가 아닌 고객들을 대면하는 부서에 발령을 냈다"면서 "평사원도 할 수 있는 업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같은 그룹에 소속돼 있지만 계열사마다 다른 임피제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이들의 허탈감을 증가시키고 있다.
한화갤러리아의 경우 55세부터 임피제를 적용하지만 일부 다른 계열사의 경우 이를 연장시켰다는 게 노동자들이 주장이다.
젊은 시절 청춘을 다 바쳐 일한 곳에서 제풀에 지쳐서 나가게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는 B씨 역시 회사의 배려는 전혀 없다고 하소연했다. 60세 정년 이후에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고령의 나이에 재취업을 위한 회사측의 배려는 전혀 없었다는 것.
B씨는 "여러 경제적 여건상 정년 이후에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재취업을 위해선 자격증 취득이나 교육 등을 받고 싶어도 근무시간 조정 등이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근무환경 등을 조정해서 인생 2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자체 교육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없고 퇴물로만 생각하며 제풀에 꺾여 나가기만을 바라는 회사를 보면서 서운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직원들은 임피제와 관련해 소송을 준비 중이다.
임피제 적용을 받고 갤러리아타임월드에서 퇴직한 김모씨는 대기발령 등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 소송을 준비 하고 있다.
김씨는 "회사에서 임피제를 적용하면서 자택근무를 시킨 점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타 계열사와의 형평성 문제는 물론 타 대기업에서 시행하고 있는 전직지원 교육도 받지 못하고 근무시간 조정 등 어떤 배려도 없이 임피제를 통해 직원들을 더욱 사지로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노동자들의 주장에 대해 회사측은 법적으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갤러리아측은 "일부 직원들이 대기발령과 관련해 지방노동위에 이의제기했지만 최종 각하되거나 기각됐다"면서 "임피제와 자택대기발령은 전혀 관련이 없는 사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기존 정년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면서 임피제를 적용, 근로자의 실익이 더 큰 상황"이라며 "임피제는 정부에서도 도입을 권장하고 있으며 정년 보장과 고용 보장을 하는 제도로서 취지에 맞게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수의 한화그룹 계열사는 만 55세를 기준으로 임피제를 적용하고 있다"면서 "참고로 타 유통업체와 통신사 등도 55세를 적용한다"고 덧붙였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임피제 대상자에 대한 추가 교육이나 프로그램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았다. 법적인 테두리안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게 갤러리아측 설명이다.
다수의 임피제 대상자들은 평생을 일한 회사측이 노동자를 소모품으로만 생각하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다.
A씨는 "청춘을 바친 회사지만 떠날 때 서운한 감정이 들게 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한화그룹이 이룩한 성장바탕에는 신용과 의리의 한화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하면서 회사를 위해 헌신한 직원들에게는 신용과 의리를 지키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