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참사 당시 용산구 당직 근무자들 '尹비판' 전단지 떼고 있었다

참사 당일 경찰·구청 비서실, 당직실에 '전단 제거' 요청
이태원 인파, 교통 우려 등 민원 접수했지만 전단 제거 작업行
1시간 넘게 전단 제거 작업, 그 사이 벌어진 '참사'

박종민 기자

수백 명이 이태원 골목길에서 밀려 넘어지던 순간, 용산구청 당직 근무자들은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인근에서 대통령 비판 전단을 벽에서 떼어내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날 출근하는 대통령이 집회 참가자들이 남기고 간 포스터와 팸플릿을 볼 수 있다며, '즉시 제거해달라'는 구청 내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경찰의 요청이 있었다. 경찰관의 전화를 받은 당직 직원은 상황이 어렵다며 거절했지만, 구청 비서실장이 재차 요청하자 이번엔 당직사령이 현장에 근무자들을 보냈다. 구청 당직실은 참사 당일 오후 8시 30분쯤부터 이태원에 밀려드는 인파와 차량으로 복잡하다는 민원 등을 접수하고 현장 출동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결국 근무자들은 전단 제거 작업을 하게 된 셈이다.

이 같은 당직실 상황을 종합하면 참사 당시 인명을 살릴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당시의 구체적 정황 등을 좀 더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핼러윈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용산구청 조사 과정에서 구청 당직 직원들의 참사 당시 행적 등을 파악했다. 당시 구청 당직실에는 당직사령과 당직보좌관, 당직 주임 3명 등 총 5명이 근무했다.

조사 결과 참사 당일인 지난해 10월 29일, 당직 근무자 2명(당직보좌관, 주임)은 오후 9시 15분쯤부터 오후 10시 40분쯤까지 삼각지역 근처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을 벽에서 떼는 작업을 했다. 참사가 발생한 시각은 오후 10시 15분이다.

윤석열 대통령. 박종민 기자

해당 직원들은 특수본 조사에서 "이태원이 혼잡하다는 민원을 받고 나갈 준비를 하다가 대통령이 다음날 출근하니 전단을 떼라는 요청에 따라 작업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들에 대한 이 같은 지시는 10월 29일 오후 8시 30분쯤 용산경찰서로부터 온 것으로도 파악됐다. 용산서 정보과 직원은 구청 당직실에 전화를 걸어 "전쟁기념관 북문에서 남영역 쪽 담벼락 시위 전단을 제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구청 당직 주임은 "(민원 처리 문제로) 상황상 어렵다"며 "(새벽에) 상황에 따라 협조하겠다"고 답했다. 구청 당직실은 이때 이태원 지역에서 '차량과 사람이 많아 복잡하다'는 전화 민원을 접수해 현장에 출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거절된 경찰의 요청은 이후 오후 9시쯤 구청 비서실장 A씨의 요청으로 이어졌다. A씨는 "전쟁기념관 북문 쪽 담벼락에 붙은 시위대 전단을 즉시 제거해달라"고 전화로 요청했고 결국 당직사령은 당직 근무자 2명을 현장으로 보낸 것이다.

전단 제거 작업은 1시간 넘게 이어졌고, 그 사이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경찰과 소방이 출동하고 재난 상황이 각 기관에 전파되는 동안 구청 당직실 직원들은 전단 제거 작업 결과를 사진으로 찍어 A씨에게 전송하고 있었다. 구청 당직실이 참사 당시 인명을 살릴 수 있었던 '골든타임'에 신속한 조처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용산구청은 공식적으로 오후 10시 53분에 당직실에서 최초로 사고 상황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당직실에 있었던 당직사령과 주임 1명은 그제서야 이태원으로 향했다. 나머지 주임 1명은 당직실에 남았다.

전단 제거 작업을 끝내고 귀청하던 당직 근무자 2명의 경우 오후 11시 13분쯤 이태원 상황을 연락받고 이태원역으로 향하다가 오후 11시 30분쯤 민원이 폭주한 당직실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다시 구청으로 돌아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당직실 근무는 규정과도 배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태원 지역에 인파 우려 민원이 제기되는 등 사고가 우려됐지만 전단 제거 작업을 우선 시행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지방공무원 복무 조례' 제8조(당직 및 비상근무)에 따르면 '당직근무자는 모든 사고를 방지하고, 사고가 발생한 때에는 신속하게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용산구청 당직 업무처리 매뉴얼' 역시 불법광고물 정비 요청이 들어왔을 때 대상 광고물이 유동광고물인 경우 긴급한 사항이 아니면 건설관리과 담당자에게 이첩하고, 당직사령이 긴급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엔 당직실에서 처리하게끔 명시돼 있다. 하지만 당시 전단 제거 작업이 '긴급 사안'인지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용산구청이 국회에 제출한 당직일지에는 참사 당일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민원 접수 및 처리 내용이 담겼지만 '전단 제거 작업'은 없는 것으로 확인돼 '은폐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일부 피의자의 신병을 넘겨받은 검찰이 보강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서울서부지검은 10일 오전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서울경찰청·경찰청 등 10곳을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한편 용산서 관계자는 당시 전단 제거 요청과 관련 "그날 시위 단체가 벽면에 스티커랑 팸플릿 등을 엄청나게 붙여두고 가 쓰레기가 너무 많아 (구청에)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옥외광고물법상 플래카드 등은 집회 중일 때만 부착할 수 있어 집회가 끝나면 지자체 소관 부서에 관리해달라고 요청한다"고 설명했다. 용산구청 측은 "사실 확인이 안돼 공식 입장을 내기 어렵다"고 밝혔다. 비서실장 A씨 측은 수차례 연락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해당 사안에 대한 수사와 관련 특수본 측은 "(전단 제거 작업은) 사고 원인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조사 사항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확인해드리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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