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여전히 비닐하우스 전전'…이주노동자의 혹독한 겨울

농장주, 정부 지원 턱없이 부족…불법 거주시설 조사 인력 부족
"주거시설 개정안 철저히…정책적·재정적 지원 필요"

지난 29일 포천시 가산면의 한 비닐하우스. 고무성 기자

한파 경보가 내린 2020년 12월 20일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경기 포천에 있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잠을 자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숙소 서랍장에는 3주 뒤 출국하는 프놈펜행 항공권이 있었다.

2년이 지난 29일 영하 14도까지 내려가는 한파 속에 포천시의 한 채소 농장지대를 찾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닐하우스들 사이로 검정 차광막이 덮인 곳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밖에는 사람이 사는 듯 빨래가 널려 있었다.

안에는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컨테이너나 샌드위치 패널로 된 조립식 가건물들이 있었다. 2년 전 속헹 씨가 숨진 뒤 정부가 이러한 숙소를 금지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해 3월 네팔 출신 A(30)씨의 근로계약서에는 고용주가 정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주택'을 제공했다고 버젓이 기재해 놓았다.

방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A씨는 전기난로와 전기장판으로 이번 한파를 견디고 있었다. 밖에는 간이 화장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해가 기울어 어두워질 때까지는 흰색 하우스 안에,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는 검은색 하우스 안에서 지내는 것이다.

근로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 달에 226시간이다. 시급은 8720원으로 지난해 기준 최저 시급이었다. A씨는 지난달 181만원을 받았다고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여줬다.

A씨는 "여기 너무 춥고 아내가 보고싶다"며 "사장님이 월급을 조금 줘서 다른 곳으로 간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내년 10월에 결혼한 지 3년 된 아내를 보러 간다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기자는 A씨에게 미리 준비한 핫팩, 칫솔, 치약, 비누, 휴지, 물티슈 등 생필품을 전달했다.
지난 29일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A(30)씨가 거주하는 포천시 가산면의 한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가설물. 고무성 기자

"주거시설 개정안 철저히…정책적·재정적 지원 필요"

정부는 지난해 1월 새 주거시설을 짓는 농가에 1500만 원씩 지원하고 있지만, 농장주들은 땅값, 자잿값, 상하수도 등까지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농장주 상당수가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임차농이어서 주거시설을 짓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불법 거주시설을 조사할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 E-9(비전문 취업비자) 이주노동자는 이달 기준 26만 4000명이다. 외국인력 담당 노동부 지방관서 현장 인력은 200명으로, 1인당 1320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특히, 농축산업 부문 이주노동자는 약 2만 2000여 명이다. 이들 중 70% 안팎이 비닐하우스 같은 임시 숙소에서 사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는 "고용노동부는 주거시설에 대한 개정안을 철저히 집행해야 한다"며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정책적·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용 허가를 할 때 고용 신청 서류 심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며 "이주노동자에게 제공할 기숙사의 사진이나 임대계약서 등을 사업주에게 요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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