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을 쓴 작가 조세희씨가 어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설은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에 사는 다섯 식구가 도시 재개발로 밀려나면서 겪는 일들, 빈민의 현실과 고통을 그대로 담았는데요. 1978년에 쓰인 이 아픈 소설이 40년이 넘도록 대중의 공감을 얻는 건 작가에게도 마냥 반가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조세희 작가]
"이렇게 읽힐 거라는 생각은 내가 해보질 못했어요.. 근데 한국의 어떤 상황이 이걸 읽게 했는지.." - 2008년 난쏘공 30주년 기자회견
"제가 난쏘공을 처음 쓸 때는 우리가 살아야 되는 미래가 아름답기를 그리고 슬프지 않기를 모든 것이 평화롭고 평등이라는 말까지 민주주의라는 말까지, 그래서 고통이 어느 한쪽으로만 집중이 되는 걸 막을 생각으로 시민의 한 사람으로 글을 썼던 것이 난쏘공입니다." - 2009년 용산참사 희생자 추모제
[앵커]
한국의 어떤 상황이 이걸 계속 읽게 했을까.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게 걱정이다. 가난뱅이를 두들기면서 소수가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은 안된다.. 2009년 난쏘공과 닮아있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한 발언까지 들으셨습니다. 어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조세희 작가의 마음이 여전히 무겁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아직 우리 주변엔 소설 속 낙원구 행복동과 닮은 곳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 물가도 많이 올라서 더 어려운데요. 현장을 다녀온 취재기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박희영 기자.
[기자]
네, 안녕하세요.
[앵커]
지난주 한파 속 서울 쪽방촌과 달동네를 다녀왔다고요? 상황 전해주시죠.
[기자]
네 저는 지난 23일 오전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다녀왔습니다. 당시 서울 아침 기온은 최저 영하 14도, 체감온도는 영하 22도까지 떨어진 날이었는데요. 얇은 옷을 겹겹이 입고, 두꺼운 외투와 장갑까지 중무장했는데도 추위에 손발이 어는 느낌이었습니다. 당일 인근 교회 자원봉사자들이 쪽방촌 주민들에게 따뜻한 호박죽을 나눠주고 있었는데요. 저도 이들을 따라서 쪽방촌 주민들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앵커]
직접 따라가보셨군요. 구조가 어떻던가요?
[기자]
동자동은 건물 61채에 쪽방 1170칸이 빽빽하게 들어차있는 곳인데요. 슈퍼마켓 옆 작은 통로로 들어가니 길게 난 복도 양옆으로 나무문이 다닥다닥 붙어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호박죽을 배달하던 자원봉사자가 어르신을 부르면서 방문을 여니까 성인 남성 한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방이 나왔습니다. 창문도 없고 문을 꼭 닫고 있었는데도, 방안엔 한기가 가득했습니다. 주민이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앵커]
그럼 어떻게 추위를 견디고 계신거에요?
[기자]
패딩점퍼를 입고 1인용 전기장판 위에서 이불까지 꽁꽁 싸매고 계셨어요. 건물에 난방시설이 따로 설치돼있지 않아서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하고 있던 겁니다. 게다가 벽이 외풍을 막아주지 못해 방안은 냉골이었습니다.
[앵커]
아직도 그런데 사는 사람이 있어? 이렇게 생각할 분들도 많아요. 서울시내 쪽방촌 거주민은 얼마나 되나요?
[기자]
지난해 서울시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쪽방촌 주민은 2800여 명인데요. 이들 중 절반만이 도시가스 또는 기름 보일러 같은 난방이 가능했습니다. 나머지 쪽방촌 주민 1300여 명은 전기장판이나 연탄에 의존한 채 긴 겨울을 나야 하는 실정입니다.
[앵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노원구 '백사마을'도 다녀왔다고요?
[기자]
네,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은 집집마다 처마 끝에 고드름이 길게 달려있어 한기를 더했습니다. 세입자들이 떠난 빈집 대문에는 붉은색 페인트로 동그라미 표시를 해뒀는데요. 곳곳에 빈집을 뜻하는 붉은 동그라미가 보여 마을이 더 휑한 느낌이었습니다. 남은 주민들은 연탄난로와 전기장판 등에 의지해 추위를 견디는 이들이 많았는데요. 기름값이 올라 난방비를 아끼느라 연탄만 때면서 버틴다면서 세수도 난로 위에 큰 대야를 놓고 데운 물을 쓴다는 주민도 있었습니다.
[앵커]
불황에 코로나로 연탄은행 후원도 실적이 저조하다고요?
[기자]
네,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연탄은행에서는 올해 전국 쪽방촌 등에 연탄 300만 장을 배포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재까지 배포한 연탄은 약 170만 장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코로나 전에는 한 해 500만 장까지도 나눴다고 하는데요. 1~3월은 상대적으로 후원이 감소하는 시기라 연탄 부족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합니다.
[앵커]
후원도 좋지만, 정부도 빈곤 대책을 세우고 이행하고 있을텐데 어떤가요?
[기자]
네, 정부는 지난해 2월 주거 환경이 열악한 동자동 쪽방촌의 공공 주택 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하지만 공공 개발을 반대하는 일부 건물주와 현 정부의 무관심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매년 해마다 반복되는 쪽방촌 한파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전기장판 공급이나 연탄 후원이 아니라는 것이 민간 활동가들의 주장입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쪽방이 40% 정도가 목조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절대다수가 전기로 난방하고. 이런 상황에서 한파문제, 그리고 여름에는 폭염문제가 반복될 수 밖에 없거든요. 결국은 집이 바뀌어야 돼요. 동자동 같은 경우에는 공공주택사업이 예정돼어있는데 건물주 반대에 의해 정체돼있고 진행 안되는 문제 빨리 해결해서."
[앵커]
결국은 집이 바뀌어야 한다.. 공공주택 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행정력이 발휘되어야 할 것 같아요. 특히 열악한 주거환경은 아이들에게 더욱 가혹할 것 같은데 만나보셨다고요?
[기자]
관악구 신림동에 주거빈곤 아동가구를 다녀왔는데요. 주거빈곤 아동가구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 조건'을 뜻하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환경에 사는 아동가구를 말합니다.
결혼이주여성이 이른 나이에 한국인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어린 아이 셋을 키우는 집, 또 외풍을 전혀 막지 못하는 옥탑방에서 어린아이를 키우는 집 등을 돌아봤습니다. 창문마다 웃풍을 방지하기 위해 담요를 덧대어놨지만 침대 머리맡엔 한기가 느껴졌는데요. 옥탑방은 전기장판을 깔아놓고 난방을 돌리는 상태에서도 집안 온도계는 14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앵커]
주거빈곤 아동가구 숫자도 상당히 많나요?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21만 가구(아동 35만명)고요. 이들 중 지하·옥상에 4만 가구, 주택 이외의 거처엔 3만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문가들은 아동 중심의 주거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데요.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 설명입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
"청년이나 신혼부부에 대해선 주거비 지원이 많이 이뤄지고 있어요. 아동들의 주거문제가 훨씬 더 문제인 건 이 아이들의 평생의 기회와 관련되는 문제가 되잖아요. 기회에 평등이란 측면에 아동 주거문제는 다른 것보다도 국가가 훨씬 힘을 기울여서 민간 임대주택으로라도 이주할 수 있게. 그런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죠."
[기자]
정부나 자치단체가 난방비 일부를 지원한다지만, 이마저도 예산상 한계로 사각지대는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앵커]
유난히 춥다는 올 겨울,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난방이 이뤄지려면 정부의 좀더 근본적인 대책은 물론 범사회적인 관심과 배려가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