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계 반발에도…'자유민주주의' 끼워넣은 새 교육과정 확정

연합뉴스

역사학계 등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 정책연구진의 의견을 묵살한 채 '자유민주주의'를 끼워 넣은 '2022 개정 교육과정(새 교육과정)'이 확정됐다. 교육부는 22일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에 '자유민주주의' 표현이 포함된 '새 교육과정'을 확정 고시했다.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 성취기준 및 해설에 '자유민주주의' 및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중학교 역사 과목 해설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명시됐다.
 
역사교과 정책연구진은 '민주주의' 표현을 고수했지만, 교육부가 지난달 9일 행정예고본에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끼워 넣고, 지난 6일 국가교육위원회에 상정한 심의본에서도 이를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진이 반발하는 등 거센 논란이 일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역사관련 5개 학회가 '자유민주주의' 표현 철회를 촉구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4년과 2015년 1·2차 역사교사 선언 이후 처음으로 역사교사 1191명이 실명으로 '역사과 교육과정에 대한 일방적 수정'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내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국가교육위 내부에서조차 일방적 강행 처리에 반발

국교위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었다. 정대화 상임위원과 김석준·장석웅 위원은 지난 14일 열린 국교위 본회의에서 "'추가 토론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무시하고 이배용 위원장이 일방적 강행 처리를 시도해 정상적인 심의·의결이 어렵다"며 퇴장했다.
 
이들 위원들은 21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새 교육과정 심의본 의결'에 대해 "졸속 심의, 강행 처리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교육과정을 만들어보자는 국민적 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전교조는 지난 15일 "사회적 합의와 조율을 통해 백년대계 교육과정을 논의해야 하는 국교위가 정권의 거수기를 자처하며 교육과정 논의를 요식행위로 전락시켰다"며 "사회적 합의 없는 국교위, 오로지 정권의 입맛에 맞춘 심의안에 의결 거수기 노릇을 하는 국교위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주호 장관, MB정부때 '자유민주주의' 끼워넣은 전력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교육부 제공

사실 무리한 '자유민주주의' 끼워넣기는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이번에 교육부 장관에 지명됐을 때부터 예견됐다. 이 장관은 10월 말 인사청문회에서 '새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를 표기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을 예고했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념으로, 이를 주입해서는 안 된다"는 무소속 민형배 의원의 질의에 대해 이 장관은 "자유민주주의는 헌법 가치다. 민주주의도 여러 가지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그냥 민주주의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장관은 이미 2011년 이명박 정부의 교과부 장관 재직시 역사과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서 최종 고시를 앞두고 연구진이 제출한 최종안의 '민주주의'를 일방적으로 '자유민주주의'로 고쳐 연구진 대다수가 사퇴하는 등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배용 국교위 위원장, 박근혜 정부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개입 전력

이배용 국교위 위원장. 연합뉴스

여기에 이배용 국교위 위원장도 박근혜 정부 때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있으면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깊숙이 관여해 비판을 받았다.
 
고등학교 한국사에 전근대사 비중이 확대된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교육부는 '새 교육과정' 심의본을 국교위에 상정하면서, 고등학교 한국사에서 전근대사 성취기준을 6개에서 9개로 늘렸는데, 이에 대해 역사교과 연구진은 "연구진과 협의 없이 성취기준을 추가한 것은 역사과 교육과정 개발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는 전근대사 중심으로 구성한 중학교 '역사'와 근현대사 중심으로 개발한 고등학교 '한국사'를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에 걸쳐 2년간 연계해 배우도록 한 체계를 완전히 파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 교육과정에 보편적 시대정신인 일과 노동의 가치 미반영, 인류의 공존과 상생을 담보할 생태전환교육 기술의 미흡 등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새 교육과정에서는 고교 '통합사회' 성취기준 해설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사례로 제시한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성별 등을 이유로 차별받는 사회적 구성원'으로, '성평등' 용어는 '성에 대한 편견'으로 각각 수정됐다.
 
교육부가 이번에 처음 도입한 '국민참여소통채널'도 이름만 그럴싸하지,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새 교육과정에 담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새 교육과정은 2024년 초등학교 1·2학년을 시작으로 2027년까지 초·중·고에 연차적으로 적용된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