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서교공) 소속 사회복무요원이 성폭행 가해자와 재판을 진행하다 복무지가 노출되자 병무청에 복무기관 재지정을 요청했지만 거부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해당 사회복무요원은 근무지에서 가해자와 마주쳤고 트라우마에 휩싸여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 병무청은 뒤늦게 복무기관을 재지정한다고 나섰지만 '2차 피해' 예방 미흡과 늑장 대처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4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교공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A씨는 지난 9월 지하철역에서 순찰 근무를 돌다 성폭행 가해자와 마주쳤다.
A씨에 따르면 지난 2016~2017년 고등학교 재학 당시 또래 친구들인 B, C씨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 A씨는 형사 고소를 진행했고 가해자 B씨는 유사강간·강제추행·폭행 등의 혐의가 인정돼 소년원 송치 판결을 받았다. 정신적인 충격이 큰 데다가 형사 소송 과정에 지친 A씨는 C씨에 대해선 민사 소송을 진행했다고 한다. 민사 소송 역시 승소했으나 변수가 생겼다. A씨는 "소송 과정에서 복무지가 C씨에게 노출됐다"라고 밝혔다.
B씨에 대한 형사소송 당시 보복 우려가 커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은 적이 있던 A씨는 지난해 지인으로부터 "B씨가 출소 후 보복한다고 한다"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 불안감이 큰 상태였다. 여기에 'C씨가 혹시 복무지로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민사 소송 결정이 나온 지난해 11월 병무청에 복무기관 재지정을 신청했으나, 병무청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다음 달인 12월 병무청을 상대로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그는 "가해자와 밀접한 지인 등이 지하철역을 이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회복무요원 제복의 명찰과 전화응대 안내문구 및 순회업무로 인해 신분이 드러나기 쉬우며 혼자서 위협에 노출되는 경우가 다른 복무지에 비해 월등히 많아 보복범죄 대응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이에 병무청은 "지하철역은 많은 인파가 오가는 곳으로 홀로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적고 다른 복무기관에 비해 근무지의 개수가 많아 유동적인 배치를 통해 노출 위험을 줄일 수 있으며, 전화응대 안내문구·명찰 등의 사안은 복무기관 담당자와 상의해 조정이 가능하다"며 A씨의 복무기관 재지정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처분이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병무청은 또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규정 제35조에 나열된 재지정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해당 규정에 따르면 기관지 천식, 아토피성 피부염, 척추질환, 정신건강의학과 질환 등 질병 또는 심신장애가 있을 경우 복무기관을 재지정할 수 있다. 또 이 같은 사유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질병 또는 심신장애 등으로 복무가 불가능하다고 지방병무청장이 판단한 임무일 경우 재지정이 가능하다.
A씨는 과거 성폭행 피해로 2년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았다가 호전된 소견이 기재된 요양급여의뢰서를 제출했지만 병무청은 이를 현재의 질병상태를 증빙할 수 있는 의료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병무청은 복무기관 재지정 대신 △타 지하철역 배치 △영업사무소 근무 등 현재 복무기관인 서교공 내 근무지 조정을 대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결국 A씨는 행정심판을 취하했고 올해 1월 서교공은 A씨의 근무지를 가해자에 노출된 역사의 두 정거장 옆으로 이동 배치했다. 이후 8개월 후인 지난 9월, A씨는 지하철역에서 순찰 근무를 돌다 성폭행 가해자 C씨와 마주친 것이다.
같은 달 발생한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을 지켜 본 A씨는 보복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돼 출근길 지하철에서 공황 발작을 겪었고 수면장애·우울감 등이 지속돼 병무청에 복무기관 재지정을 다시 요청했다.
이후 A씨는 지난 9월 29일 서교공과 면담을 진행했으며, 지난달 15일 병무청 면담을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해 병원에 입원했다.
병무청 측은 병원에 직접 방문해 A씨와 면담하겠다고 재차 요청했지만, 코로나19로 병원 면회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병무청은 현재 병원 입원을 통한 진단서가 확보됐다는 이유로 A씨의 재지정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병무청은 복무지도관 제도를 운용하며 사회복무요원의 권익 침해나 복무환경 개선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그간 A씨가 면담을 회피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