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본격 한파가 몰아치며 난방 에너지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한국전력 채권 관련 개정안 부결 사태가 겹치면서 한전이 벼랑 끝에 몰린 형국이다. 여야는 조만간 개정안을 재차 발의‧의결해 매듭을 짓겠다는 입장이지만, 당분간 원자재 가격 급등세가 유지될 것으로 보이면서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12일 에너지 업계와 전력거래소 등에 따르면 최근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면서 전력 수요가 대폭 늘고 있다. 에너지 공기업인 한전이 도매시장에서 전력을 구매해 일반 소비자들에게 일률적인 소매 가격으로 판매하는데, 도매시장에서 한전이 지불하는 전력도매가격(SMP)이 급격히 치솟고 있는 양상이다.
전력통계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기준 kWh(킬로와트시)당 통합 SMP는 252.04원을 기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후 전력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SMP도 꾸준히 올랐다. 지난 8월 197.74원을 기록한 이후 9월 233.42원, 10월 251.65원 등으로 올랐는데, 이달 들어 지난 2일 17시경엔 일시적으로 30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달 초부터 정부가 SMP 상한제를 실시하면서 한전은 약 160원으로 전력을 구입하게 되지만, 한전이 이익을 본 만큼 민간 발전사들이 손실을 떠안게 된다. 전력 수요 증가로 민간 발전사들의 손실이 커질 경우 전력 공급시장 자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순간적으로 SMP가 300원까지 오를 수 있지만, 굉장히 높은 수치인 건 맞다"며 "SMP가 고공행진을 하게 되면 한전은 몰라도 민간 발전사들은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고 말했다.
전력거래량도 대폭 증가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누적 전력거래량은 49만8757GWh(기가와트시)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동안 약 48만6천GWh를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연말까지 총 전력거래량은 지난해 총량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전력거래량도 늘었지만 전력거래금액은 늘어난 거래량에 비해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전력거래금액은 총 55조648억원에 달했는데, 올해는 지난달까지 비용만 합산해도 총 75조813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력 생산에 사용하는 에너자 원자재 중에서 특히 LNG(액화천연가스)와 석탄 등 가격이 급등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력거래금액 중 LNG 비용은 19조8852억원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지난 1월부터 지난달까지 비용이 33조3415억원에 달했다. 유연탄 비용도 지난해 총 18조5389억원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지난달까지만 모두 26조2596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을 압박하기 위해 PNG(파이프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한 이후 이른바 원자재 쟁탈전이 일면서 LNG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동북아시아 LNG 시장인 일본·한국 가격지표(JKM) 현물 가격은 백만Btu(25만㎉ 열량을 내는 가스양)당 지난 9일 기준 약 33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020년 중순 약 2달러를 기록했고, 지난해 3월에는 5달러 안팎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30달러 수준을 유지하면서 10배 이상 오른 셈이다.
다만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며 논란이 된 한전법 일부 개정안은 여야 합의로 조만간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2배로 묶여 있는 한전채 발행 한도를 최대 6배까지 늘리는 내용의 개정안은 산자위와 법사위 등을 통과했지만, 본회의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대거 기권 등으로 인해 부결된 바 있다.
한전의 올해 누적 적자가 30조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당기순손실이 적립금에 반영되면 추가적인 회사채 발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개정안 처리에는 여야 간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한전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근본적으론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같은 점을 인식한 듯 한전은 단계적인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조기에 수립하는 한편 정부 재정 지원방안 등 다각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통화에서 "적자가 확대되지 않도록 절전 캠페인 등을 벌이고 있지만 절전 인센티브 제도 도입 등 더 강력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론 이 기회에 전력시장 개편과 전력거래 독립 구매제도 확대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