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 일반 회사와 마찬가지로 연말에 많이 바쁩니다. 내년도 정부 예산을 심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독특한 건 복잡하게 꼬이던 정국이 막판에 한 방에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보통은 국정의 무한 책임을 지는 집권여당이 예산안 처리에 속 타기 마련이라 야당에 다른 걸 내어주죠. 이 과정에서 '일괄 타결'이라는 모순적이지만 아름다운 타협안이 도출되곤 했습니다.
때문에 연말에는 유독 '고차방정식'이라는 말이 정치권에서 많이 나옵니다. 예산안과 다른 변수가 맞물려서 돌아가고, 이걸 여야 양쪽 지도부가 몽땅 묶어서 논의하는 탓에 전체적인 판과 맥락을 읽기가 더 어렵습니다.
(물론 수학에서 고차방정식은 미지수가 3개 이상인 방정식이 아니라 미지수의 차수가 3이 넘는 경우를 말하므로 용어가 딱 맞아떨어지진 않습니다. 연립방정식이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대세에 지장 없으니 여기선 고차방정식으로 가겠습니다.)
치킨게임 양쪽엔 용산과 민주당 강경파
지금 국회에는 크게 3가지 변수가 맞물려 있습니다. ①예산안 ②이태원 핼러윈참사 국정조사 ③이상민 행안부장관 해임건의안 등입니다.
주도권은 어떻게 될까. 예산안은 보통 여당이 급한 거라 야당이 주도권을 잡고요. 국정조사는 보이콧 카드를 쥐고 있는 여당이, 해임건의안 같은 경우에는 현재 다수당인 야당이 잡고 있습니다.
거칠게 정리하면 민주당이 2개 쟁점, 즉 예산안과 해임건의안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고요. 국민의힘은 국정조사 보이콧 하나를 들고 있습니다. 각각 연말정국에 유리하게 활용할 태세입니다.
얼마 전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하면서 여당이 '예산 처리 뒤에 참여하겠다'고 못 박았던 걸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나(국조) 주고 하나(예산) 받겠다는 일종의 거래였죠.
하지만 민주당이 불쑥 해임건의안 카드를 꺼내면서 이 거래는 중단됐습니다. 한쪽에선 '합의 파기다', 다른 한쪽에선 '별도 조치다' 이렇게 싸우는 동안 국회는 올 스톱. 교착(Deadlock) 상태가 돼 버렸습니다.
당장 풀어내기도 만만찮아 보입니다. 양쪽 모두 양보하기가 어려운 실정이에요. 먼저 국민의힘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물러서면 안 된다는 사인을 강하게 주고 있습니다. "해임건의안 발의하면 국정조사는 전면 보이콧하겠다"는 대통령실 관계자 발언이 이따금 언론을 탔고 '윤석열 대통령이 역정을 냈다'는 전언도 들려왔습니다.
민주당의 경우 당내 강경파 목소리가 워낙 거셉니다. 기자들 내보내고 의원들끼리만 모인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해임건의안 뛰어넘어 탄핵소추안으로 직행하자'는 강경파의 주장이 적잖은 호응을 얻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 분위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아주 깜짝 놀랐다는 민주당 의원이 여럿입니다.
그렇게 이 치킨게임(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모두가 파국으로 치닫는 게임이론)이 계속되면서 예산안은 어느덧 법정시한을 넘겼습니다. 국회가 12월 2일까지 꼭 처리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정부 원안이 자동 상정된다고 법에 명시돼 있는데 이걸 또 어겼어요. 쯧쯧.
12월 관전포인트는 '온건파' 여론
여야는 올해 정기국회 일정이 끝나는 12월 9일까지는 예산안 의결을 기필코 끝내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협상 실무자와 양당 대표자가 부단히 씨름하곤 있지만 당장 해결될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접점을 마련하려면 각자 당내 강경 여론을 어느 정도 눌러야 할 텐데 현재로선 그럴 동력도 명분도 없는 상황. '그만하면 됐다'는 목소리에 '그래도 끝까지 싸웠다'고 화답할 수 있을 때까지 당분간은 티격태격 말싸움이 불가피합니다.
그래서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달 15일에 처리될 거다' '20일에 처리될 거다' 하는 근거 없는 예측이 난무합니다. 참고로 저는 30일에 걸었고요. 더 비관적인 사람들은 '준예산 사태'까지 전망하기도 합니다. 연말까지 못 끝내다 전년도 예산에 준해서 집행하는… 사상초유,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예산이 그렇게 빠그라지면 나머지도 온전하게 진행되기 어렵습니다. 국정조사는 여당이 보이콧하면 야당 단독으로, 아니 정확히는 민주당이 정의당, 기본소득당과 함께하겠죠. 다만 초장부터 맥이 빠지고 기관 증인들도 눈치껏 하나둘 빠질 것입니다. '그들만의 리그'가 될 공산이 큽니다.
해임건의안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대야당이 압도적 과반으로 처리한다 치더라도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탄핵소추안이요? 역시 국회가 의결하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죠. 여기서 검사 역할을 국회 법사위원장이 맡게 돼 있는데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의원이 이상민 장관 탄핵사유를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럴 리 없겠죠. 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자신들의 카드로 여기는 모습에, 국민의힘에서 의아해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타협이나 절충에 이를 여지는 없는 걸까요? 관건은 이런 강경파와 반대되는 결의 목소리가 얼마나 높아질 수 있을지… 여기에 있습니다.
취재 결과 민주당 내부에는 신중론도 상당했습니다. 해임건의안으로 정쟁의 빌미를 준 건 엄연한 사실이니까 민주당으로서도 여론의 부담이 크다고 인식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전선을 다시 좁혀서 예산부터 처리하고, 그 뒤에 국정조사와 이상민 장관 거취 문제를 단계적으로 거론하자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물론 국민의힘 내부에도 국정조사에 참여하는 게 훨씬 전략적일 거라는 온건파가 있습니다. 야당의 공세가 전국에 전파를 타는 동안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얘기죠. 12월 한 달… 이런 목소리가 과연 얼마나 커질 수 있을지, 정치권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