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추워도 생존권 달렸으니"…한파 속 파업 일주일째

화물연대 파업 일주일…기온 떨어지며 한파 시작
텐트 치고, 불 피우고…일주일째 숙식 중
"춥긴 하지만…안전운임제에 생존권 달려있어"

한파가 찾아온 30일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때고 있다. 정성욱 기자

"오늘부터 더 추워지긴 했는데…생존권이 달렸으니까요."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 30일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이곳에서 만난 화물차 운전자 이모(65)씨는 "추위보다 더 힘든 것은 안전운임제가 없는 이전 근무 형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를 포함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지난 24일부터 일주일째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부터 살을 에는 추위가 찾아오면서 조합원들도 한편에서 불을 때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불 주위를 둘러싸고 앞뒤로 몸을 돌려가며 언 몸을 녹였다.

갑작스런 추위 때문에 고생이 많을 것 같다는 말에 이씨는 "추위가 중요한가요? 저희 생존권이 달렸는데요"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씨는 폐지 기로에 놓인 안전운임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그는 "안전운임제를 시행하기 전에는 운송사들이 어떻게든 물량을 따내려고 낮은 금액을 제시했고, 그 금액을 기사들의 임금에서 깎았다"며 "기사들은 그걸 채우기 위해 잠을 줄여가면서 차를 더 몰거나 과적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동료가 연락이 안 돼서 집에 가보면 과로 때문에 죽어있는 경우도 있었다"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시대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부터는 이런 악순환이 끊겼다며, 안전운임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텐트를 설치하고 일주일째 숙식을 이어가고 있다. 정성욱 기자

현재 조합원들은 현장에 텐트를 설치하고 숙식을 이어가고 있다. 추위를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텐트에는 비닐을 덧씌웠다. 평소 화물차에 싣고 다니던 팔레트는 간이 침대로 이용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팔레트 위에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한다.

20년간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는 서모(50)씨는 "가스 난로를 때기는 하는데 새벽에는 추워진다"며 "한 텐트에서 40명 정도가 생활하다 보니까 잠들었다가도 깨기도 하고 선잠을 자는 정도"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의왕 ICD 한편에 '합의를 뒤엎은 정부'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지난 6월 파업 당시 정부가 안전운임제를 유지하겠다고 합의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화물연대 서울경기본부 이영조 사무국장은 "지난 6월 파업 당시 정부는 안전운임제 유지를 약속했다"며 "국회의원들도 직접 찾아와 1호 법안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제와서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는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없던 걸 해달라는 것도 아니"라며 "약속을 지키고, 사람답게 노동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안전운임제 일몰제를 폐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중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김태영 화물연대 수석부위원장(왼쪽)이 3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에서 열린 2차 교섭이 결렬되자 무표정하게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은 회의실을 나서는 구헌상 국토교통부 물류정책관. 연합뉴스

한편 정부와 화물연대는 이날 두 번째 협상에 나섰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40분 만에 결렬됐다.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3년 연장하되 품목 확대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를 영구화하고 품목 확대도 요구하고 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량과 운송거리, 유가 변동분 등을 산정한 운임료로, 화물운송 업계에 적용되는 일종의 '최저임금'제이다. 2020년 3년 일몰제(정해진 기간 이후 자동 소멸되는 제도)로 시행돼 올해 말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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