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때문에 여름에도 창문을 열 수가 없어요. 하루 종일 공기청정기만 틀고 삽니다."
지난 23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회수동 한 주택에서 만난 주민 김모(71)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이같이 토로했다. 인근 400m 떨어진 한 축산농가 악취 때문에 수년간 고생했기 때문이다.
이날 김씨 집 방마다 공기청정기가 틀어져 있었고, 창문마다 굳게 닫혀 있었다.
김씨는 "이상하게 평일 낮에는 냄새가 하나도 안 나다가 공무원이 퇴근하는 밤부터 냄새가 심하게 난다. 특히 주말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축산 악취가 진동을 해서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7일 오후 10시쯤 취재진이 회수동 마을을 찾았을 때 축산농가로부터 800m 정도 떨어진 마을 입구부터 악취가 심하게 났다. 잠시 밖에 있어도 옷에 냄새가 밸 정도였다.
김씨는 "축산농가에 악취 문제로 항의하니 악취저감에 사용되는 약품 값만 1년에 1억 원 든다고 하더라. 약품 값을 아끼려고 일부러 밤에는 저감장치를 꺼놓는 게 아닐까 싶다"고 주장했다.
"서귀포시청에도 수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개선되는 게 없다. 매번 민원 제기 후 며칠 동안 냄새가 안 나다가 말짱 도루묵이다. 공권력이 양돈업자에게는 미치지 않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돼지 3천마리를 사육하는 해당 축산농가 관계자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축산 악취 민원이 계속해서 들어온다. 이 때문에 24시간 내내 악취저감시설을 작동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불시점검? 사실상 농장주에 통보하고 악취 점검하는 꼴"
주민과 축산농가 간 악취 갈등은 서귀포시 회수동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주도에 따르면 도내 양돈장 악취 민원은 지난 2018년 1500건, 2019년 1923건, 2020년 1535건, 지난해 1886건, 올해 10월까지 1361건으로 해마다 1천여 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8년부터 제주도가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양돈장 59곳을 시작으로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하는 등 악취 민원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민원은 되레 늘어나는 상황이다.
현장 공무원들은 제도의 한계를 지적한다. 현행 규정상 농장주 입회하에 악취 시료 채취를 해야 하는 등 불시점검이 어렵고 단속 기준도 사람 후각에 의존하는 등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서귀포시와 제주도 관계자는 "단속에 나설 때 농장주가 참여한 가운데 냄새를 포집하도록 돼있다. 농장 입구에 갔을 때 이미 단속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불시점검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악취 기준 역시 명확하지 않아 농가들의 불만이 크다. 특히 악취방지법이 원래 공장 악취에 맞춰져서 생긴 법이다 보니 축산 농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측정 형태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환경부에 관련 규정을 현실성 있게 개선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묵묵부답"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제주도는 악취 민원이 끊이지 않자 도내 농장 50곳을 대상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악취 감지와 함께 실시간 관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관련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