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태원' 유족 "눈 뜨는 것이 고통.. 함께 모일 때 가장 큰 위로"

이태원 참사 후, 가족의 삶 송두리째 바뀌어
지금도 고립된 채 혼자 속앓는 유가족 많아
유족들 모여 서로 위안받고 도움 받았으면
윤 대통령에 진심 어린 '대국민 사과' 원해
공식 사과문 발표해야 경찰수사도 믿을 것
국조, 참사두고 협상? 국민 슬픔 배려 안해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광일 기자 (김현정 앵커 대신)
■ 대담 : 故이지한 씨 아버지, 故송채림 씨 아버지
 
그날 분명히 국가는 없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한 한덕수 국무총리의 말이었죠. 이 사건은 느닷없이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이들의 개인적 비극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안전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그래서 150여 명의 죽음을 온 국민이 목도해야 했던 사회적 참사였습니다. 그럼에도 희생자 유가족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슬픔 속에 빠져 있어야 했어요. 이름도 영정도 없는 곳에서 말이죠. 그리고 최근 직접 목소리를 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내 자식이 거기서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가시적인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도저히 바라만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해결의 책임은 사회 시스템에 있겠으나 이분들의 목소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는 지금부터 유가족 두 분을 동시에 연결하겠습니다. 고 이지한 씨 아버지와 고 송채림 씨의 아버지, 각각 전화로 연결돼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故이지한 씨 아버지> 네, 안녕하십니까?
 
◆ 故송채림 씨 아버지> 네, 안녕하십니까?
 
핼러윈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자식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류영주 기자

◇ 김광일> 어려운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행되는 동안 혹시 좀 곤란한 질문이 있거든 답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하다가 너무 힘드시면 중간에 멈추셔도 된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먼저 우리 청취자 분들이 아버님들을 잘 모르실 테니까 소개를 좀 간단히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이지한 씨 같은 경우는 우리 연예계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이번 사고 이후에 대중들이 조금 더 친숙하게 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들에 대한 소개를 좀 부탁드릴게요.
 
◆ 故이지한 씨 아버지> 지한이는 항상 나보다도 남을 더 배려하고 그리고 항상 후배들을 챙기는 그런 아이였어요. 항상 저희가 그런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사람이 살면서 남는 건 사람밖에 없으니까 항상 주변에 사람을 두고 살아라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 김광일> 송채림 씨 아버님도 따님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릴게요.
 
◆ 故송채림 씨 아버지> 우리 채림이는 2002년 월드컵 둥이고요. 지금 올해 21살입니다. 21살이었고. 얘는 꿈이 패셔니스트,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집에서 쇼핑몰도 구성해 놓고 짬짬이 시간 나는 대로 아르바이트도 다니고 주말에는 도자기 굽는 도예공방 가서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이렇게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은 그런 아이였습니다. 아직도 사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마치 그냥 어느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느낌이. 이 드라마가 딱 끝나면 우리 채림이가 아빠, 뭐 해? 하고 나올 것 같은 그런 심정입니다 지금도.
 
◇ 김광일> 지한 씨 아버님은 지한 씨의 어떤 모습이 기억에 남으셨을까요?
 
◆ 故이지한 씨 아버지> 진짜 저희 지한이는 효자였습니다, 효자. 저도 몰랐는데 항상 친구들이나 후배들이나 누가 물어보면 항상 중요한 사람이 엄마, 아빠라고 얘기를 했더라고요. 몰랐어요.
 
◇ 김광일> 마음을 추스리기가 어려운 상황이실 것 같습니다. 우리 10월 29일이 사고 당일이었어요. 그때 상황을 다시 짚어보려고 하는데요. 처음에 연락을 경찰이나 정부 기관, 이쪽에서 받으셨던 거죠? 채림 씨 아버님.
 
◆ 故송채림 씨 아버지> 네. 저희가 이 사고소식을 친구들한테 들었고요.
 
◇ 김광일> 친구들한테.
 
◆ 故송채림 씨 아버지> 같이 갔던 친구들한테 들었고 그러고서 나중에 12시간 이상 지나서 30일 한 12시 정도 돼서 경찰한테서 송탄 장례식장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때 경찰한테는 처음 연락을 받았습니다.
 
◇ 김광일> 경찰한테 연락을 받았을 당시에는 이미 자녀들을 찾아 돌아다니고 계셨을 때였을까요?
 
◆ 故송채림 씨 아버지> 저는 개인적으로 그게 조금 의아했던 게요. 우리 아이가 사망했을 당시에 친구들한테 연락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들도 죽었다는, 사망했다는 얘기를 못 하니까 저희한테. 길바닥에 지금 누워있다고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자기들이 지키고 있었다, 지키고 있다, 처음에. 일괄적으로 귀가조치를 하라고 막 하면서 아이들이 그 자리에서 쫓겨난 거예요, 그 친구들이. 그러면서는 이 시신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모르고 얘들도 찾아 헤매고 저도 찾아 헤매고 그거를 12시간을 넘게 찾아 헤매다가 결국에 송탄 장례식장에 보관하고 있다고 오시라고 그래서 갔습니다.
 
◇ 김광일> 12시간을 그러면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참을 헤매셨던 거군요.
 
◆ 故송채림 씨 아버지> 아무 연락도 없고 처음에 저희가, 저는 대전입니다.
 
◇ 김광일> 대전이요.
 
◆ 故송채림 씨 아버지> 사는 곳이. 그래서 소식을 듣고 운전을 못 할 것 같아서 기차 첫 차를 예약을 해놓고 애들하고 계속 전화통화를 하면서 어디로 가는가. 아마 얘가 그 정도 상황이면 경찰에도 분명히 얘기가 있을 거다. 가서 경찰한테 한번 물어봐라, 경찰한테 한번 가서 물어봐. 제가 계속 애들한테 그랬어요. 야, 아버지, 저희도 지금 계속 찾고 있어요. 다시 가서 물어볼게요. 다시 가서 물어볼게요. 그래서 하다가 제가 서울역에 도착해서 남대문 경찰서가 그 앞에 있길래 가서 전화기 위치추적을 해 달라고 해서 위치 추적을 하고 그리고 그 전화가 통화가 안 되니까 나중에, 그러는 중에 주민센터로 모이라고 하더라고요. 유가족.
 
20일 오후 추모객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현장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광일> 이태원 주민센터.
 
◆ 故송채림 씨 아버지> 네. 거기 주민센터 가서 기다리다가 순천향병원 가면 또 알 수 있다고 해서 또 거기로 내려갔다가 거기 가니까 못 가르쳐준다고 해서 또 다시 주민센터 다시 올라가고. 이거를 반복을 하면서 있다가 12시에 경찰한테서 처음 연락을 받은 겁니다.
 
◇ 김광일> 그때 연락받고 어느 병원으로 가시면 된다 이렇게 안내를 받았겠군요?
 
◆ 故송채림 씨 아버지> 네, 송탄 장례식장으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 김광일> 그렇게 이제 장례절차가 시작되고 경황없이 아마 상을 치르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한 거의 한 달 가까이가 지난 건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이거는 이지한 씨 아버님께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 故이지한 씨 아버지> 29일 이전과 그 이후는 채림이 아버님도 말씀을 하셨지만 드라마나 영화 같습니다. 말로 표현이 안 되고요. 29일 이전까지는 저희 집은, 저희 가정은 정말 재벌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집이었어요. 제가 보증합니다. 가장 행복한 집이었어요. 저희 집은. 가장 행복했어요. 항상 웃고.
 
◇ 김광일> 같은 질문을 채림 씨 아버지께도 좀 드릴게요.
 
◆ 故이지한 씨 아버지> 그날 이후부터 아침 해가 뜨는 것이 무서웠고 아침에 눈 뜨는 것이 고통이었어요. 진짜. 하루가 너무 길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도 모르겠고 너무 힘이 듭니다. 
 
◇ 김광일> 채림 씨 아버님께는 다음 질문을 드릴게요. 한 달 간 정말 그냥 슬픔에 잠겨서, 또 세상과 거리를 두고 지내셨던 것 같은데 이렇게 여러 유가족들이 한 데 모이셨어요. 최근에. 이거는 민변을 통해서 만나셨던 거죠? 정부가 아니라.
 
◆ 故송채림 씨 아버지> 네.
 
◇ 김광일> 정부에서 좀 이렇게 다른 가족 분들과 만날 수 있게 안내를 하거나 이런 과정들은 전혀 없었을까요?
 
◆ 故송채림 씨 아버지> 네, 전혀 없었고요. 저 같은 경우도 우리 애를 보내고 제가 뭐를 해야 되나 너무 무기력한 아빠 아닌가 그리고 아무도 사실 많은 분들이 위로를 해 주시지만 사실 전혀 위로 안 됐거든요. 그냥 내가 뭘 해야 되나 내가 뭐를 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이에요. 내가 너무 무기력하지 않나 이런 혼자서 고립된 것은 것 같은 그런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민변하고 참여연대에서 기사를 낸 것을 제가 자꾸 찾아봐도 없었는데 그 기사가 난 것을 보고 일단 문자를 보내보고 이렇게 하다가 연락이 돼서 그래서 민변이 도움을 주는데 찾아가서 유가족들을 만나게 됐죠.
 
◇ 김광일> 거기는 지금 유가족 분들이 몇 분이나 모이신 거죠?
 
◆ 故송채림 씨 아버지> 지금 오늘까지 해서 대략 한 모여계신 분들은 한 70분이 넘으시고요. 두 분씩 같이 이 단체톡방에 들어와 계신, 희생자 두 분씩 들어와 계신 분들도 있고 해서 대략 한 사십 분 넘게, 희생자 한 사십 분 넘게 들어가 계십니다.
 
핼러윈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자식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류영주 기자

◇ 김광일> 희생자를 기준으로 해서 사십 가족 정도가 됐고. 그제 기자회견에서가 한 30여 가족이었던 것 같은데 더 많이 모이고 계신 거군요.
 
◆ 故송채림 씨 아버지> 지금도 이렇게 고립돼서 혼자 속앓고 계신 분이 아마 굉장히 많을 거예요. 그런 부분이 너무 제가 오늘 인터뷰 이거 한다고 할 때 하겠다라고 결정했던 이유 중에 하나도 사실은 그거였거든요.
 
◇ 김광일> 이 인터뷰를 통해서 조금 더 많은 분들이 많이 마음을 모으고 연대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을 하셨군요?
 
◆ 故송채림 씨 아버지> 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옆에서 위로해 주고 이렇게 좋은 말을 하셔도 사실 위로가 되지 않고 저 같은 경우도 이 단체톡방에 들어와서 서로 사연 이야기하고 내 딸 사진 올려서 같이 공유하고 다른 희생자 분들의 사진 보면서 사연 보면서 위안 받고 이게 사실은 가장 큰 도움이 됐거든요.
 
◇ 김광일> 그런 것들이 더 되기를, 될 수 있기를 기대하신다 말씀 듣고요. 지금부터는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께 미리 말씀드릴 것은 이분들이 158명 전체 유가족을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점을 감안해 주시고요. 다만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그 30여 명의 유가족들 같은 경우는 6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 성역 없는 그리고 피해자가 참여하는 진상규명, 피해자 간의 소통 보장, 이런 것들을 제시를 했는데요. 지한 씨 아버님, 윤석열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라는 건 좀 어떤 걸 뜻할까요. 그동안 좀 이런 저런 방식으로 나름 사과라는 걸 하기는 했었거든요?
 
◆ 故이지한 씨 아버지> 네. 어디를 지나가다가 생각나서 하는 절에 불공드리러 갔다가 추모하러 갔다가 생각나서 하는 형식적인 사과가 아니라 행정부의 수반으로서의 진심어린 사과를 바라고요. 그리고 행정부 수반으로서 사람을 잘못 쓴 것에 대한, 국내 안전을 지키지 못한 진심어린 대국민 사과를 원합니다.
 
◇ 김광일> 진심 어린 대국민 사과. 이를 테면 본인이 직접 카메라 앞이나 유가족 분들 앞에 서서 메시지를 읽는 방식,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가 있을 것 같고요?
 
◆ 故이지한 씨 아버지> 네, 그렇습니다.
 
◆ 故송채림 씨 아버지> 대통령님의 유감표명이나 이런 정도가 아니고 저는 공식적인 사과 담화문 발표 정도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 김광일> 담화문 발표요.
 
◆ 故송채림 씨 아버지> 네. 그렇게 해야 저희가 경찰 수사를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김광일> 국회가 오늘부터 국정조사에 돌입하게 되는데 여기에 당부하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합의문 발표하는 여야 원내대표. 연합뉴스

◆ 故이지한 씨 아버지> 10.29 이태원 참사를 두고서 어떻게 이걸 협상이라고 해야 됩니까? 협의라고 해야 됩니까? 협상 도구로 어떻게,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두고 협상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화가 났습니다. 예산안 심의 이걸 협조해 주면 이거 해 줄게. 이게 국민들이 느끼는, 희생자 가족이 느끼는 그런 슬픔이나 감정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당략을 위해서 그 무엇도 다 이용하는, 국민들의 대표라는 사람들의 과연 올바른 처사일까요? 답답합니다.
 
◇ 김광일> 이런 저런 말씀을 저희가 들었는데 우리 마지막으로 자녀분들이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녀한테 한 말씀씩 부탁드릴게요. 너무 힘들 것 같으면 이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채림 씨 아버님부터.
 
◆ 故송채림 씨 아버지> 채림아, 너 좋아하던 마라탕 사서 어제 갔었는데 맛있게 먹었니? 아빠가 다음에 갈 때는 너 좋아하던 햄버거 사가지고 갈게. 그곳에서 너 하고 싶었던 거 다 하고 만약에 다음에 만나게 되면 네가 아빠를 먼저 알아봐줬으면 좋겠다. 이상입니다.
 
◇ 김광일> 지한 씨 아버님.
 
◆ 故이지한 씨 아버지> 지한아, 아빠가 돈 번다고 같이 있어주지 못하고 같이 놀아주지도 못하고 너무 미안하다. 너무 미안하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와서 뒤도 보고 옆도 봤어야 되는데 미안해. 너무 미안해, 너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못 했고. 나중에 보면 엄마, 아빠가 너를 못 알아보더라도 혹시라도 못 알아보더라도 네가 꼭 엄마, 아빠 알아보고 꼭 찾아서 다시 엄마, 아빠 찾으러 꼭 와라.
 
◇ 김광일> 미안하다는 말씀. 제가 감히 주제넘게 한 말씀 드리자면 아버님들 잘못 없습니다. 저희가 그 슬픔을 다 헤아릴 길이 없겠지만 응원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용기 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故이지한 씨 아버지> 고맙습니다.
 
◆ 故송채림 씨 아버지> 네, 감사합니다.
 
◇ 김광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유가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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