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PD는 그런 '천원짜리 변호사'의 선장이었다. 비록 과정에는 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결과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시청률 부진의 늪에 빠졌던 SBS 금토드라마 위상을 다시금 높였고, 다소 만화스러운 연출과 캐릭터조차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천원짜리 변호사'의 성공은 '눈만 마주쳐도 서로 아는' 배우들과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출자라면 느끼는 그 마법 같은 순간이 '천원짜리 변호사'에는 유독 빨리 찾아왔다고. 그렇지만 김재현PD 역시 온갖 외적인 논란에도 흔들리지 않고 작품을 잘 마무리했다.
'천원짜리 변호사'는 전형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상업 드라마다. 그러나 그 타이틀을 뗀 한 명의 연출자 그리고 감독으로서 김재현 PD는 급변하는 K-콘텐츠 시장에 대한 고민이 깊다. K-콘텐츠 시장의 경계가 무너지고 확장될수록 '다양성'의 가치를 잃어버려선 안된다는 마음이다.
다음은 김재현 PD와의 일문일답.
A 스태프들이 참 많이 고생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작품이 되어서 좋다.
Q '천원짜리 변호사'의 연출에 있어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A 우리 드라마엔 여러 장르가 섞여 있는데 그 각각의 장르를, 누구나 아는 패턴으로, 쉽게 만들려고 애썼다. 어떤 회차에는 휴머니즘을, 어떤 회차에는 호러, 혹은 멜로를…. 그렇게 매번 드라마의 톤앤매너를 바꿨다. 그러면서도 코미디 드라마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 가장 애썼다. 그 조율이 쉽지 않았다.
Q '천원짜리 변호사'에서 가장 공들인 장면은
A 8부 찍을 때 제일 애썼다. 8부는 내게 '성 안에 살던 지훈이가 주영을 만나 성밖으로 나오는 이야기'였다. 그걸 이미지로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중에서 제일 애썼던 장면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지훈이 혼자 술을 마시다가, 주영과 나란히 비 맞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시퀀스를 꼽겠다. 조명과 출연자들의 움직임, 살수(비 뿌리는 장치)의 느낌까지 살피며 촬영에 임했던 것 같다. 길바닥에 두 배우를 거의 세 시간 동안 눕혀 놓았다.
A 배우가 감독보다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면 감독이 편해진다. 사소한 디렉팅이나 씬에 대한 설명이 필요 없어진다. 모니터 앞에 앉아 그저 씬의 무드만 관찰하면 되고, 언제나 찍는 방식으로 찍어버리면 되니까…. 그 즈음이 되면 이제 어떤 씬이 찾아와도 꽤나 재밌게 뽑히는 수준이 되는데, 우리 드라마는 그 시점이 진짜 빨리 찾아왔다.
이 드라마가 잘된 이유를 뽑으라면 나는 그 공의 모두를 배우들에게 돌리고 싶다. 대본이 상상하는 바보다, 또 감독이 연출하는 바보다 더 많은 것들을 그들이 해줬다. 감사하다.
Q. 12부작으로 마무리 된 것에 대한 시청자들의 아쉬움도 크고, 결방 등으로 인해 극의 추진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A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가 없다.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를 가졌다. 처음이었지만, 마음과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시청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천원짜리 변호사'처럼 주인공이 다크하거나 독특한 히어로물이 최근 많이 나오고 있고 실제로 인기를 끈다. '천원짜리 변호사'만의 차별점은 무엇이었나
A 영웅물은 어느 시대든 원하고, 또 먹힌다. 중요한 건 시대가 원하는 영웅의 모습이다. '천지훈'을 통해 그리고 싶었던 영웅은 우스꽝스럽고, 유쾌한, 그래서 남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해내는 초인이었다. 가령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나 니체식 초인 같은 거 말이다. 희극적인 인물이 비극적인 세상을 관통할 때 태어나는 풍자를 이 드라마의 중심에 놓고 싶었다.
A 감독의 생존에 대한 아주 현실적인 질문 같다. (웃음) 사실 한국의 드라마, 영화 현장은 그 어떤 세계보다 치열하다. (주) 52시간이 들어서기 전에는 하루에 1~2시간밖에 못 자며 일했던 것 같다. 지금은 사람처럼 일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체계가 없고 두서가 없는 건 사실이다. K-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일이 언뜻 보면 대단한 일 같지만 사실 연출자로 출발선에 서게 된 입장은 조금 다르다.
Q 이런 생태계 변화를 두고 연출자로서 고민하는 지점이 있나 보다
A 나는 두렵다. '한국의 콘텐츠 시장이 정말 다양성이 존재하는가?' 물어보면 좀 의아하다. 대중 콘텐츠는 '무엇이 좋은 이야기인가?' 보다 '무엇이 성공하는 이야기인가?'를 기준으로 기획된다. 이건 틀린 게 아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다만 너무 이쪽으로 치우치다 보면 진정성 있는 사람들이나 작품들이 묻힐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돈이 되지 않는 이야기면 어떡하지?' 재능이 있고 특별한 예술가들에게 그런 고민과 두려움을 심어줘선 안 된다. 그들이 여전히 이상을 좇을 수 있게 해주는 환경, 그들을 지지해주고 그들의 작품에도 수십억을 태울 수 있는 용기와 눈, 이런 게 필요하다.
Q '천원짜리 변호사'도 그렇지만 K-콘텐츠 시장이 커질 수록 다양성이 중요해지는 걸까
A 독립영화 '정말 먼 곳'의 감독과 친한데, 그 감독에게서 이런 문장을 들은 적이 있다. "계속 해나가는 일의 어려움". 나는 그의 영화를 소중하게 본다. 경계가 열리면 열릴수록,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돈과 유행에 의한 문화 파시즘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다양성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