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재난지역서 하루 만에 50병상 설치…'이동형 병원' 가보니

국립중앙의료원 중앙DMAT 대규모 재난 대비 훈련 처음 공개
'레벨3' 상황 가정…소생응급실·중환자실 포함 50병상 규모 설치
"지진이라고 매몰환자만 안 와…복통·설사 등 다양한 응급상황 가능"
"추후 감염병·방사능 누출 등 고난이도 재난 대비훈련도 이뤄질 것"
설치부지 지적 관련 "재난 예측해 선정 어렵지만…관계기관과 협의"

15일 규모 7.8의 지진을 가정한 '이동형 병원' 모의훈련에서 지게차에 몸이 끼는 사고를 당한 모의환자 최성락씨가 소생응급실에 누워있다. 출혈 등 환자의 상황도 실제에 가깝게 분장한 채 훈련이 이뤄졌다. 이은지 기자

"잠시만요, 환자 지나갑니다. 비켜주세요~!"
 
다급한 외침과 함께 마스크와 아이보리색 상의가 피투성이인 20대 남성이 병상에 실려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간헐적으로 신음소리를 내던 최성락(23)씨는 지게차 사이에 복부와 골반 부위가 끼는 사고를 당했다. 자력으로 보행이 불가능한 반면 호흡은 안정적이었다.
 
입구 바로 좌측의 소생응급실에 배치된 최씨는 누운 상태로 연신 끙끙거렸다. 의료진은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인 '케이타스'(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에 따라 환자를 상위 2번째 위험도로 판단했다. CT(컴퓨터 단층 촬영)를 찍은 최씨는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15일 '이동형 병원' 내 설치된 일반 병실 전경. 케이타스(KTAS)에 의해 분류된 중증도가 다소 낮은 환자들이 입원하는 곳이다. 이은지 기자

15일 오후 경기 여주시 소재 당남리섬 축구장에 넓게 들어선 '이동형 병원'에는 시간 차를 두고 각종 응급환자들이 밀려들어왔다. 다행히 실제 상황은 아니다. 경기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7.8에 달하는 지진이 일어났다고 설정한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재난 대비 '모의훈련'이다. 규모 '7.8'은 지표면에 균열이 일어나고 건물의 기초와 지하 매설관이 파괴될 정도의 강진이다.
 
시(市) 외곽에 위치한 잔디밭에는 '쉘터'라 불리는 컨테이너, 프레임텐트 등 모듈 형태의 이동형 병원이 설치됐다. 소생응급실과 관찰응급실이 합쳐진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등이 포함된 50병상 규모다.

 

이동형 병원은 대테러, 전쟁, 자연재해 등의 재난 현장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의료수요 증가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대응체계다. 이미 미국, 독일, 러시아 등 선진국에서는 군사 목적이나 재난 대응, 난민시설 지원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4년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세월호 참사' 등을 계기로 필요성이 대두됐으며, 2017년 12월 처음으로 도입됐다.
 
이동형 병원은 매년 상반기 텐트와 컨테이너를 다 펼쳐놓고 매뉴얼이 제대로 적용되는지 살펴보는 시설 점검, 하반기 모의환자를 투입해 가상 재난에 실제 대처하는 훈련 등 2번의 확인 점검을 거친다. 다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 인력이 밀집하는 모의훈련은 2년간 실시되지 못했다. 이날 훈련은 2018년(당남리섬 축구장), 2019년(강릉시 국군의무학교) 이후 3년 만에야 재개됐다. 훈련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5일 중앙 DMAT의 행정요원이 이동형 병원 종합상황판에 환자 전원 상황을 적고 있다. 이날 모의훈련에서는 2명의 환자가 원주 세브란스 병원,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각각 이송된 것으로 설정됐다. 이은지 기자

대규모 재난의 특성을 감안해 이번에는 최고 등급인 '레벨 3' 규모의 이동형 병원이 전개됐다. 코로나19 대응 차 중앙의료원 내 배치된 일부 시설은 제외됐지만, 가용 모듈이 모두 동원된 것이다. 레벨 3은 도로 및 인근 의료기관 등 인프라가 붕괴 또는 마비됐을 때 적용되는 비상 단계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을 포함해 각 과별 의료진, 응급구조사(4명), 간호사(24명), 행정(24명) 등 70명의 인력이 투입되고 응급실 10병상 외 입원실도 50병상에서 최대 100병상이 요구된다.
 
시설 설치에 이동 소요시간을 뺀 출동을 더해 '24시간 이내' 가동이 이뤄져야 한다. 최근 '핼러윈 참사'와는 달리 권역별 디맷(DMAT·재난의료지원팀)으로만 대응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중앙 DMAT이 출동하게 된다.
 
15일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중앙 디맷(DMAT·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이 경기 여주시 대신면 당남리섬 축구장에 설치된 이동형 병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은지 기자

훈련을 진두지휘한 중앙응급의료센터 김정언 재난의료관리팀장은 "재난현장이 대규모화되고 장기화됐을 때 좀 더 전문적인 시설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문제의식에 의해 기획하게 됐다. 재난형태에 따라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모듈형의 이동형 병원 구축으로 역량을 강화하자는 것"이라며 "유사 시 검사기능과 수술기능도 만들어 환자의 사망률을 감소시키자는 의지"라고 밝혔다.
 
재난은 하나의 얼굴로 나타나지 않았다. 생후 몇 개월이 채 안 된 아들을 포대기로 싸매고 온 엄마는 "(아기가) 자꾸 열이 나고 콧물이 나와서 왔다"고 했다. 실시간 종합상황판 바로 옆에 자리한 중증도 분류·접수 코너에서는 행정요원들이 인적사항과 증상을 분주하게 입력했다. 1m 높이에서 머리부터 추락한 이영직(41)씨는 수술이 불가피했다. 응급구조사는 응급실에 누운 이씨에게 "눈 좀 떠보라"며 '제일 불편한 게 뭐냐'고 물었다. "온몸이 마비된 것 같고 목도 너무 아파요."
 
고등학생 문영찬군은 붕괴된 건물 콘크리트에 매몰되는 변을 당했다. 우측 무릎 이하로 심한 압좌 손상을 입었는데,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출혈이 심했다. 가장 위급한 상태임을 나타내는 '케이타스(KTAS) 1'로 분류된 문씨는 상하지 절단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교통사고로 인한 복통과 골반·무릎 통증으로 외과 수술을 받은 임영택(59)씨도 있다. 본인 진술이 어려운 경우에는 '무명'으로 우선 등록돼 절차를 밟는다. 전산이 마비됐을 때는 서면 등을 활용한 백업 계획도 적용된다.
 
15일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이동형 병원 모의훈련에서 고열 등의 증세를 호소하는 영아를 데려온 엄마가 행정요원에게 환자 인적사항을 얘기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김정언 팀장은 "지진이라고, 다 지진 때문에 산이 붕괴돼서 오는 환자만 있는 게 아니다. 배가 아픈 복통 환자가 올 수도 있고 설사 환자가 올 수도 있다"며 "재난으로 (오히려)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보통 시나리오를 가정한 표로 모든 환자에 대한 예상 플로우(흐름)가 세팅돼 있다"고 부연했다. 사망자는 의료진의 사망 판정 후 임시영안소로 이동한다.
 
환자 분류부터 수술 여부와 입원 결정에 이르기까지 절차는 모두 매뉴얼대로 진행됐지만, 이따금 처치가 지연되는 사례도 눈에 띄었다. 지진으로 추락한 이영직씨는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으며 꼬박 15분 이상을 대기하고 있었다. 훈련을 참관하던 서울대병원 외상외과 박찬용 부교수는 "피 검사에 따라 수혈이 들어가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 CT를 찍지 않았다"며 "혈압이 떨어져 있는 다른 중증환자가 더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분도 (응급실에) 오래 있어선 안 되는 환자"라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훈련이 거듭될수록 대응 역량이 더 제고될 거라고 강조했다. 출범 이듬해 시범교육을 빼고 나면 실전이나 다름없는 모의훈련은 이번이 2번째다. "사실 올해도 (난이도에 대한) 욕심은 있었죠. 재난훈련은 다른 훈련들도 그렇지만 계속 개발되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요. 항상 자연재난이나 외상성(사고)만 고민할 수는 없죠. 방사선 누출지역, 에볼라 같은 감염병 등도 고려대상인데, 방호복을 입고 해야 하는 등 기획과 준비가 많이 필요해요. (오늘 같은) 베이직 레벨(Basic Level)이 탄탄해야 어드밴스드 레벨(Advanced Level)도 가능한 거니까요."
 
약 2시간 동안 30명의 모의환자가 찾은 뒤 이동형 병원 모의운영은 종료됐다. 국립중앙의료원 김성중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중앙 DMAT이 맞닥뜨리는 상황은 (보통) 저희들이 생각지도 못한 사고다. 조그마한 훈련이라도 하지 않게 된다면 실제 재난 시 어려움이 더 클 것"이라며 "훈련 횟수를 더 늘려야 할 것 같고, 경찰·소방 등 다양한 직군이 컬래버(협업)하는 훈련을 더 다양하게 준비해 어떻게 재난에 대비하고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저희의 숙제"라고 밝혔다.

훈련 도중 급작스럽게 퍼부은 비로 남·녀 화장실 앞 텐트 윗부분에서 물이 약간 새는 해프닝도 있었다. 김 센터장은 "오히려 이런 날씨가 저희에겐 더 좋다"며 "상반기 점검 때도 손본 부분이 있었는데, 누수지점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앙응급의료센터 김정언 재난의료관리팀장이 15일 취재진 앞에서 재난안전통신망 단말기(PS-LTE 무전기형)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은지 기자

한편, 보건복지부는 이동형 병원의 사전 예비부지 선정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재난이 발생할 경우 신속한 병원 설치가 어렵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재난이 벌어졌을 때 (각) 상황에 적합한 설치 부지를 선정하고 설치 규모를 결정하게 돼있다"고 해명했다. 재난이 어디에서 벌어질지 미리 예측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레벨 3 규모를 적용할 장소를 고정적으로 설정해 계약을 하기는 쉽지 않은 실무적 애로사항도 있다.
 
복지부는 "지역별로 이동형 병원 전체 전개가 가능한 부지를 선정해 다양한 환경에서의 병원 설치 및 운영 모의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공감한다"며 "향후 부지 선정과 훈련을 위해 관계기관과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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