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전략적인 준비를 다 해왔다.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지난달 31일 언론 인터뷰)
'핼러윈 참사'가 벌어지기 전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발언과 상반되는 행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구민 안전을 위한 행정보다, 자신의 정치 행보를 우선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핼러윈을 목전에 둔 지난달 25일, 박 구청장은 자신이 주관해야 하는 '교통안전정책심의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해당 회의가 열린 시각, 박 구청장은 남영동에서 열린 '구민공감 현장소통' 자리에서 구민들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회의는 유승재 부구청장이 대신 주관했다.
교통안전정책심의위원회는 교통안전에 관한 주요정책사항이나 교통안전 기본계획 수립 등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위원장인 구청장을 포함해 행정지원국장, 도시관리국장, 안전건설교통국장, 교통행정과장, 도로과장, 용산경찰서 교통과장 등으로 구성된다. 정기회의는 1년에 한 번 열린다.
구청 관계자는 "해당 회의에선 교통안전 시설이나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교통안전 정책 등을 논의한다"고 설명했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교통안전정책심의위원회' 조례에 따르면 해당 회의는 구청장이 주관해야 한다. 다만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 한해 부구청장이 회의 주관을 대행할 수 있다.
박 구청장은 구정을 논의하고 민생 현장을 방문해 소통한다는 목적으로 해당 시각에 구민들을 만났지만, 핼러윈 데이를 앞둔 만큼 안전을 위한 행보에 더욱 무게를 뒀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는 심한 교통 정체로 구조대가 도보로 참사 현장으로 이동하고, 구급차 병원 이동도 쉽지 않았던 사태가 벌어졌다.
참사 직전 박 구청장의 행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용산구청 '주간행사계획'에 따르면, 지난 10월 24일부터 10월 28일까지 박 구청장은 남영동, 청파동 등을 돌며 '구민만남 현장소통' 5회와 '아파트공감나누기 한마당' 2회를 포함해 5일간 총 7회에 걸쳐 구민들과 만남을 가졌다. 박 구청장은 취임 100일을 맞이해 10월 24일부터 11월 7일까지 총 16개 동을 돌 예정이었다.
아울러 박 구청장은 참사 사흘 전과 이틀 전 각각 열린 '핼러윈 대비 관계기관 간담회'와 '핼러윈데이 대비 긴급 대책회의' 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참사 나흘 전 용산구청에서 열린 '확대 간부 회의'에선 핼러윈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박 구청장은 회의가 시작된 지 5분 만에 자리를 떴다.
안전대책회의를 비롯해 구정을 논의하는 실무회의에 수시로 불참하는 안일한 태도가 결국 안전대책의 공백을 낳았고, 그것이 참사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구청 내부에 밝은 한 관계자에 따르면 "(박 구청장이) 행정 업무는 뒷전이고 주민들만 만난다"며 "사전 대책회의도 안 가고 안전 불감증도 분명히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구청장이) 얼굴 많이 보여주면 주민들은 좋아하지만 정작 해야 할 일은 안 한다"고 덧붙였다.
한 전직 구청 공무원은 "간부회의를 비롯해 각종 회의들을 (소통의 효율성을 위해) 부구청장이 많이 주재하는 편"이라며 "교통안전정책심의위원회를 가지 않고 대민활동(구민 만남 등)을 한 건 구청장의 가치 판단"이라고 말했다. 또 "구청장이 지금까지도 계속 그렇게 (구민 만남 자리를) 도는 건 이례적이긴 하다"고 밝혔다.
이에 용산구청 측은 "청장이 소통을 많이 중시해서 구민공감 소통 일정이 있어서 참석을 했다"며 "주민들 의견을 많이 청취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교통안전정책심의위원회 불참에 대해선 "위원회 규정 중에 위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부위원장이 대행 가능하다고 운영 조례 4조에 돼 있다"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