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3일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정 미사일에 대해, 나흘이 지난 7일 관영매체를 통해 총참모부(한국 합동참모본부에 해당) 보도를 통해 사진을 공개했다.
우리 군은 이 때 발사된 미사일을 기존에 북한이 여러 차례 발사했다가 실패했으며, 대신 지난 3월 화성-15형을 쏜 뒤 발사에 성공했다고 선전한 신형 ICBM인 화성-17형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들이 보인다. 기존의 화성-17형과는 크게 다르고, 화성-15형과 비슷해 보이지만 또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이 열병식 등에 개발 단계의 무기 또는 가짜를 내놓는 일은 흔하지만, 발사 사진 그 자체를 조작하는 일은 드물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평양서 공중폭발' 화성-17형…군은 11월 3일 ICBM도 화성-17형으로 판단
먼저,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3일 "우리 군은 오늘(3일) 오전 7시 40분쯤 평양 순안(국제공항) 일대에서 동해로 발사된 장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비행거리는 760km, 고도는 1920km, 속도는 마하 15 정도로 포착됐는데 전형적인 고각발사 궤적이다.
ICBM은 보통 1단과 2단 그리고 탄두까지 3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군 당국은 이 미사일이 화성-17형이고 2단까지는 제대로 분리됐는데, 그 뒤 어떤 이유에서인지 속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정상적으로 비행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고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항공대 장영근 교수는 "화성-17형 정도의 추진체계로 고각발사를 할 경우 사거리 1천km 기준으로 고도 6천km 이상의 궤적을 그려야 하는데, 훨씬 낮은 고도와 짧은 궤적을 그려 비정상 비행으로 결론을 내린 듯하다"고 언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열병식 등에서 공개된 화성-17형의 모습을 살펴보면 노즐이 4개 보인다. 이는 1세트에 엔진 2개가 달린 쌍둥이(트윈) 엔진인 백두산 엔진을 2세트 묶었음을 의미한다. 엔진을 2개 이상 묶어 날려보내는 기술을 '클러스터링'이라고 하는데, 처음부터 커다란 엔진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비교적 쉽지만 엔진 한 개에만 문제가 생겨도 전체에 문제가 생긴다는 단점이 있다.
백두산 엔진은 구 소련의 RD-250 엔진을 복제해 북한이 자체적으로 개량한 것으로,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 ICBM인 화성-14형과 화성-15형 그리고 화성-17형이 모두 이 엔진을 사용한다. 화성-14형까지는 백두산 엔진을 1개, 즉 반 세트만 사용하고 화성-15형은 한 세트를 모두 사용한다.
북한은 지난 3월 24일 ICBM을 발사한 뒤, 다음 날 관영매체에 화성-17형 발사에 성공했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의 친필 명령서와 발사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다. 하지만 군은 이 때 발사된 미사일이 실제로는 화성-15형이고, 북한이 기존 사진과 영상을 짜깁기해 화성-17형 발사에 성공한 것처럼 선전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그보다 8일 전인 3월 16일 화성-17형이 발사 도중 공중폭발했는데 그 장소가 하필 평양 근처여서 주민들에게 목격됐다는 점이 큰 이유로 작용했다고 국방부는 분석했다.
화성-15형에 가까운 北 공개 사진…노즐 2개지만 군은 여전히 "화성-17형"
그런데, 북한 총참모부가 7일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한 사진의 모습은 화성-15형에 더 가깝다. 엔진 노즐이 2개뿐이기 때문이다.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합동참모본부 김준락 공보실장(육군대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북한이 발사한 장거리 탄도미사일, ICBM이 비정상적으로 비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보도하지 않은 것을 주목하고 있다"면서도 "우리 군의 평가 결과는 현재까지 변함이 없으며, 세부 제원은 분석 중에 있다"며 이 미사일이 화성-17형이라는 평가를 유지했다.
실제로 북한 총참모부는 이 미사일에 대해 "작전 2일 국방과학원의 요구에 따라 적의 작전지휘체계를 마비시키는 특수기능 전투부(탄두)의 동작믿음성(신뢰성) 검증을 위한 중요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하도록 하였다"고만 짧게 언급했다.
김 실장은 "오늘 북한이 공개한 보도내용이 모두 사실인 것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보안 문제가 있어 군이 정보를 모두 공개할 수는 없다고 해도, 외형상으로 기존의 화성-17형과 다른 부분이 확연히 보인다는 것은 의문점이다.
사진에선 기존 화성-15형과 또 다른데…신형 미사일? NEMP용?
군 당국의 평가는 둘째치고 사진 자체만 살펴봐도 이 미사일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전문가들 또한 이 사진만 놓고 보면 처음 등장한 미사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먼저, 기존 화성-15형보다 동체 길이가 짧다. 장영근 교수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일 수는 있지만 길이는 화성-15형보다는 화성-12형에 가까워 보인다. 크기로 봐서는 IRBM 수준이다"고 말했다.
동체 길이가 짧아졌다면 연료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거리가 짧아졌거나 엔진의 효율을 높였다는 뜻이 된다. 둘 중 하나는 물론 둘 다일 가능성도 있다. 장 교수는 후자에 대해 "엔진에 연료와 산화제를 공급하는 터보 펌프, 또는 연소 방식을 개량했다거나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합참은 지난 10월 4일 북한이 일본 상공을 넘겨 날려 보낸 IRBM 1발에 대해 비행거리 4500여km, 고도 970여km, 속도 마하 17 정도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미사일은 대체로 지난 2017년 정상각도로 발사해 3700km 정도를 날아간 화성-12형 또는 그 개량형이라고 추정됐지만, 북한이 그렇게 밝힌 적은 없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노즐이 1개이기에 그렇게 추정될 뿐이다.
장 교수는 "이 미사일의 (공개된) 사진을 보면 기존(화성-12형)에 있던 버니어 엔진(보조 로켓)이 없어졌다. 성능 개량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언급했다. 화성-12형이 2017년에는 3700km를 날아갔는데, 올해 10월 4일에 쏜 미사일이 화성-12형의 개량형이 맞다면 4500km를 날아갈 만큼 성능이 좋아졌다는 의미다.
다만 북한은 이 미사일에 대해 화성-12형이라고 언급하지 않고 "신형 지상대지상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이라고만 했다. 사실, 기존에 시험발사한 미사일을 개량해서 또 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자연스러운 추측이다.
만약 이번에 쏜 정체불명의 미사일이 기존 화성-15형보다 연료량이 줄어들고 사거리도 줄어들었다고 가정하면, 북한이 기존보다 사거리가 비교적 짧은 ICBM, 또는 기존의 화성-12형을 대체할 신형 IRBM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IRBM과 ICBM의 구분은 사거리 5500km다.
북한대학원대 김동엽 교수(예비역 해군중령)는 "사진만 놓고 판단하면 화성-15형의 크기를 줄인 모델에 가깝다. 10월 4일에 쐈다는 미사일이 이것일 수도 있다"면서 "미사일은 사거리별로 안정적으로 날아가는 메커니즘이 모두 다른데, 6천km 남짓 떨어진 알래스카, 7400km 떨어진 하와이를 효율적으로 타격하기 위해선 기존 화성-15형보다 더 작은 ICBM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예 기존 IRBM이나 ICBM과는 다른 목적의 미사일일 수도 있다. 북한 총참모부가 밝힌 내용 가운데는 "적의 작전지휘체계를 마비시키는 특수기능 전투부(탄두)"라는 언급이 있는데, NEMP(핵전자기파)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핵이 높은 고도에서 폭발하면 전자기파가 넓은 범위에 퍼지면서 전자기기 등의 내부 회로를 태워버리는 효과가 있다.
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아직 정확히 확보하지 못한 북한이 목표에 ICBM을 정확히 명중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전자기파를 통해 현대 사회의 필수품인 전자기기를 마비시킨다면 전략·전술적인 효과가 있다.
다른 무기체계를 위한 운송수단(vehicle)으로 ICBM을 활용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러시아의 극초음속 활공비행체(HGV)인 '아방가르드'도 ICBM을 이용해 대기권 밖에 띄운다. 원래 덩치가 큰 만큼 추력이 강력하고 멀리 나가기 때문이다.
진짜 정체는 미스터리, 전문가들 "좀더 지켜볼 필요 있다"
물론 우리 군 당국의 평가처럼 북한이 화성-17형을 발사한 것이 맞으며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 사진은 숨겨 놓고, 관영매체에는 기존에 발사했던 미사일 사진을 내밀었을 수 있다. 다만 이번에 쐈든 저번에 쐈든 사진으로 인해 이런 미사일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히 알 수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 선임연구위원은 "사진의 경우 실패를 만회할 목적으로 다른 것을 내밀었을 수도 있고, 조작을 통해 크기를 줄여서 보도했을 수도 있다"며 "현 시점에서는 어떤 미사일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고, 좀 더 시험발사를 하면 실체가 드러날 테니 실전배치를 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영근 교수도 "의문점이 많긴 하지만, 북한의 특성상 열병식이든 시험발사든 언젠가 이 미사일이 또 등장할 수 있으니 그 때 지켜보면 좀 더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