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장 정상화를 위해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고 발표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시장의 거래절벽은 계속되고 있다.
15억 원 넘는 아파트가 많아 수혜지역으로 꼽혔던 강남권에서도 매수세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모양새인데 전문가들은 이런 거래절벽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출 규제 풀린 뒤 시장 분위기요? 전혀 변화 없어요"
지난달 27일 정부가 시장 정상화를 위해 15억 원 초과 주택의 주택의 담보대출을 허용하고 무주택자와 1주택자에 한해 주택담보대출(LTV) 비율을 50%로 조정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시장에서는 별다른 변화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특히 15억 원이 넘는 아파트가 많아 이번 규제 완화의 수혜지역으로 꼽혔던 강남권에서도 관망세가 이어지며 거래절벽은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 강남구 대단지 아파트 밀집지역인 도곡동에 있는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정부 발표 이후 시장 분위기 변화 여부를 묻는 질문에 "변화가 전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 관계자는 "대출보다는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고 집값도 하락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15억 원 초과 주택 대출 규제가 풀린다고 해도 찾는 사람이 없다"며 "임차인들은 미리 전세자금대출을 적지 않은 금액으로 받은 사람들이고 금리부담을 이미 겪고 있는 상황이어서 시장 상황을 당분간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표적인 학군지인 강남구 대치동과 역삼동도 아직은 조용한 분위기다. 역삼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역삼동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아니고 대치동 학군이어서 대기 수요는 많은 편"이라면서도 "내년 3월 전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매물을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대출 규제가 풀리더라도 자기 집이 팔려야 올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거래 성사는 잘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정비계획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심의위원회가 통과한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잠잠한 분위기다.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정비계획안이 통과됐지만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이고 대치동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이어서 매수를 하더라도 꽤 긴 기간 동안 실거주를 해야 한다"며 "실거주를 해야 한다면 차라리 압구정 현대아파트로 가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오히려 매도 문의가 늘어나는 곳도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강남3구 중 하락세가 가장 가파른 송파구 잠실동 일대는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매도 문의가 더 늘고 있다는 전언이다. 잠실동 대단지 아파트가 있는 잠실새내역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전세보증금을 레버리지로 투자를 한 갭투자자들은 아직도 매수자를 구하지 못해서 급급매가 쌓이고 있는데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적 완화 기한(2023년 5월)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대출금지 규제가 풀리고 매수세가 조금이라도 살아나면 팔아달라는 집주인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LTV 풀렸지만 DSR 여전…"금리 인상 랠리 끝나야 거래절벽 해소될 것"
LTV가 풀리더라도 연소득을 바탕으로 대출가능금액이 결정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여전해서 이번 조치가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CBS노컷뉴스가 신한은행에 의뢰해 제도 개편에 따른 대출 가능 금액 변화를 분석한 결과 연봉 7천만 원 이상 차주의 경우 관련 혜택을 보지만 이하 차주의 경우에는 제도 개편에 따른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주택자 또는 기존주택 처분조건을 건 1주택자가 서울에서 15억 원 주택을 연이자율 5%로 40년 원리금균등상환 대출을 받아 산다고 가정할 때 대출 가능금액은 최고 7억 5천만 원이지만 연봉이 5천만 원인 차주의 대출 가능금액은 3억 4천만 원이고 연봉이 7천만 원인 차주 역시 4억 8천만 원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다. 연봉이 1억원 이상 차주의 경우는 6억 9천만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연봉 1억 2천만 원인 차주는 DSR에 따르면 8억 3천만 원까지 대출 가능하지만 LTV 규제로 최고 7억 5천만 원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다. 모두 다른 대출이 전혀 없는 경우를 가정한다.
전문가들 역시 이번 조치로 거래절벽을 해소하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직방 빅데이터랩 함영진 랩장은 "이주비와 중도금대출 잔액범위 내에서 잔금대출만 허용됐던 15억 원 초과 주택구입용 주택담보대출이 허용되면서 사실상 규제지역으로 묶인 서울 강남권과 한강변 등 수도권 고가주택들의 여신규제 허들이 제거됐다"면서도 "DSR규제가 상존해있고 주담대 금리도 5~7%, 집값도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출 규제가 완화됐다고 해도 실수요자들의 시장 진입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KB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이번 조치로 고가주택 거래에 다소 숨통을 터주는 효과는 있겠지만 심리가 위축되어 있어 거래 정상화에는 한계가 있다"며 "금리 인상 랠리가 마무리되었다는 신호가 나타나야 거래회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