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일 탄도미사일과 지대공 미사일 등 미사일 25발, 포병사격 100발을 쏘는 등 도발의 수위를 급격히 끌어올렸다. 탄도미사일 한 발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동해 NLL 이남에 떨어졌다.
북한의 고강도 도발은 북한의 군사정책을 총괄하는 박정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한미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을 비난하는 심야 담화를 낸 뒤 북한 곳곳에서 하루 종일 연쇄적으로 실시됐다.
박정천 당 비서는 담화에서 사실상의 핵 위협을 했다. "미국과 남조선이 겁기 없이 우리에 대한 무력사용을 기도한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의 특수한 수단들은 부과된 자기의 전략적 사명을 지체 없이 실행할 것이며 미국과 남조선은 가공할 사건에 직면하고 사상 가장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의 전략적 사명을 지체 없이 실행할 것"이라는 '특수한 수단들'은 지난 9월말부터 보름 동안 실시된 전술 핵 운용부대들의 탄도미사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미국의 무력 사용을 조건으로 핵사용 위협을 한 셈이다.
박정천은 "미국이 지난 세기말 힘없는 나라들을 무시로 폭격하고 주권국가의 운명을 마음대로 농락하던 식으로 조선반도에서도 놀아보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망상이며 치명적인 전략적실수로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 보유로 인해 '조선반도'는 이제 미국의 군사적 허세가 마음대로 통할 수 없는 곳이 됐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날 분단이후 처음으로 NLL 이남으로 미사일을 쏘는 등 초강력 도발을 한 것도 핵을 보유한 이상 한국과 미국이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앞으로도 핵 보유를 바탕으로 한 북한의 예상치 못한 도발이 일상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다만 박정천 당 비서의 담화를 보면 핵 보유에 따른 자신감 못지않게 한미 군사력에 대한 두려움도 읽힌다.
박정천은 담화에서 "나는 미국과 남조선이 벌려놓은 '비질런트 스톰' 연합공중훈련에 동원된 전투기 대수와 훈련 규모를 놓고 보나, 지난 1990년대 초 이라크를 침략할 때 사용한 작전 대호인 '데저트 스톰' (사막 폭풍)》의 명칭을 본 딴 것을 놓고 보나 철저히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침략적이고 도발적인 군사훈련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 국방성은 우리 공화국의 '정권 종말'을 핵전략의 주요 목표로 정책화했다"고 지적했다.
한미 양국에서 240여대의 최첨단 군용기가 동원된 '비질런트 스톰' 훈련을 30년 전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몰락을 이끈 '데저트 스톰'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의 두려움을 암시한다.
북한은 이날 탄도미사일과 지대공 미사일, 포병사격을 섞어가며 온 종일 포격을 이어갔다.
북한은 지난 달 핵 항모를 동원한 한미연합훈련, 한미일 훈련에 대응해 전술핵 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으로 대응한 것처럼, 이날도 한미연합공중훈련에 대해 핵사용을 가정한 맞대응 방어 훈련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피포위 의식에 사로잡힌 북한이 동해와 서해를 막론하고 온 종일 각종 미사일을 발사하는 이례적 도발을 한 것은 공세적 무력의 과시보다는 방어 의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적의 접근을 우선적으로 막는 중국의 반 접근 지역 거부 전략(Anti-Access Area Denial)을 연상케 한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 북한적십자사 명의로 위로의 뜻을 보낸 것과 달리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 애도기간에 도발을 한 것도 결국 대북제재와 방역 등 복합 위기 속에 정무적 판단을 할 여유가 없는 현재 북한의 피포위 의식과 심리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우리 군 당국은 아날 북측 도발에 비례적으로 대응해 NLL 이북 공해 상에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차원이지만 우리도 처음으로 9.19 군사합의를 위반한 셈이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우리 측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자위권 차원의 상응한 대응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자위권 차원의 대응 조치에 대해 합의 위반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한미훈련이 진행되는 한 이에 대응한 북한의 도발과 9.19 합의 위반은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9.19 남북 군사합의도 점점 사문화의 길을 밟아갈 가능성이 높다.
임을출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부의 강력 대응이 북한의 도발 의지를 꺾을 수 있다면 문제가 해결되겠으나, 오히려 북한의 강한 반발과 대응 도발을 유발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져 한반도 긴장은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