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폴란드 민간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에 성공하며 윤석열 정부의 '원전 수출' 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우리나라가 유럽 원전 수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중론이지만, 일각에선 소요 예산과 예상 수익 등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다며 신중론도 제기된다.
우리나라가 한국형 차세대 원전인 APR1400을 폴란드로 수출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이창양 장관은 31일 서울 중구 소재 더플라자 호텔에서 야체크 사신 폴란드 부총리 겸 국유재산부 장관과 퐁트누프 지역 민간 원전 건설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국 정부 간 MOU와 함께 실질적인 원전 건설을 담당하는 한수원과 폴란드전력공사(PGE), 폴란드 민간발전사 제팍(ZEPAK)도 협력의향서(LOI‧Letter of Intent)를 교환했다. 한수원과 제팍, PGE 등 3개 회사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약 240km 거리에 있는 퐁트누프에 원전을 건설하기로 하고, 추가 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원전 건설은 '폴란드 에너지정책 2040'에 포함된 기존 폴란드 정부주도의 원전계획을 보완하기 위한 사업으로 석탄발전소 철거 후 해당 부지에 원전을 짓는 방식이다.
이 장관은 양해각서 체결식에서 "윤 대통령이 지난 6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에게 양국 원전 사업의 협력 필요성을 설명한 바 있다"며 "오늘 이 자리는 양국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쌓인 아름다운 결실이고 윈-윈하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대선 과정에서 전임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폐지하고 원전 수출 활성화를 약속한 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취지로 읽힌다.
사신 폴란드 부총리는 "폴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후로 안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고 안보에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추세"라며 "폴란드와 한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원자력 에너지에만 관한 것이 아니다. 안보 부분에도 필요하다"고 원전 이외 방산 분야 협력에도 무게를 실었다.
한수원은 폴란드 측과 올해 말까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타당성조사를 거쳐 이르면 2026년 원전 건설에 착공할 계획이다. 산업부 박일준 2차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진행하는 폴란드 정부 주도 원전 사업과 늦지 않은 수준에서 착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앞서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폴란드 정부 주도 가압경수로 6기 건설 사업을 수주했지만, 민간 연계 사업은 실무적인 원전 건설 실력이 뛰어난 우리 측이 따낸 만큼 속도전을 펼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원전 수주는 지난 2009년 약 21조원 규모의 UAE 바라카 원전과 올해 이집트 엘다바 원전 사업에 이은 것으로 향후 우리나라의 원전 수출 시장 확대에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인하대 강천구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수주로 그동안 침체됐던 원전 수출 시장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라며 "폴란드 정부 원전 경쟁자였던 미국과 프랑스 기업에 비해 우리 측의 실전 경험이 더 많기 때문에 사실상 다른 원전 사업에서도 우리나라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원전 건설 관련 소요 예산과 자금 조달, 예상 수익 등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원전 건설에 투입되는 전체 예산도 중요하지만, 해당 예산을 조달하기 위한 파이낸싱 구조 등도 무시할 수 없다"며 "결국 원전 수주를 통해 우리나라가 얼마나 수익을 거둘 수 있을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수원과 제팍, PGE 등 3개 회사는 올해 말까지 개발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만 밝힌 상태다. 이 장관도 이날 체결식 후 기자들과 만나 "구체적인 소요 예산과 수익 구조에 대해선 말하기 곤란하다"며 "지분 구조를 논의해야 하는데, 다만 지분 다수를 폴란드 측이 가져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