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너지 원자재 수급난으로 인해 천연가스 가격이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가스공사의 미수금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약 5조원에 불과했던 가스공사의 미수금이 올해 연말까지 10조원을 초과할 것으로 관측되면서 추가 가스요금 인상 압박이 더해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시작된 에너지 원자재 위기가 장기화되고 있다. 특히 난방 등에 활용하는 LNG(액화석유가스)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가스 가격 폭등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러시아가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들에 PNG(파이프천연가스) 공급 중단을 선언한 이후, 각국이 LNG 구매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격 불안정세가 이어지고 있다. 통상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특성상 LNG 가격은 지난 8월 약 70달러에 육박하며 최고점을 찍은 후 현재는 약 30달러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최근 5년 간 가격을 비교하면 여전히 10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동북아시아 LNG 가격지표인 일본·한국 가격지표(JKM) 현물 가격은 백만Btu(25만㎉ 열량을 내는 가스양)당 지난 26일 기준 30.4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019년 4월 5.2달러 수준이었던 LNG 가격은 2020년 6월 약 2.1달러로 최저치를 찍은 후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해 3월 5.5달러 안팎에 불과했지만 1년 만인 지난 3월에는 51달러를 돌파하며 10배가량 상승한 것이다.
천연가스 원가가 상승하면서 가스공사의 LNG 도입 단가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산업부 등에 따르면 9월 LNG 수입 가격은 1(t)톤당 1465.16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8월 1198.82달러 대비 약 20% 상승했고, 1년 전 가격(571.06달러)보다는 2.6배 높았다.
문제는 난방 수요가 집중된 겨울이 다가오면서 LNG 가격이 추가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현지시각으로 지난 25일 싱가포르 국제에너지주간 행사에서 LNG 공급부족 등을 언급하며 "처음으로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유럽 주요국들의 LNG 수입량이 늘고 있는 데다, 중국의 잠재적인 LNG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보고 내년 LNG 공급위기에 무게를 실었다.
원가는 급격히 상승했지만 국내 가스요금은 소폭 인상에 그친 상태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주택용 도시가스요금은 메가줄(MJ·가스열량단위)당 2.7원을 인상했다. 4인 가구 월 평균 비용을 계산하면 5400원 가량 상승하는 셈이다.
LNG 수입 단가는 2~3년 전 대비 10배 이상 올랐지만, 소비자 가격은 소폭 인상에 그치면서 가스공사의 누적 적자도 커지고 있다. 올해 2분기 기준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5조4000억원이었지만, 올해 말까지 10조원을 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현 추세로 보면 가스공사의 미수금이 10조원을 거뜬히 넘을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물가 관리 차원에서 전기나 가스요금을 규제하고 있지만, 이대로는 적자 폭이 견딜 수 없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강원도 레고랜드 논란으로 채권시장이 위기를 맞으면서 우량채권으로 꼽히는 가스공사 채권도 줄줄이 유찰되면서 위기가 더해졌다.
이 때문에 요금을 인상한 지 불과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요금인상 필요성이 제기된다.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은 지난 20일 국정감사에서 "적정 수준으로 원가 반영이 필요하다"며 "(가스를) 반값에 공급하는 것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아 적어도 80% 이상은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수요 절감을 위해서라도 가스요금 인상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물가 상승 여파를 고려해 추가적인 가스요금 인상엔 신중한 입장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9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0.16(2015년 100 기준)으로 전월 대비 0.2% 오르며 재차 상승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원자재 대부분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끝나지 않는 한 당분간 LNG 수입 단가의 상승세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대 정동욱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통화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원자재 위기를 촉발시킨 만큼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사실상 해결책이 없다"며 "현재 에너지 위기도 결국 유럽에서 시작된 전쟁 변수에 달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