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5년간 경비원 24명 갈아치웠다…도곡동 아파트 '갑질' ②담배셔틀에 쌍욕까지…'경비원 갑질 방지법', 실효성 있나 ③잇단 해고와 임금체불…경비원 갑질 근절 대책 없나 (끝) |
#사례1.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15명 중 11명은 해고를 앞두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용역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정년 70세'라는 규정을 갑자기 적용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말 경비원을 파견하던 기존 용역업체와 해당 아파트의 계약이 만료됐고, 새 용역업체가 정해지는 대로 70세가 넘는 11명의 경비원이 해고될 예정이다.
해당 아파트는 2년 전에도 용역업체를 바꾸면서 기존 경비원 30명 중 절반을 해고한 바 있다. 마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 조영권 팀장은 "입주자대표회의 안에서 갈등이 있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변경됐다"며 "그 과정에서 경비원들도 이전 회장과 갈등을 겪었는데 그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사례2. 용산구 아파트에 근무하던 경비원 16명 중 8명은 이달 중순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당 아파트가 경비원 관리 방식을 직영에서 용역으로 바꾸면서 경비원 절반을 내년 1월 1일부로 해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용산시민연대 이철로 간사는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경비원을 줄이겠다고 주민 동의안을 돌렸고 주민들이 대부분 동의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경비원 갑질 방지법' 시행 1년을 맞이한 지금도 여전히 경비원들은 갑작스러운 해고 등 '고용 불안'으로 떨고 있었다.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혹은 용역업체가 이들의 고용과 해고를 결정하다 보니, 경비원들은 이들로부터 '갑질'을 당해도 눈 감을 수밖에 없다. '경비원 갑질'을 뿌리 뽑기 위한 법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른다.
잇단 해고에 임금체불…'고용 불안'에 떠는 경비원들
2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여전히 갑작스러운 해고나 임금 체불 등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경비원들은 한둘이 아니다. 이달 초에는 강북구 미아동 SK북한산시티아파트에서 87명의 경비원이 해고됐다. 고령화되어 더 이상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은 경비원 해고 관련 설문조사에서 기존 경비원들의 단점에 대해 '고연령 근무자로 체계적인 순찰 불가'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안성식 강북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은 "해당 아파트엔 해고된 고령의 경비원들에 비해 연령대가 더 젊은 경비원들이 새롭게 채용됐다"고 말했다. 해고된 경비원들 중 10명 이내의 경비원들은 임금을 깎고 청소 업무라도 하겠다며 청소노동자로 남았다.
노원구 상계동의 한 아파트에선 경비원 32명이 최근까지 약 1년 간 임금 체불에 시달렸다. 지난 2021년 7월부터 입주자대표회의가 관리사무소에 관리비를 주지 않기 시작하면서 경비원들의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경비원들이 세 차례에 걸쳐 노동부에 진정을 넣어 밀린 임금을 받아냈지만, 경비원들은 여전히 임금 체불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다음 달 말이면 경비원들을 파견한 용역업체와 해당 아파트와의 계약이 만료되는 상황이다. 이에 경비원들은 임금체불에 대해 노동부에 진정을 넣는 등 문제를 직접 제기하고 나선 자신들이 계약 만료를 계기로 더 이상 일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경비원들은 자칫하면 잘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갑질'에도 침묵하게 된다고 전했다. 갑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아도 문제 삼기가 어려운 셈이다. 오히려 적은 급여를 받고 청소노동자로라도 남겠다며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는 "2~3개월마다 사실상 계약이 끝날 가능성이 크니까 입주민들이 시키는 일을 거부하거나 본인이 당하는 문제에 대해 고충을 털어놓기가 되게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비원 홍창선씨도 "바른 소리(할 말) 좀 하고 그러면 마음에 안 들어 한다"며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대개 다 갈아치운다"고 털어놨다.
고용안정 보장·업무 제한…'법 재개정' 필요
전문가들은 경비원 갑질을 방지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고용 안정'부터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용 불안이 사라져야 부당한 업무 지시나 폭언·폭행, 임금체불 등의 '갑질'에 대한 문제 제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이를 위해선 용역업체가 변경되더라도 고용이 보장될 수 있게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남우근 정책연구위원은 "최근 3개월 단위의 단기 계약이 늘어나고 있다"며 "단기 계약을 계속해 갱신할 경우 상용직으로 전환하는 규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비원을 파견하는 용역업체가 변경되더라도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고용 승계'를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 변호사 역시 "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을 뜻하는 '갱신기대권'을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비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는 '감시·단속적 근로 승인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감시·단속적 근로자'란 경비원 등과 같이 감시업무를 주업무로 하는 근로자를 말한다. 근로가 간헐적·단속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휴게시간이나 대기시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 다른 노동자에 비해 노동 강도가 낮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고용노동부가 해당 근로자에 대해 '감시·단속적 근로'라고 승인 내렸을 경우 근로기준법상의 근로 시간이나 휴게 및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못한다. 윤 변호사는 "특별근로감독을 해서 실태를 조사하고, 그에 맞춰 감시·단속적 근로 승인을 유지하는 게 적절한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비원도 정당한 권리 가진 노동자" 지자체 지원이나 인식 개선도 필요
지자체 차원에서 '아파트 노동자 지원 조례'에 따른 지원 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지자체는 '아파트 노동자 지원 조례'를 만들어 고용환경 개선, 인권침해 예방, 시설개선 지원, 고용지원금 지급 등 아파트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남 정책연구위원은 "현재 87개의 지자체가 아파트 노동자 지원 조례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 36개 지자체는 관련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예산 투입이 어렵더라도 다양한 지원 사업 모델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단기계약을 하는 단지에 대해서는 지원금을 제한하는 방식도 있다"고 밝혔다.
법적·제도적 개선과 더불어 경비원을 완전한 '을'로 보는 인식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성식 강북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은 "입주민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경비원들 또한 정당한 권리를 가진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들의 권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