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중대재해처벌법을 어디에 쓸건가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SPC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 15일 소스 교반기계에 끼여 숨진 20대 근로자 A씨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제빵 공장에서 참혹한 사고가 났다. 젊은 여성 노동자가 혼합 작업기(교반기)에 끼여 사망했다. 육중한 장치 산업도 아닌 제빵 공장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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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니 사고가 발생한 spc 계열사 공장에서 일어난 사고가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37건이었다. 이 가운데 15건이 끼임 사고였다. 이전 끼임 사고들은 다행히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않았지만 참혹한 사망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많은 전조가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지난 17일 경기 평택시 SPC 계열 제빵공장 앞에서 '파리바게뜨공동행동'과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20대 여성 근로자가 숨진 사고에 대한 철저한 원인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년 간 15건의 끼임 산재 사고가 있었는데도 회사가 직원의 안전을 이토록 도외시 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회사가 노동자를 감정이 없는 그냥 기계로 보는 것 아닙니까"라는 동료 직원의 절규는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돈과 이익만 쫓는 비정한 경영자의 모습 외에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사고가 발생한 곳에서 제빵 작업을 이어갔다고 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사망사고가 난 기계를 흰 천으로 가리고 바로 옆에서 직원들이 일을 하는 모습.

국내 최대 제빵 회사 가운데 하나인 spc의 반인권적 회사 운영은 그간 여러 차례 논란이 됐다. 가맹점이 많아지면서 운송 량이 두 배 이상 늘었는데도 spc그룹은 인력 충원을 안 해 화물 노동자들의 반발을 샀다. 올여름 내내 파업과 해고가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상당수 소비자들은 노사 관계에서 있을 수 있는 갈등으로만 생각했다. 회사 측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용인하며 지켜보았다. 그러나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진 뒤에도 다음날 기계 가동이 계속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소비자들은 "피 묻은 빵을 먹을 수 없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차마 입에도 담기 어려운 처참한 낱말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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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당한 교반기에 끼임이 감지되면 작업을 멈추는 자동 방호장치 설치가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사업장에서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의문이다. 안전에 대한 사업주의 인식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사업주 인식이라면 매일 12시간 야간 노동을 하고 15킬로그램의 재료들을 부어야 하는 고된 노동이 이어지는 현장에서 2인 1조 작업도 제대로 지켜졌을리 없을 것이다.
 
노동부도 문제다. 사고가 발생하고 노동부는 교반기 9대 가운데 7대에만 작업 정지를 내렸다. 회사가 나머지 2대의 교반기로 계속 혼합 작업을 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러자 사람이 죽어도 다른 기계로 빵을 계속 만들도록 허용한다면 어떤 사업주가 제대로 된 안전 조치를 취하겠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노동부는 그제서야 나머지 2대 교반기에도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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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으로 대기업 반열에 오른 spc의 사고 대처도 소비자들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후진적 산업 재해가 발생했는데도 위기 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사고 대처가 안하무인격이다. 소비자와 직결되는 제빵 회사 그룹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20대 젊은 노동자의 사망 사고는 그룹의 일천한 안전 의식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재해가 발생해도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됐던 관행과 그 관행에 철퇴를 내리지 못했던 노동 당국의 책임이 무척 크다. 재발 방지를 위해 노동 당국은 중대재해법을 적용해 책임을 막중하게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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