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 피식 웃으면 만족"…5년째 그림 그리는 경찰관

매주 월요일, 부천오정경찰서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그림 게재
"경직된 경찰서…그림 보고 잠깐이라도 동료들 웃으면 만족"
유머·감동 다양한 주제로 5년째 계속…"위로되는 사람이고파"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부천오정경찰서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김선 경위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정성욱 기자
지난달 추석 연휴를 앞두고 경기 부천오정경찰서 엘리베이터 안 게시판에 종이 한 장이 붙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문구와 함께 커다란 보름달이 그려진 펜그림이었다. 다른 경찰서라면 '범죄 예방' 포스터가 붙어 있을 자리지만, 이곳에선 매주 새로운 '작품'이 걸린다. 그린 이는 김선(44) 경위, 5년째 쉬지 않고 그리고 있다.

19년차 경찰관인 김 경위는 2017년부터 부천오정경찰서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자신의 그림을 걸고 있다. 주말 동안 작품을 그리고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새 그림으로 교체한다.

김선 경위가 경찰서장에게 선물한 그림. 정성욱 기자

김 경위는 어느날 문득 매일 아침마다 보는 게시물이 획일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일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단 몇 초 만이라도 동료들이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 경위는 "경찰서는 사건 사고를 책임지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근무할 수 밖에 없다"며 "동료들이 제 그림을 보고 '피식' 웃고 조금이라도 긴장을 푼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실제 김 경위는 책 속 문장과 유머,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을 아이템으로 활용한다. '왜 나온 거니, 안 불렀는데'(하상욱 단편시집 中 '배')라는 시에서 영감을 얻고, 볼록 튀어나온 배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을 그리기도 했다. 김 경위는 이 그림을 경찰서장에게 선물했다.

김선 경위가 꽃을 활용해 만든 작품. 정성욱 기자

김 경위는 5년 동안 꾸준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 가족의 힘도 크다고 말한다. 미술이 취미인 초등학생 딸의 모습에서 호기심을 느껴서 그림을 시작했고, 남편의 열정적인 응원도 있었다.

어느새 김 경위의 월요일 전시는 '주례 행사'가 됐다. 김 경위 그림은 매주 경찰서 내부망에 공유되고, 업무용 PC 바탕화면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새 그림을 업로드 할때마다 김 경위는 동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는다. 그런데 같은 그림을 보고도 느낀 점은 제각각이다. 김 경위는 "유머스럽게 그린 그림을 본 동료가 연락이 와서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며 "어떤 반응이든 동료들의 피드백은 제게 든든한 힘이 된다"고 말했다.

부천오정경찰서 5층 카페 벽면 한편에는 김선 경위의 작품이 걸려 있다. 정성욱 기자

5년 동안 그림을 그린 그에게 5년 뒤 목표는 무엇일까. 김 경위는 '타인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경찰서에선 안타까운 사건을 많이 접하는데 우리 사회가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그래서 심리학 대학원도 다녔는데 제가 필요한 곳이면 강의든 상담이든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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