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검증'과 '비방' 사이…최강욱 명예훼손 무죄난 이유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 박종민 기자

명예훼손 소송만큼 흔하지만 성립요건이 까다로운 소송도 드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을 말해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더 높은 수위의 처벌을 받습니다. 단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고 여러 사람이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고의로 상대를 비방하려는 목적이 인정되어야 명예훼손이 성립됩니다.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명예훼손은 연예인이나 정치인처럼 대중에 잘 알려진 사람들이 속칭 '찌라시'를 유포한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소송일 겁니다. 몇 해 전 헐리웃 스타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는 별거설을 거짓으로 보도한 영국의 한 언론사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4일, 명예훼손 소송에서만큼은 주로 피해자 측에 서는 정치인이 이상하게도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입니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최 의원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허위사실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은 맞지만 비방 목적은 없었기 때문에 무죄라는 것이 재판부 판단입니다.


허위사실 쓴 건 맞는데 '공익'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최 의원은 2020년 4월 자신의 SNS에 '채널A 기자 발언 요지'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 전 기자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눈 딱 감고 유시민에게 돈을 건네줬다고 한마디만 해라', '유시민의 집과 가족을 털고 (유시민이) 이사장을 맡은 노무현재단도 압수수색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내용이 담긴 글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기자는 자신과 친한(?) 한동훈 당시 검사장을 언급하며 이 대표를 압박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최 의원이 이 전 기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점이 성립하려면 먼저 이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별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 고의로 비방하려고 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먼저 주장의 허위성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어떤 판단을 했는지 살펴봅시다.

2022. 10. 4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최강욱 채널A기자 명예훼손' 선고 中
재판부: 피고인은 피해자가 이철에게 보낸 편지 등에 이 사건 게시글(최강욱의 페이스북 글)과 같은 발언이 포함돼 있다는 구체적 사실관계의 진술을 올렸다. 이를 통해 허위 사실을 드러낸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평균적인 독자의 관점에서도 이 사건 게시글에 사용된 표현이 단지 피고인의 의견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에 불과하다고 보기 어렵다.

재판부도 최 의원이 거짓말했다고 본 겁니다. 그런데 이 전 기자를 비방하려고 거짓말한 것은 아니니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비방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2022. 10. 4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최강욱 채널A기자 명예훼손' 선고 中
재판부: (비방성은) 피고인이 드러낸 사실이 거짓인지 여부와 별개의 구성요건으로서, 드러낸 사실이 거짓이라고 해서 비방할 목적이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중략) 비방할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과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라는 방향에서 상반되므로, 드러낸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이 부정된다.

재미있는 점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 비방할 목적이 없는 것이므로, 당연히 비방성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점입니다. 그런데 최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문제의 글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까요? 재판부는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취재 활동에 '관한' 글이었으니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 의원이 글을 올린 당시는 2020년 21대 총선이 한창이던 때였고, 최 의원은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한 선수였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최 의원은 공익을 수호해야 하는 정치인의 입장에서 문제의 글을 올린 것이 아니라 선거를 앞둔 자신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한 행위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최강욱은 '비판과 검증'을 했다?



재판부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 따지기 위해 △명예훼손 피해자가 공무원 등 공인인지 아니면 사인인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공공성과 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것으로 사회의 여론 형성이나 공개 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피해자가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 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2022. 10. 4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최강욱 채널A기자 명예훼손' 선고 中
재판부: 피해자는 종합편성채널의 기자로서 취재활동 등과 관련해서는 공인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고, 또한 피고인이 드러낸 위 사실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항이 아니라 기자의 보도윤리와 정당한 취재활동의 한계, 언론과 검찰의 관계, 선거의 공정한 진행 등 공적인 관심 사안에 관한 내용으로 사회의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략) 피해자가 검찰과 연결되어 부당한 취재활동을 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이고, 따라서 비록 피고인이 앞서 본 것처럼 허위의 사실을 드러내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피해자가 스스로 명예훼손적인 표현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을 자초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피고인은 열린민주당 황희석 최고위원이 제공한 자료 등을 토대로 피해자가 검찰과 결탁해 유시민에 대한 비위사실을 제보받아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고 결론 짓고, 피해자가 이철에게 보낸 편지 등에 나타나지 않는 내용을 마치 피해자의 발언인 것처럼 해 페이스북에 게시 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피해자가 이철에게 보낸 편지 등에 의하면, 당시 피해자는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이철에게 수회에 걸쳐 편지를 보내고 (중략) 검찰을 통해 선처를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과연 기자가 검찰과 연결되어 위법한 취재활동을 했는지 등에 대한 비판과 검증을 할 필요가 있었다.

최 의원이 페이스북에 이 전 기자의 취재활동을 허위로 꾸며 올린 주된 동기는 '비방'이 아닌 '검증'이었기 때문에 무죄라는 설명입니다. 총선 정국에서 언론사 기자가 검찰과 결탁해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인지에 대한 검증은 재판부 말마따나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른 방송사들이 소위 역취재를 해서 이 전 기자의 취재 행태를 보도하기도 했었죠.

박종민 기자

'불가근 불가원'이라는 기자들의 지상 명제도 어기고 취재원과의 친분을 앞세워 타인을 압박한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변명도 불가합니다. 하지만 기자 취재 관행의 부적절성과는 별개로 열린민주당 후보였던 최 의원의 허위사실 유포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를 두고 1심 재판부의 결론에도 갑론을박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1심에서 무죄 선고가 났지만 법정싸움이 이것으로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검찰측이 이미 1심 선고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2심 재판부도 1심과 같은 결론을 내릴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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