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언제쯤…" 부산 구포대교 투신 예방책 논의 '공회전'

난간 낮고 접근 쉬운 구포대교, 투신 사건 빈번
난간 높이 상향 · CCTV 추가 설치 등 보완책 거론
관련 기관들 "우리 일 아냐" 책임 떠넘기기 급급

부산 북구 구포대교는 투신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 자살 방지 스티커와 생명의 전화 등을 설치해뒀으나 난관 높이 상향과 CCTV 추가 설치 등은 여전히 실행되지 않고 있다. 정혜린 기자

부산 구포대교에서 최근 5년 동안 70여건의 투신 사건이 발생하는 등 투신 시도나 소동이 잇따르고 있지만, 수년 동안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관계 기관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반복해 빈축을 사고 있다.

부산 북구 구포동과 강서구 대저동을 잇는 구포대교. 높이가 성인 가슴팍 정도도 안되는 난간 아래로 낙동강 물이 유유히 흘렀다. 난간 아래 놓인 턱을 딛고 올라서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상체가 교량 밖으로 기울어지는 아찔한 장면도 연출됐다.

난간 곳곳에 붙여둔 '자살 예방' 스티커는 언제 부착됐는지 이미 빛이 바랜 모습이었다.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SOS 생명지킴이 전화는 투신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다리 위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부산 북구 구포대교에서 투신 사고가 잇따르면서 자살 방지 스티커와 생명의 전화 등을 설치했지만 난관 높이 상향과 CCTV 추가 설치 등은 여전히 실행되지 않고 있다. 정혜린 기자

부산시의회 박대근 의원의 시정질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까지 5년 동안 구포대교에서 일어난 투신 사건은 모두 77건에 달한다. 이는 낙동강 5대 주요 교량에서 발생한 사건의 59%로, 대부분 투신 사건이 구포대교에서 일어난 셈이다. 올해도 지난달 기준 7건의 투신 사건이 발생해 3명이 숨지는 등 투신 사고는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투신 시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구포대교의 난간 높이가 낮고, 북구와 강서구, 낙동강변 생태공원 등 여러 방향에서 걸어서 접근하기도 쉽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역에서는 수년 전부터 투신 예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관계기관들도 지난해 간담회를 열고 대책을 논의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마련된 투신 예방 수단은 CCTV 3대와 민간재단에서 설치한 생명의 전화 4대가 전부다. 높이가 1m 남짓에 불과한 난간 역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부산 북구 구포대교에서 투신 사고가 잇따르면서 자살 방지 스티커와 생명의 전화 등을 설치했지만 난관 높이 상향과 CCTV 추가 설치 등은 여전히 실행되지 않고 있다. 정혜린 기자

구포대교 관련 기관들은 예산 확보나 관리 권한 등을 이유로 난간 높이 상향이나 CCTV 추가 설치 문제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부산시 건설안전시험사업소는 "우리는 구포대교의 구조물 안전 진단과 보수만 담당할 뿐, 다리 위 시설물에 대해서는 법적인 (관리) 권한이 없다"면서 "부산시 본청이나 도로 유지·관리 권한이 있는 구청이 협의해 (개선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부산 북구청은 "보완 사업을 주관하는 곳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인데, 다리가 강서구와도 이어져 있는 만큼 북구만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맞지 않다"며 "부산시에서 예산을 확보해 내려주면 보완할 수 있는데, 예산 지원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부산시 관계자 역시 "시설물 보완은 향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곳에서 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교량 시설물 관리를 맡은 기초자치단체가 먼저 개선 방안을 제시하면 지원을 검토해보겠다"며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이를 두고 지역에서는 간단한 보수 조치만으로도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기관들이 지나치게 서로 눈치만 보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 역시 관계기관들이 시민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꼬집었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부산시민의 안전과 생명에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태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책임 주체가 논란이 될 수는 있지만, 행정 기관은 시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만큼, 하루 빨리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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