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이는 세상

연합뉴스

독재의 가장 큰 병폐는 상상력의 제약이라고 했다.

모든 창작물이 검열을 통과해야했고 창작자들은 자기검열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엄혹한 군부독재시절 표현의 자유는 박제화된 가치였다.
 
세계를 무대로 한 K-무비, K-팝 등의 한류가 문화강국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있는 이 때에 더구나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끊임없이 외쳐대는 요즘도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최근 제23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풍자하는 학생공모전 수상작이 전시된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 이어진 문화체육관광부의 대응이 논란을 낳고 있다.
 
'윤석열차'라는 제목의 금상 수상작에는 윤 대통령의 얼굴을 한 열차가 철도 위를 달리고, 기관사석엔 김건희 여사, 그 뒤로 검사들이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 묘사됐다.
 
문체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하여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나기 때문에 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마치 정치적인 주제는 창작 욕구를 저해한다고 읽히는 경고장이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5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준비한 자료화면을 보고 있다. 박종민 기자

웃자고 한 말을 죽자고 덤비는 꼴이라는 비판이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등 논란이 커지자 문체부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전국학생만화공모전을 개최하면서 문체부의 승인사항을 위반했음을 확인했다는 설명자료를 추가로 냈다.
 
'정치적 의도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작품'은 결격사유에 해당한다는 응모요강을 주최측이 어겼다는 것이다.
 
주최측에서 심사위원들에게 이같은 응모요강을 전달하지 않아 결국 문제의 작품이 수상작이 됐다는 취지다.

문체부가 애초에 이 부분을 먼저 지적했더라면 논란이 덜 할 수도 있었겠지만 궁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한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치인에 대한 풍자는 제작진의 권리라는 취지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악속한 바 있다.
 
그렇기에 한 고등학생의 풍자만화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윗분을 향한 불경하고 망측스런 사태를 서둘러 수습하려는 당국의 대응은 참으로 가볍다.

기관 경고든 지원철회든 그건 당국이 알아서 할 일이다.

이 학생은 무엇이든 상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었을게 분명하다.

대통령과 그 부인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으니 말이다.

세태를 뒤틀고 해체하는 풍자의 묘미를 인정하지 않고,웃자고 한 말을 죽자고 달려들고,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이는 어른들의 세계를 이 고등학생은 어떻게 이해할까.
 
우리 사회가 그의 작품에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레드카드를 꺼내들었다고 느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의 창작 욕구가 꺾이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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