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보 단장은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회의실에서 연 라운드 인터뷰에서 "첫날 리딩할 때 온 몸에서 전율이 왔다. 연출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역시 난 연출가구나'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2020년 11월 국립극단 단장 부임 후 첫 연출작이기도 하다. 김 단장은 "부임 당시, 2023년 10월 단장 임기가 끝날 때까지 연출을 안 한다고 했던 건 예술감독 역할에 더 충실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예술감독으로서 제 생각을 담은 작품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구나' 싶었다"고 했다.
'세인트 조앤'은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의 국민영웅 잔 다르크 이야기다. 그는 "2015년 경 이 작품을 연출할 기회가 있었는데 서울시극단 단장으로 부임하는 바람에 시기를 놓쳤다"며 "숨겨진 카드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주머니 속에서 꺼내고 싶었다. 방대한 작품이지만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작품은 잔 다르크를 영웅이 아닌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그의 신념이 어떻게 무너지고 좌절되는지 추적한다. 김 단장은 "인간은 살면서 자기 신념이나 가치관이 사회구조나 타인에 의해 배제되고 짓밟히는 경험을 하는데 극중 인물들도 마찬가지"라며 "그로 인해 가치가 전도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측면에서 이 작품은 동시대성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원본에서 중복된 부분을 덜어내 3시간 40분 분량을 2시간 40분(인터미션 제외)으로 축약했다. 김 단장은 "역사적 사실에 주안점을 두되 조지 버나드 쇼가 바라본 인물이 있으니까 원본을 충실히 따랐다"며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 직분과 직책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제3자 입장에서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쁜 사람을 나쁘게 그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누구를 더 착하게, 더 나쁘게 그린다는 생각은 안 하고 원본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연출 방향을 설명했다.
'세인트 조앤'은 정치, 종교가 타락한 시대의 한 가운데 서 있던 여인 '조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는 이야기다.
조앤은 '병사의 복장을 한 여성'으로 남녀의 역할이 철저히 분리돼 있던 중세시대에 별난 여인 취급 받지만 신의 목소리에 따라 용맹하게 싸워 누구도 이길 수 없었던 오를레앙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그럼에도 교회와 영주는 자신만의 이권을 내세우며 조앤을 모함한다.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판대에 선 조앤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택한다.
한동안 연극 무대를 떠나 있다가 김광보 단장의 부름을 받고 지금이 아니면 못 나올 것 같아서 나왔다는 이승주는 "누가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기 전에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간이 충돌하는 작품이다. 조앤이 잔뜩 웅크리고 유약한 왕 샤를 7세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백은혜는 "왜 나를 잔 다르크 역할에 캐스팅 했을까' 생각했다. 내 목소리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