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전 정무장관은 19일 한국 정부가 90년대 초반 북일·북미 수교협상 진전을 강하게 반대한 사례를 들며 "북한의 핵 개발에 역대 정부의 정책 일관성 부족 등 우리 정부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철언 전 장관은 현 정부를 향해서도 '담대한 구상'이나 '담대한 지원 계획' 등 한국을 홍보하는 것 같은 표현은 적절하지 않고, 대통령이나 정부 수뇌부가 직접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북전단 살포는 "김정은의 코털을 잡아 자꾸 약을 올리는 격밖에 되지 않는다"며, 금지를 주장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북방정책을 주도하며 42차례의 대북비밀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박철언 전 정무장관은 이날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국민과 함께 만드는 통일방안' 주제의 통일정책포럼 기조연설에서 지난 1990년 9월 24일 가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 등 일본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에서 북일 국교교섭 개시에 합의한 사실이 알려진 뒤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김종휘 수석)과 노 대통령이 일본에 '정말 그럴 수가 있느냐, 북을 택하든지 남을 택하든지 하나를 택하라'는 극언까지 하며 북일 고위급 접촉을 차단했다"고 회고했다.
박 전 장관은 북미 고위급 회담에 대해서도 1992년 1월 김용순 국제부장의 미국 방문 당시 북한이 원했던 미 국무장관의 회담은 절대 안되고 아놀드 캔터 국무차관과의 회담을 한 차례만 하도록 미국에 요구해 협상 진전을 막았다고 전했다.
박 전 장관은 "우리가 밝힌 7.7선언과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는 정부가 북일, 북미 수교를 지원한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협상 진전을 차단한 것"이라며, "이후 북한과 가진 비밀 접촉에서 북측으로부터 남한이 겉과 달리 뒤로는 사기를 치는 것 아니냐는 항의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북한은 이후 핵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며,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개혁개방을 거부하는 북한 수뇌부의 경직성 등에 중요한 원인이 있지만 역대 정부의 정책 일관성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박 전 장관은 '비핵·공동번영과 평화통일을 위한 실천과제'와 관련해 "우리의 통일방안은 흡수통일이 아니라 남북공존의 국가연합 단계를 거쳐 평화통일을 하는 것"이라며, "흡수통일방식인 독일통일 모델은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것인 만큼 언급하지 말아야 하고, 대통령이나 정부 수뇌부가 직접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군비 증강과 철저한 군사훈련, 북한도발에 대한 즉각적인 강력대응 등 국가안보는 완벽하게 하되, 대북정책은 유연해야 한다"며, "효과 없는 대북전단 살포는 금지해야하고, 어떤 경우에도 인도적 지원은 계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전 장관은 특히 "담대한 구상이나 담대한 지원계획 등 한국 홍보적 표현들은 자존심이 강한 북한을 너무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인권문제 제기는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냐고 오해할 수 있는 만큼 들먹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 전 장관은 어떤 정부에서든 지속적인 통일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상설 초당적 관민고위급 자문기구를 설치하고, 남남갈등 해소를 위해 보수·진보의 대화의 장을 마련해 시민사회가 가진 통일의 힘이 발휘될 공간을 넓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박 장관은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미 확장억제로는 미흡하고, 지난 1991년 철수한 미국 전술 핵을 북 핵 폐기 시까지 재배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반복했다.
다만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미국의 중국포위 전략과 MD전략을 완화시켜 북핵문제 해결에서 중국의 도움도 이끌어내는 것이 현 시기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라고 박 전 장관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