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한국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이자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드라마 시리즈 부문 감독상(황동혁)과 남우주연상(이정재)을 받았다.
앞서 진행된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 시상식에서 수상한 여우게스트(이유미), 싱글 에피소드 부문 특수시각효과상(정재훈 외), 스턴트 퍼포먼스상(임태훈 외), 내러티브 컨템포러리 프로그램 부문 프로덕션 디자인상(1시간 이상)(채경선 외)까지 포함하면 무려 6관왕의 대기록이다.
한국 창작자가 한국어로 제작한 가장 한국적인 콘텐츠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미국 내에서도 가장 미국적인 시상식으로 유명한 에미상 트로피를 차지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역사적 사건이다.
지난 1949년 1월 25일 첫 시상식이 개최된 이후 영어가 아닌 언어로 제작한 드라마가 에미상 후보에 오른 것도 '오징어 게임'이 '최초'이며, 수상한 것 역시 '최초'다. 이에 외신들은 '오징어 게임'의 성과를 주목하며 "새 역사를 썼다"고 평가했다.
비영어 드라마 '최초' 美 1위…'이변'의 시작
'오징어 게임'은 지난해 9월 17일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넷플릭스 TV(비영어) 부문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후 28일 동안 누적 시청량 기준 16억 5045만 시간을 기록하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또한 콘텐츠 강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는 넷플릭스가 공개한 비영어권 시리즈 중 '최초'로 21일 연속 '오늘의 톱 10' 1위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다.
미국 평론 사이트 로튼 토마토가 인증한 영화 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캐럴린 하인즈는 "한국 콘텐츠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우선,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있었다. 이어 최근에는 황동혁 감독의 K-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와 SNS(소셜네크워크서비스) 계정이 있는 모든 북미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KOFIC 한국영화 137호)라고 평가했다.
독일 유력 주간지 차이트는 이를 두고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대중문화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강력한 신호"라며 "대중문화 역사상 처음으로 서구 영어권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깨졌다"(KOFICE 통신원 리포트 '오징어 게임 그 이후, 창의성의 기적 보여주는 한국')고 분석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13일 CBS노컷뉴스에 "흔히 언어의 장벽이 있다는 아카데미 시상식보다 더 장벽이 높았던 게 에미상"이라며 "최근 한국 작품이 미국이나 서구권에서 여러모로 인정받아왔는데, 에미상 수상을 통해 그 흐름이 한층 더 높게 나타났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작품과 한국 제작진이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더 인정받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 에미상 수상, 비영어권 콘텐츠의 '전환점' 마련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가 '오징어 게임'을 통해 에미상을 받은 것을 두고 외신은 물론 평론가들도 전 세계가 비영어권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했음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매체 인디와이어는 "이정재의 에미상 수상은 역사적일 뿐 아니라 비영어권 프로젝트를 인정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기존에는 '기생충'(한국) '드라이브 마이 카'(일본)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노르웨이)처럼 작품은 인정받더라도 (배우의) 연기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은 이러한 상황을 바꾸는 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에미상 드라마 시리즈 부문에서 아시아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이정재가 '최초'이며, 에미상 전체를 통틀어 아시아 배우가 연기상을 받은 것은 네 차례에 불과하다. 한국계 캐나다 배우 산드라 오는 에미상에 13차례나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 기록은 전무하다.
하재근 평론가는 이번 수상의 또 다른 의미에 관해 "향후 미국인이 한국 작품과 한국 배우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과거보다 편견이 줄어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 무대에 만들어 낸 '변화'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 영향력은 향후 글로벌 시장이 '영어 콘텐츠' 중심에서 '비영어 콘텐츠'로까지 확산되는 등 새롭게 재편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오징어 게임'이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에 신드롬을 일으키자 블룸버그는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 창작자들은 미국 중심의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 능력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오징어 게임'이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에미상 후보에 오르자 멕시코 언론들이 이례적으로 일제히 이를 보도(KOFICE 통신원 리포트 '에미상 후보 오징어 게임, 역사가 될 것인가')했다. '오징어 게임' 자체는 물론 '비영어권 드라마'가 보여줄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오징어 게임'이 메인인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건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어떤 부분에서 경쟁력이 있는지 보여준 것이다. 이 경쟁력이란 한마디로 말해 '맨 파워(인적 자원)'"이라며 "한국 감독들의 콘텐츠 제작 능력을 인정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징어 게임'의 수상은 전체 글로벌 시장에서의 구조 변화, 콘텐츠 제작 방식에서부터 성과를 어떻게 인정받는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며 "시상식이 치하의 의미도 있지만 비즈니스와 연관된 부분이 크다. 향후 시장을 영어권뿐 아니라 비영어권까지 포괄하는 시장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