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경기도 대북행사마다 '쌍방울 유령회사'서 수십억 움직였다

北행사 직전 등장한 쌍방울 '유령회사'
두차례 행사마다 이상 자금거래 발생
유령회사서 나간 35억은 아직 미회수
이화영 '쌍방울 뇌물' 정황도 수사중

연합뉴스

쌍방울그룹의 경기도 대북교류행사 우회 지원 의혹이 수사로 전환된 가운데 2차례 행사가 열린 시기마다 쌍방울의 페이퍼컴퍼니를 중심으로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대 이상 자금 거래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행사가 끝난 시점에서는 해당 페이퍼컴퍼니에서 50억원 이상의 자금이 유출됐는데, 그중 상당액은 아직까지 회수되지 않고 있다.

검찰은 경기도의 대북교류행사 시기 쌍방울을 둘러싼 이같은 자금 흐름에 주목하면서 수상한 돈들의 용처 파악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행사를 주도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쌍방울 법인카드로 2년 넘게 1억여원을 사용해온 정황을 포착하고, 그 배경에 어떤 대가성이 있었는지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행사마다 쌍방울 유령회사 '수상한' 자금

13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쌍방울은 2018년 11월 12일 '착한이인베스트'라는 투자회사에 100억원어치 전환사채(CB)를 발행하기로 이사회에서 결의했다. 착한이인베스트가 쌍방울의 CB를 인수하면서 쌍방울에 100억원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CB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사채로, 통상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목적에서 발행한다.

쌍방울이 CB를 발행해 100억원을 조달하기로 결정한 날은 경기도가 민간단체인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와 공동으로 대북교류행사를 주최하기 이틀 전이었다. 경기도와 아태협은 2018년 11월 14일부터 3박4일의 일정으로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 5명이 참석해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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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직전 쌍방울에 100억원을 지급하기로 한 '착한이인베스트'는 사실상 쌍방울의 페이퍼컴퍼니다. 명목상 투자회사이지만 특별한 영업 활동이나 매출이 없다. 회사는 대북교류행사가 열리기 불과 2개월 전에 설립됐다. 특히 CB 발행 당시 착한이인베스트 최대주주와 쌍방울 대표는 모두 김성태 전 회장으로 동일했다. 쌍방울이 발행한 CB를 쌍방울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가 사들인 일종의 내부거래인 셈이다.

착한이인베스트를 둘러싼 수상한 자금은 2019년 4월에도 등장한다. 장원테크와 KH E&T라는 회사에서 각각 30억원과 20억원을 착한이인베스트에 빌려준 대목이다. 장원테크와 KH E&T는 모두 KH그룹 계열사들로, KH E&T의 최대주주가 장원테크다. 한몸인 회사가 같은 시기 50억원을 착한이인베스트에 투입한 것이다.

쌍방울의 페이퍼컴퍼니에 50억원을 지원한 KH그룹은 쌍방울과 인연이 깊다. 계열사들끼리 필요할 때마다 상대 회사에 돈을 대는 방식의 금전거래로 '윈윈'하는 관계다. 두 그룹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KH그룹 배상윤 회장의 친분 역시 두텁다고 한다. 이들은 과거 주가조작으로 함께 기소돼 처벌받은 전력도 있다.

유령회사서 유출된 35억 행방 '깜깜이'

이렇게 밀접한 쌍방울과 KH그룹은 2019년 1월 아태협 후원에 같이 나선다. 당시 서울 청담동 한 호텔에서 열린 아태협 안모 회장의 출판기념회에 김성태, 배상윤 회장이 직접 참석해 후원 협약식을 동시에 진행했다. 쌍방울 계열사는 물론 착한이인베스트에 돈을 빌려준 장원테크를 비롯해 KH그룹 계열사들도 아태협 후원사로 참여했다.
(관련기사 : [단독]아태협-쌍방울 '대북 교류' 매개로 한몸처럼 움직였다)

KH그룹에서 쌍방울의 페이퍼컴퍼니인 착한이인베스트로 50억원이 흘러간 건 그로부터 3개월 뒤다. 다시 3개월이 지난 2019년 7월 경기도와 아태협은 필리핀에서 제2회 대북교류행사를 개최했다. 제1회 행사를 앞두고 쌍방울에 1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된 상황과 유사하다. 제2회 행사 때도 리종혁 부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참석했다.

경기도와 아태협이 주최한 대북교류행사는 한번 열 때 8억원 넘는 비용이 들었다. 애초 사업비는 공동 주최측인 경기도가 전부 지원하기로 했지만, 예산안의 도의회 통과가 힘들어지면서 아태협이 모자란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그리고 이런 아태협의 후원자로 나선 게 쌍방울이었다. 기부금 형식으로 쌍방울이 낸 돈만 수억원에 달한다. 예산이 부족했던 경기도의 대북교류행사를, 쌍방울이 아태협이라는 단체를 앞세워 이른바 '우회 지원'한 정황이다.

대북교류행사와 겹쳐 착한이인베스트에서 거액이 유출된 것도 수상한 정황을 더한다. 제1회 행사가 끝난 2018년말 기준 착한이인베스트에서 대표이사가 대여금 명목으로 꺼내간 돈은 약 4억 9천만원이다. 제2회 행사가 치러진 2019년말에 이르러서는 빼나간 돈이 52억7천만원으로 불어났다. 그중 35억원 상당은 아직까지 회수되지 않고 있는 '깜깜이' 돈이다.

유령회사, 변호사비 대납 의혹서도 등장

착한이인베스트는 앞서 CBS가 단독 보도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서도 핵심 배후로 지목된 곳이다. 쌍방울 안팎에서는 착한이인베스트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비자금 저수지'라는 말들도 나온다. 그랬던 곳에서 변호사비 대납 의혹뿐만 아니라 이제 아태협을 거친 '우회 지원' 정황과의 접점마저 드러난 것이다.
(관련기사 : [단독]이재명 변호사비 대납 의혹 속…S사의 이상한 사채 발행)

앞서 쌍방울 관계자는 "과거 쌍방울의 재무제표가 좋지 않아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이라 오너였던 김성태 당시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착한이인베스트를 설립, 자금을 운용했다"며 "부당한 거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KH그룹 관계자도 "착한이인베스트에 돈을 대여한 건 7.5%를 이자로 받은 기업간 정상 거래였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검찰, 이화영 '쌍방울 뇌물' 정황 정조준

검찰은 이같은 자금 흐름을 수상히 여기면서 특히 이화영 킨텍스 대표이사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수사팀은 최근 이 대표가 쌍방울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정황을 포착하고, 그의 킨텍스 집무실과 거주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대표는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2년 넘게 쌍방울 법인카드를 지급받아 1억여원을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이 대표는 2017년 3월부터 이듬해 6월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발탁되기 직전까지 쌍방울 사외이사를 지냈다. 이후 평화부지사 시절에는 경기도와 아태협의 대북교류행사 유치에 앞장서면서 2차례나 북한을 방문했다. 행사가 치러진 당시 쌍방울 계열사인 '광림'은 북한의 전기 인프라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대북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이 대표가 쌍방울 법인카드로 취한 이득과 경기도 행사에 쌍방울이 우회 지원하면서 이권을 노린 정황 사이 대가성 여부가 추후 검찰 수사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쌍방울 사외이사와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연달아 지낸 이 대표가 중간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는지가 주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조만간 이 대표를 소환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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