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맞서 한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크게 번졌다. 이들 두고 일본 우익에서는 '또 냄비가 끓기 시작했다'고 비아냥대며 얼마 못가 한국은 일본에 무릎을 꿇을 것으로 예상했다.
사실 일본이 한국의 불매운동을 마음껏 폄하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이 일본에 비해 낙후됐기 때문이다. 2019년 당시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입되는 물품 중 68%는 소부장 품목으로, 이 비율은 중국의 53%나 미국, 유럽의 40%보다 훨씬 높았다.
정부는 이같은 낙후성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2001년 '소재부품특별법'까지 만들었으나 일본을 따라 잡지는 못했다. 범용 기술 위주로 육성을 하다 보니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일본의 '세계 일류 기술'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0년 소재부품특별법에 장비 부문을 추가하고 일본산 소부장 품목을 국산으로 대체하는 내용의 '소부장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특별법에 따라 '소부장 특별회계'와 '소부장경쟁력강화위원회'가 설치됐다. 소부장 특별회계는 소부장 육성이라는 특별한 용도로 지정된 예산으로, 예산당국의 예비타당성조사도 면제받을 수 있는 예산이다.
당시 정부는 '이번에야말로 일본으로부터 소부장 기술 독립을 이루겠다'며 2024년까지 10조원을 투입하기로 하는 등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이같은 '소부장 독립 의지'가 무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소부장 특별회계 예산의 삭감이다.
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2023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소부장 특별회계 예산은 2조 3425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7%나 줄었다. 내년도 전체 예산이 5.5% 증가하고 특별회계 예산 전체가 3.4% 증가하는데도 소부장 특별회계 예산은 반대로 대폭 삭감된 것이다.
올해도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는 소부장 특별회계 예산이 삭감은 됐지만 2.9%에 그쳤고, 그나마 전체 특별회계 예산이 4.9% 깎인 것에 비하면 삭감이 소폭에 그쳤었다.
그러나 내년도 소부장 예산은 윤석열 정부의 '긴축 재정'의 칼날을 정면으로 맞고 있다. 특히 중소벤처기업부 소관의 소부장 예산은 올해 3538억원에서 내년 2183억원으로, 무려 38%나 삭감됐다.
중기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소부장 기업 상당수가 중소기업이라며 '소부장 강소기업' 100곳을 선발해 지원하고 소부장 펀드에 모태펀드를 출자하는 등 소부장 산업 육성에 남다른 의욕을 보여왔다.
그러나 내년도 소부장 예산의 대폭 삭감에 대해 중기부는 "연구개발(R&D) 지원 사업 가운데 일몰로 끝나 일반회계로 전환된 사업도 있고 모태펀드 출자금액도 줄면서 소부장 예산이 줄었다"며 "그러나 2020년 이전과 비교하면 큰 무리없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같은 설명은 예산 용도를 명확히 하고 예산 집행도 신속히 하려는 소부장 특별회계의 설치 목적과 배치되는 것이다. 더구나 '2020년 이전과 견줘 무리가 없는 예산'이라는 시각은 '일본의 수출 규제 이전의 예산으로 돌아가도 무방하다'는 논리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중기부와 함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의 내년도 소부장 예산도 올해 4459억원에서 내년도 4294억원으로 3.7% 줄었다. 과기부 소부장 예산은 올해 6.9% 증가했으나 내년에는 삭감으로 돌아선 셈이다.
다만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소부장 특별회계 예산은 올해 1조 6832억원에서 내년 1조 6948억원으로 0.7% '찔끔' 증가했다. 올해 7.8% 증가한 것에 비하면 증가폭이 1/10로 급락했다.
소부장 정책의 범부처 '컨트롤타워'인 소부장경쟁력강화위원회도 존재감이 옅어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소부장위원회를 총리 소속으로 변경한다고 7일 밝혔다. 소부장위원회는 '소부장특별법' 규정에 따라 현재는 대통령 소속인데, 이를 총리 소속으로 낮추겠다는 것.
당초 '폐지 1순위' 위원회로까지 거론됐던 것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대통령 중심제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총리 소속으로 되면 존재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위원회 활동도 줄었다. 지난 3월 대선 직전 회의가 한차례 열린 이후 아직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소부장위원회는 일본의 수출 규제 뿐 아니라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공급망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그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활동은 이전보다 뜸해지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