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방지법' 있어도 성착취 범죄 온상 텔레그램 못잡아

전문가들 "경찰 수사기법 보완·강화로 사각지대 없애야"

연합뉴스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유통을 막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이른바 'n번방 방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이 시행됐으나 정작 텔레그램은 법 적용 대상에서 비껴나 있어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미성년자 불법 성 착취 영상물이 텔레그램으로 유포되는, 'n번방'과 유사한 형태의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관련 범죄의 온상이 된 텔레그램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2일 정보보호 및 법학 전문가 등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사적 대화방'이어서 인터넷 사업자에게 성범죄물 삭제 등 조처를 하도록 한 개정 정보통신망법 및 정보통신망법상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해당 법이 'n번방'이나 '박사방' 등의 성 착취물 유통 창구 역할을 한 텔레그램을 제재하지 못하는 문제는 이미 법 시행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n번방 방지법'으로 텔레그램을 통한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고 본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적인 대화에도 해당 법을 적용하면 과도한 규제가 되기에 입법상의 내재적 한계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방송통신위원회도 사적 대화방에서의 불법 촬영물 유통 행위는 신고 및 수사로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문제는 해외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이 수사 협조 요청에 응하지 않아 이용자 파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텔레그램은 지금껏 그 어떤 정부에도 수사 협조를 하지 않아 왔다"며 "텔레그램 정보만으로 피의자 신원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도 "본사가 협조하지 않는 한 이용자 정보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 다만, 유통된 불법 영상을 보고 촬영장소를 확인하는 등 대화방에서 나온 정보를 수사 단서로 쓸 수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논란이 된 '제2의 n번방' 사건의 가해자 역시 이 점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용의자 A씨가 미성년자를 협박해 성 착취 동영상을 강제로 찍게 만든 뒤 이를 받아내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 등에 유포한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다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A씨는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절대 잡히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A씨가 텔레그램 외 다른 SNS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경찰 수사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상진 교수는 "한국업체처럼 압수수색으로 휴대전화 번호나 IP 정보 등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선 결국 위장 수사 강화 등 수사 방법을 보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은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신분 위장 수사를 허용하는 특례 규정을 두고 있다.

경찰도 갈수록 늘어가는 사이버 범죄 대응을 위해 수사 기법을 고도화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경찰청은 '온라인 수색 활동의 적법성 검토 및 도입방안'이라는 주제의 연구용역을 지난 5월부터 진행 중이다.

온라인 수색 활동이란 휴대폰 등 피의자의 전자기기를 해킹한 뒤 감시 프로그램을 설치해 범죄 증거 등을 빼내는 수사기법이다.

피의자 신원만 최대한 빨리 확보한다면 온라인 수색 활동으로 수사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사이버 범죄 대응을 위한 방법으로 개념 정립을 하는 단계"라며 "해외 사례를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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