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30주년…친구로 살 것인가 적으로 살 것인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22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경축 리셉션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은 한중수교 30주년 되는 날이다. 한국은 1992년 8월 24일 대만과 외교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했다.
 
중국에서는 한중수교 30주년과 관련해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말은 공자 논어에 나오는 서른살에 뜻을 세운다는 의미다. 두 나라가 수교 30주년을 맞은 만큼 앞으로도 관계를 잘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는 희망이 투영돼 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삼십이립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는 것은 관계가 좋지 않거나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과 중국 간의 무역액 만큼 수교 30주년의 성과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없다.
 
1992년 64억 달러이던 대중 교역은 2021년 3천600억 달러로 56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는 4천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중국은 우리나라의 1위 교역 대상국(24%)이었다. 무역 흑자의 80%가 중국과의 무역에서 나왔다.
 
하지만 한국에게 중국은 더 이상 기회의 땅이 아니다.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연속 3개월간 대중 무역수지에 적자가 났다. 내리 3개월 적자는 30년 만에 처음이다. 적자 행진은 8월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한국이 중간재를 중국에 공급하고 중국이 이를 이용해 완제품을 만들어 세계에 공급하는 구조가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강력한 산업 현대화 정책을 추진한 중국이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해 한국의 기술 우위가 약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상하이 최대 번화가인 난징둥루(南京東路)에 새로 들어선 삼성전자 플래그십 매장 앞을 행인들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기업은 거대한 중국 내수 시장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2013년 19.7%로 중국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던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지난해에는 0.6%로 하락했다.
 
2009년에 중국 TV 시장의 5.6%를 차지했던 LG 전자의 지난해 시장 점유율은 0.1%로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 2016년 7.35%까지 올랐던 현대·기아차 양사 합계 시장 점유율은 2021년 1.7%까지 떨어졌다.
 
소비재 중 가장 성공한 화장품도 최근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중국 사업 의존도가 높던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등 대형 기업의 실적 부진으로 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소비재 시장에서 한국산 점유율은 3%에 그쳐 아세안(15.2%), 미국(10.5%), 독일(10.1%) 등 상위권 국가와 큰 격차를 보였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요소수의 원료인 요소 수출을 사실상 중단하는 수출 의무화 조치를 취했다. 사전에 대비를 못한 한국은 요소수 대란을 겪었다.
 
요소수 사태는 특정 원자재와 부품의 중국 의존도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문제는 이런 품목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중국이 한국을 길들이기 위해 또는 한국을 보복하기로 작정할 경우 제2, 제3의 요소수 대란은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한중간에 산업체인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어 어느 한 쪽의 공급망 중단이나 경제 보복은 상대국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닝푸쿠이 전 주한 중국대사는 월간 중국 8-9월호에서 "중국과 한국은 지역과 세계의 주요 경제국으로서 상호보완과 경쟁관계를 잘 처리해 양국이 공급망 안정을 유지하고, 협력공영을 견지하며, 양국 경제협력의 질적인 발전을 촉진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한중 관계는 경제가 국제 정세와 얽히면서 복잡해지고 미묘해지고 있다.
 
어렵게 어렵게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은 강해지고(强起来) 부유해지는(富起来) 중국 견제에 나서고,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우며 경제 과학 군사 등 각 방면에서 미국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독불장군식으로 혼자 나섰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들을 규합해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을 쓰면서 한국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도 위협받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중국 배제 성격이 강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나 반도체 동맹(칩4)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지만 한·중 간에 경제적 연결 고리가 강한 만큼 중국과의 디커플링(분리) 또는 중국의 보복 가능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왼쪽부터 박진 장관,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한중 외교장관회담. 연합뉴스

한동안 잠잠했다가 다시 수면위로 오른 사드 문제는 한중관계의 화약고나 다름없다.
 
수교 30주년을 직전에 둔 지난 9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중국 칭다오에서 만나 사드 문제가 양국 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하지만 중국은 회담 다음날인 10일 이른바 '사드 3불'(不)(사드 추가하지 않고, 미국 미사일방어·한미일 군사동맹 불참)에 더해 1한(限·기존 사드 운용 제한)까지 들고 나왔다.
 
중국은 주한미군 사드의 X-밴드 레이더가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탐지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사드 추가 배치를 결정할 경우 강하게 반발할 전망이다.
 
사드 추가 배치는 주요 국정 과제에서는 빠졌지만 미국 정부가 추가 배치를 압박할 경우 한미동맹을 외교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시진핑 국가주석은 10년 집권의 전통을 깨고 올 가을 제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 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국민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5년마다 바꾸는 한국인들에게 이런 광경이 좋게 보일 리 없다. 갈수록 경직되고 있는 중국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될 수 있는 좋은 기제다.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부정적 평가는 이미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의 지난 6월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 10명 중 8명이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서도 애국주의 교육의 세례를 받은 지우링호우(90년대 이후 출생자), 링링호우(2천년대 출생자)들을 중심으로 반한 감정이 커지고 있다.
 
한국 젊은이들의 반중감정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 퓨리서치가 조사한 19개국 중 20~30대에서 중국을 싫어하는 경향이 나이 든 사람들보다 더 강한 유일한 나라였다.
 
지난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논란과 피켜스케이팅 판정 논란은 그 어떤 작은 불씨 하나에도 한중 관계가 나빠질 수 있음을 잘 보여줬다.
 
 
연합뉴스

1992년 한중수교 당시 양국의 인적 교류는 13만 명에 불과했지만 2019년 말에서는 1천만 명을 넘었다.
 
자유왕래를 통해 상대를 직접 보고 알게 되면 이해하게 되고 좋은 감정도 생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양국의 인적교류는 사실상 끊겼다. 여기에 중국의 독특한 제로 코로나 정책은 스스로를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켰고 한국인들의 반중감정도 키웠다.
 
전문가들은 악화한 양국 간 국민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선 코로나19로 막힌 인적·문화적 교류를 재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진곤 주중한국문화원 원장은 "양국 민간에 우호적인 감정이 생겨나려면 무조건 많이 만나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양국관계에서 정치외교적인 요소가 문화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