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일상이란 전쟁터에 놓인 싱글 워킹맘의 삶 '풀타임'

외화 '풀타임'(감독 에리크 그라벨)

외화 '풀타임' 스틸컷. ㈜슈아픽처스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싱글맘이자 워킹맘의 삶이란 그 자체로 '전쟁'이고, 그의 매일은 '투쟁'이다. 어떻게 보면 싱글 워킹맘인 여성의 현실은 영화 '풀타임'보다 더 전쟁 같고, 매일이 더 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극적인 반전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현실을 생각하면 그나마 영화라서 가질 수 있는 반전조차 현실에는 없다는 자각이 뒤늦게 밀려오며 더욱더 공포가 느껴진다.
 
파리 교외에서 홀로 두 아이를 기르는 쥘리(로르 칼라미)는 파리 시내의 고급 호텔 룸메이드로 일하며 장거리 출퇴근을 하고 있다. 그는 직장 상사 몰래 원하는 직장에 면접을 보게 되고 새로운 삶이 열릴 거라 기대한다.
 
그런데 전국적인 교통 파업이 발생해 대중교통 시스템이 마비되자 자신의 직장도, 새롭게 얻으려는 직장도, 자신의 가정도, 아슬아슬하게 부여잡고 있던 일상의 모든 것이 엉망이 될 위기에 처한다. 오늘도 쥘리는 지각 위기에 놓인 채 파리 시내를 전력 질주할 수밖에 없다.
 
외화 '풀타임' 스틸컷. ㈜슈아픽처스 제공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최우수 감독상과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석권한 '풀타임'(감독 에리크 그라벨)은 전국적인 교통 파업이 발생하자 직장·가정 등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가는 한 여성의 일상이 무너져 가는 위기를 스릴러라는 장르에 녹여낸 수작이다.
 
'풀타임'은 쥘리를 통해 싱글 워킹맘의 삶과 일상을 위협하는 현실이 얼마나 공포스러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싱글맘이자 워킹맘이 가질 수 있는 일상의 공포를 포착해 내 스릴감 있게 연출해낸 영화는 숨 가쁘게 달려야 하는 쥘리의 삶을 쫓아간다.
 
누군가 대신 돌봐줄 사람 없이 어린 아이 둘을 홀로 키워야 하는 쥘리는 아이들을 위해 직장이 있는 파리가 아닌 파리 근교에서 살며 매일 기차를 타고 먼 길을 출퇴근해야 한다. 고급 호텔 룸메이트 책임자로 일하는 쥘리는 보다 나은 직장으로 이직하기 위해 도전하고, 면접 제안을 받지만 교통 대란이 그의 발목을 붙잡게 된다.
 
이른바 '노란 조끼 시위'(2018년 11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발표한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면서 시작됐다가, 점차 반정부 시위로 번져나간 시위)가 발생하며 쥘리의 반복적인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외화 '풀타임' 스틸컷. ㈜슈아픽처스 제공
호사다마라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로운 직장 면접은 잡혔지만, 아이 생일에 교통 대란에 아이 봐줄 사람은 더 이상 못 봐주겠다고 하는 것도 모자라 대출 연체로 연락받는다. 이 와중에 아이 아빠는 양육비를 보내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신입이 들어와 교육해야 하고, 면접 보러 가야 하는데 업무를 바꿔줄 사람도 없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쥘리는 홀로 이 모든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
 
흔히 삶을 두고 '전쟁'에 비유하는데, 싱글맘이자 워킹맘인 쥘리보다 이 같은 비유가 더 맞아떨어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에게 일상과 일터는 그야말로 전쟁터와 다름없다. '노란 조끼 시위' 시위자들처럼 주인공은 매일이 투쟁하는 삶이다. 시위자들은 노란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서 정부에 항의하지만, 쥘리는 부당함 속에서도 항의조차 쉽게 할 수 없고 번번이 '엄마'이자 '약자'라는 이름으로 늘 고개 숙여야 한다.
 
고급 호텔 객실 청소부장인 쥘리는 파업조차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다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며 길로 나섰지만, 쥘리는 고급 호텔에 묵을 예정인 손님과 손님이 머물고 떠난 자리를 치우기 위해 권리를 외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반복적인 일상에 갇혀 있어야 하는 쥘리는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정당한 투쟁조차 하지 못한다.
 
영화 내내 이야기되는 노란 조끼 시위, 그리고 이와 관련된 상황과 파업에 대한 뉴스 등은 싱글 워킹맘의 일상이 결코 이러한 상황이나 사회와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사회에 속한 구성원이지만, 사회로부터 안전과 안정을 제공받지 못하는 사회 구성원이자 사회적 약자인 싱글 워킹맘의 상황을 지근거리에서 보여준다. 또한 노동자이지만 투쟁할 권리조차 얻지 못한 노동자의 모습 또한 쥘리를 통해 그려낸다.
 
외화 '풀타임' 스틸컷. ㈜슈아픽처스 제공
이처럼 모든 곳에서 약자의 상황에 위치한 주인공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버텨나가야 하는지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 싱글 워킹맘, 노동자, 독박육아 책임자가 견뎌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린다. 그리고 이처럼 녹록지 않은 삶에서 사회가 무엇을 제공하고, 무엇을 보장해야 하는지 되묻는다. 그렇게 '풀타임'은 누가 홀로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여성을 힘들게 하는지 영화 내내 질문을 던진다.
 
칼부림도 없고 낭자한 피는커녕 피 한 방울 등장하지 않지만 쥘리의 일상, 그가 처한 상황, 그의 표정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떨린다. 싱글 워킹맘이 처한 상황과 심경을 극대화된 상태로 다가오며 그것만으로도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공포가 된다.
 
영화는 빠르게 주인공을 뒤쫓고, 전자음의 배경음악을 통해 긴장감을 한층 높인다. 재밌는 것은 반복적인 전자음으로 이뤄진 사운드트랙이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수단인 동시에 반복적인 일상을 되풀이하는 주인공의 삶과 일상을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특별한 멜로디를 갖기보다 몇 가지 음이 반복되는 일렉트로닉 음악은 매일같이 정해진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전쟁 같은 일상에서 버텨나가고 살아남아야 하는 주인공 그 자체를 암시한다.
 
전쟁 같은 삶 한 가운데서 자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사투를 벌이며 버텨내고 살아내는 쥘리를 연기한 로르 칼라미의 표정, 특히 끝내 눈물을 흘리는 그의 표정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열연으로 그려낸 쥘리와 그의 삶이 마음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87분 상영, 8월 18일 개봉, 전체 관람가.

외화 '풀타임' 메인 포스터. ㈜슈아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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