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한 신념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지혜로운 성정을 지닌 조선 최고의 장군이자 조선의 바다를 지키는 전라좌수사 이순신. 파죽지세로 진군하는 왜군과 절대적 수세에 놓인 조선의 위기 속 모든 것을 건 필사의 전략을 거행하고자 한산도 앞바다로 향한다.
조선을 단숨에 점령한 왜군은 명나라로 향하려는 야망은 물론 연승에 힘입어 그 기세로 대규모 병력을 한산도 앞바다에 집결시킨다. 이순신 장군은 연이은 전쟁의 패배와 선조마저 의주로 파천하며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조선을 구하고자 출전을 준비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순신 장군은 조선 수군에게 말한다. "바다 위에 성을 쌓으려 하오."
배우 박해일이 '명량' 최민식에 이어 '한산: 용의 출현'에서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다. 불같던 용장(勇將)의 '명량'과 달리 '한산'에서는 고요한 듯 깊은, 그러면서도 지략가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는 박해일이라는 사람이자 배우가 가진 본연의 기질과 어우러지며 한층 섬세하게 그려졌다.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해일에게서 자신이 만난 이순신 장군의 기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해일이 본 무인이자 선비였던 이순신 장군
▷ '명량'의 이순신이 화포처럼 터질 듯한 불같은 인물이었다면 '한산' 속 이순신은 모든 것을 속으로 삼키는 거대하고 고요한 물 같았다. 본인이 생각한 이순신은 어떤 인물이었나?
우선 나라는 인물, 자연적인 기질의 배우이자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거 같다.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님을 연기한 최민식 선배님이 불같은 기운을 활용했다면, 이번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한산해전만이 보일 수 있는, 또 이순신 장군님의 어떠한 기질을 도전해볼 수 있고 잘해볼 수 있는 역을 감독님과 함께 만들어 나갔다.
장군님은 말수도 적으셨고, 희로애락의 감정 표현도 잘 드러내지 않는 분이었다는 표현을 어느 글에서 본 거 같다. 7년 전투라는 그 길고 고단한 시간 안에서 보여줄 수 있겠다는 데 동의했다. 또 '난중일기'처럼 직접 쓴 이야기 안에서는 정말 많은 일상에서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는 수장들과 술을 하셨다. 심지어 병사들까지도 불러내서 사기진작에 도움이 될까 했다.
자기 절제와 주변을 보듬는 시야가 너무나 대단한 부분이 있었고, 더불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도 있었다. 전쟁 동안 부인을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한다. 그런 의지만 봤을 때도 보통 사람이 갖고 있는 기질은 아니었다. 쓰러져 가는 나라를 버텨내는 그 강인한 기운이 유달리 더 느껴졌던 거 같다.
어디 표현하기에는 그러니 혼자 삭히셨을 거 같은데, 최종적으로 글로써 표현하는 방식을 쓰셨던 거 같다. 무인이시면서 그걸 시로도 옮기는 감성적인 측면이 풍만하셨다. 이게 너무나 한 부분으로 파악하고 인정하기가 어려운, 배우로 따지자면 이것저것이 다 되는 캐릭터였다.
▷ 역사적으로 이순신을 표현한 것과 자신이 생각한 영화 속 이순신을 하나로 모을 때 그 사이 균형도 중요했을 거 같은데, 영화 속 이순신을 어떻게 구축해나갔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번에 하다 보니 김한민 감독님은 '이순신 3부작'에서 각 해전에 어울리는 캐릭터의 테마로 배우도 달리하고, 해전의 어울리는 드라마도 달리해서 가는구나 이해가 되더라. 그래서 다시 '한산'의 이순신은 오랫동안 연구하신 분 등 다양한 분들이 하는 말씀이 수양을 많이 쌓은 단단한 선비 같은 기질이 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걸 봤다.
그런 부분들이 이번 '한산'에서 감독님이 이순신 장군을 구현해보려는 톤 중 하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적극적으로 그런 부분을 최대한 살려보려 했다. 무인의 입장에서는 조선 수군이 가진 전투 양상은 판옥선에서 시작된 대포를 쏘는 방식이다. 반면 왜국은 백병전을 포함한 근접전의 전투 방식을 가진다.
활 또한 내가 '최종병기 활' 때 활이란 소재를 다뤄봤는데, 이번 '한산'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붓이 잘 어울리는 군자 혹은 선비의 느낌과 내면 그리고 활이 잘 어울리는 무인의 느낌을 잘 살린다면, 그리고 수군과 함께 각자 맡은 역할들을 뚜렷이 보여주게 된다면 이 영화만의 개성은 살리면서 '명량'과 차별점도 있고, 충분히 도전할만한 작품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수백 명의 스태프, 배우, 감독님과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지략 대 지략의 대결…이순신 장군과 왜군 장수 와키자카
▷ 이번 영화에서 이순신은 지략가로서의 면모도 두드러진다. 변요한이 연기한 왜군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와의 지략 대결도 빛났다. 실제로는 변요한과 마주치는 장면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실제 이순신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와키자카를 상대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상대역과의 관계에서 긴장감을 만들어내야 했다.
배우 변요한씨가 캐스팅된 것에 너무 기분이 좋았다. '목격자의 밤' '보이스' '자산어보' 등 작품으로만 알고 있었다. 특히 난 '자산어보' 속 변요한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 종합적인 그의 연기 톤을 봤을 때, 활어처럼 굉장히 날것의 기운이 살아있고 와일드함이 존재하는 사람이자 배우다. 그 와일드함을 영화에서 마음껏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감독님이 안타고니스트인 와키자카에 어울리는 캐스팅을 하신 건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촬영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만났다. 또 서로 촬영 중간에 상대 진영은 어떤지 컨디션 체크도 하고. 각 수장으로서 만남이었다. 횟집에서 자주 만났는데, 정말 수군들과 대담하듯이 했다.(웃음) 거긴(왜군 진영) 항상 일본어로 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서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하더라. 간만에 만났는데도 일본어 선생님이 옆에 계셨다. 이야기하다가도 일본어 연습을 했다.
그런 걸 보면서 영화의 내용으로 나타나진 않지만, 그들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더 긴장하고 우리 쪽도 촘촘하게 준비했다. 나 자신부터 다져야겠구나 싶었고, 자극을 많이 받았다. 영화에서는 적장의 개념이지만, 동료 의식은 서로 군인들이다 보니(웃음) 더 진해진 건지 다른 영화에 비해 흥미로웠다.
▷ 물이 없는 해전 현장은 촬영에 필요한 제반 사항과 촬영 과정을 미리 시뮬레이팅하고, 특히 프리비즈, 버추얼프로덕션을 통해 배우들이 미리 영상으로 완벽하게 시뮬레이션 된 영상을 보고 동선과 감정을 사전에 인지해 리허설 시간을 줄였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머릿속으로 그림을 상상하며 연기하는 것보단 프리비즈와 버추얼 프로덕션을 상황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상황에 몰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상황을 모두가 인지하고 한 컷 한 컷 찍어나갔다. 그린 매트라는 CG를 위한 가상공간도 있었지만, 거북선이나 판옥선 등 배는 실제 크기와 비슷하게 강릉과 여수에 만들었다. 정말 전투처럼 뛰고 할 수 있게 만들어내서 어찌 보면 큰 무대이지만, 무대 세트 미술이 최소인 연극 같은 느낌이었다.
뮤지컬 장르처럼 화려한 무대 세트와는 달리 관객들에게 많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최소한의 무대 세트 같은 연극 말이다. 그래서 원초적인 느낌도 들고, 기분이 새로웠다. 그 결과물을 시사회에서 처음 결과물 봤는데 그때 느껴지는 완성된 장면의 압도감, 내가 허공에 대고 연기했던 느낌들이 살아 숨 쉬면서 장면들이 흘러가는 느낌들이 놀라웠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