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바이러스, 사건사고 등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재난 앞에서 인간성을 증명받기도 하고, 절망을 만나기도 한다. 동시에 잊고 있던 존재의 가치와 희망을 되새기기도 한다. 세월호라는 국가적 재난을 지나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 재난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비상선언'은 우리가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다시금 질문한다.
베테랑 형사 팀장 인호(송강호)는 비행기 테러 예고 영상 제보를 받고 사건을 수사하던 중 용의자가 실제로 KI501 항공편에 타고 있음을 파악한다. 딸의 치료를 위해 비행 공포증임에도 불구하고 하와이로 떠나기로 한 재혁(이병헌)은 주변을 맴돌며 위협적인 말을 하는 낯선 이가 신경 쓰인다.
이러한 가운데 인천에서 하와이로 이륙한 KI501 항공편에서 원인불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비행기 안은 물론 지상까지 혼란과 두려움의 현장으로 뒤바뀐다. 이 소식을 들은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는 대테러센터를 구성하고 비행기를 착륙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비상선언'은 최대한 현실성을 부여하려는 감독의 의도 때문인지 핸드헬드로 촬영되고, 마치 관찰하는 듯한 구도를 보인다. 화면 역시 흡사 다큐멘터리의 재질을 띠고 있다. 덕분에 시작부터 조금 더 현실성에 대한 감각을 갖고 들어가게 된다. 이처럼 영화는 전반적으로 '사실성' '현실성'이라는 감각을 바탕에 두고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엄청난 재난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우리들이기에 '비상선언' 속 재난의 현장은 다른 때보다 더 마음으로, 피부로 가깝게 다가온다. 그날 이후 트라우마를 겪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과 하지 못했다는 부채 의식을 안고 있다. 영화는 스크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를 사건의 중심으로 끌어낸다. 그게 중요한 이유는 재난이 인재일 경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사람'의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을 이어갈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심정에 더욱 이입하고,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하늘을 맴도는 비행기를 보며 더욱더 탄식하고, 지상에서 비행기 착륙 여부를 두고 찬반으로 갈린 사람들을 보며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서글퍼할 수 있다. 재난 때마다 반복되는 현실에 여전히 바뀌지 않는 사회를 보며 우리는 서로를 믿고 구하고자 하고 작은 목소리를 모으고자 한다.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힘이 되고자 한다. 이 영화 속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승객들의 모습에 생생함을 더하는 것은 초대형 항공기 세트다. 제작진은 미국에서 실제 대형 비행기를 공수하고, 비행기의 본체와 부품을 활용해 세트를 제작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비행기 세트를 360도 회전시킬 짐벌(Gimbal)을 완성해 촬영에 투입했다. 지름 7m, 길이 12m의 사이즈로 제작된 롤링 짐벌은 실제 크기의 항공기 세트를 회전시킨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영화 속 비행기의 흔들림, 승객들의 움직임 등에 '사실성'이 부여된다.
이처럼 재난 상황에 대한 묘사, 카메라 워크, 세트를 통한 구현 등 '비상선언'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사실성'이다. 그리고 '사실성' '현실성'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배우들의 연기다.
아쉬운 건 임시완이 맡은 역할이 너무 빨리 사라진다는 것이다. 재난에서 중요한 건 이를 헤쳐 나가고 살아남는 것이고, 생존자와 피해자가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다. 그리고 이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재난을 일으킨 사람을 과감하게 버리는 선택을 했다.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게 아닌 이상 재난영화는 재난에 놓인 사람들이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아무리 목숨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인간이기에 살아갈 수 있고, 서로가 서로를 지켜가며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그리며 '희망'을 전한다. '비상선언' 역시 재난영화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렇게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가고,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과 삶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140분 상영, 8월 3일 개봉,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