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총경회의가 쿠데타? 경찰장악 강행하는 윤석열 정부

전국경찰직장협의회 관계자들이 지난 25일 서울역 광장에서 경찰국 신설 반대 대국민 홍보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이 서명을 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행정안전부 내에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일선 경찰들의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들끓고 있는 경찰들의 반발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발언이다.
 
이 장관은 지난 10일 열린 총경급 간부들의 회의를 12·12쿠데타에 비유하며 단순 징계사유가 아니고 형사범죄사건이라며 강하게 규탄했다. 그러면서 회의 당일 모임을 주도한 류삼영 울산중부서장을 대기발령하고 참석자 전원에 대한 감찰에 들어갔다. 이례적으로 신속하고 강력한 조치다.
 
경찰의 반발을 잠재우려는 강경한 조치는 오히려 더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오는 30일로 예정된 경감·경위급 현장팀장회의가 14만 전체 경찰회의로 확대된 것이다. 정부의 강경대응에 경찰조직 전체가 맞서는 형국이다.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류삼영 총경 대기발령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국가공무원노조 경찰청지부와 경찰청주무관노조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법적 조치에 정부 일선 조직이 수용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조직이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이라는 점에서 치안불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행안부 내의 경찰국 신설은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지나치게 비대해진 경찰권력의 견제와 통제를 위해 이뤄졌다. 명분은 타당하지만, 추진하는 방식과 일정이 너무 거칠고 급박하다. 무엇보다 총경 이상의 고위간부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하는 문제는 경찰로서는 매우 민감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문제다.
 


수사권에 대한 간섭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행안부의 설명이지만 인사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에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선 경찰들의 주장이다. 인사권은 사실상 경찰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민감하고 중대한 문제인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경찰을 설득하거나 다른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도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거칠게 이뤄지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을 위한 시행령 개정안이 상정되는 국무회의를 개회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국 신설은 공무원법 개정이 아니라, 대통령령을 고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야당이 장악하고 있는 국회에서 공무원법 개정이 불가능 한 상황인 것을 의식한 행보로 보인다. 또한 통상적으로 40일인 입법예고 기간도 4일도 대폭 단축했다. 여기에 대해서도 경찰들은 졸속 추진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6일 국무회의를 거쳐 경찰국 신설은 다음달 2일부터 시행된다. 전광석화처럼 빠른 일정이다. 이렇게 경찰국 설치를 서두르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선 경찰들의 조직적 반발과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기 전에 이뤄져야 하고, 검경 수사권조정 법률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시기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이상민 장관의 추진 방식과 대응 태도는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총경 회의를 12.12 쿠데타에 비유한 것은 지나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휴일에 모인 경찰서장들은 무기를 들고 정권찬탈에 나선 것도 아니고, 군사작전을 벌인 것도 아니다.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일선 서장을 대기발령하고 참석자 전원을 감찰하기로 한 것도 법적 근거가 미약해 보인다. 행정소송 등이 이어진다면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성급하고 강경한 조치로 정부는 여론전에서도 밀리고 있는 모양새다. 
 
윤희근 경찰청장 내정자의 미온적인 태도 역시 경찰들의 반발을 부추기고 있다. 당초 총경회의가 끝난 뒤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을 만나기로 했던 윤 내정자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징계를 내린 것은 누가 봐도 '윗선'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지난 2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퇴근하는 모습. 류영주 기자

비대해진 경찰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처럼 비민주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신설 조직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스럽다. 경찰의 반발을 잠재울 대안도 없어 보인다. 또한 견제가 아닌 인사권 장악 같은 강력한 통제를 전제로 한다면, 경찰력을 정권 유지를 위해 악용했던 과거의 독재 권력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더구나 현직 대통령이 수사권 조정을 놓고 이전 정권과 극렬한 대립을 벌였던 검찰총장 출신이라면 경찰조직의 장악이 어떤 이유 때문인지 국민들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직의 반발을 추스르고 정부의 강력한 통제 시도를 적절히 차단하면서 경찰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은 이제 윤희근 내정자의 몫으로 남았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너무 어렵고 막중한 과제를 떠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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