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연금 줬더니 음주 운전 배신' 韓 빙상, 또 다시 악재

지난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500m 동메달을 따낸 김민석은 22일 음주 운전 사고로 징계를 받게 됐다. 베이징=박종민 기자

온갖 고난을 딛고 중흥의 길을 걷는 듯했던 한국 빙상이 또 다시 악재를 맞았다. 2회 연속 올림픽 메달을 따낸 국가대표 간판 선수들의 음주 운전 파문이다.

24일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따르면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국가대표 김민석(성남시청)은 지난 22일 저녁 충북 진천선수촌 인근 식당에서 동료 3명과 식사를 하며 술을 마친 뒤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다 사고를 냈다. 선수촌 내 보도블록 경계석과 충돌했고 선수촌 관계자에게 발각이 됐다.

연맹은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전원에 대한 선수촌 훈련 중단 조치를 내렸다. 물론 인명 피해가 나지 않았고, 경찰에 신고되지 않아 음주 수치 측정도 없었다. 그러나 음주 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더군다나 올림픽에서 2회 연속 메달을 따낸 선수들이다.

김민석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지난 2월 베이징올림픽에서 1500m 동메달을 잇따라 따냈다. 지난달 성적 우수 포상식에서 2021-2022시즌 스피드스케이팅 최우수선수상까지 받은 간판이다. 함께 술을 마시고 김민석의 음주 차량에 동승한 정재원(의정부시청)도 평창올림픽 남자 팀 추월과 베이징올림픽 남자 매스스타트 은메달을 따냈다. 각각 23살, 21살로 한국 빙상을 이끌어갈 동량들이다.

징계를 피하기 어렵다. 연맹 관계자는 "일단 김민석은 물론 함께 술을 마시고 차량에 동승한 대표팀 동료 3명까지 연맹 경기력향상위원회에 회부한 뒤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징계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화려한 재도약을 꿈꾸던 한국 빙상으로선 청천벽력이다. 한국 빙상은 2018년 평창올림픽 뒤 거의 쑥대밭이 됐다. 이른바 '왕따 주행' 사건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특정 감사를 받는 과정에서 20년 동안 회장사를 맡았던 국내 최대 기업 삼성이 연맹을 떠났고, 결국 대한체육회 관리 단체로 전락했다. 이런 가운데 연맹은 지난 2020년 치킨업계 선도 기업인 제네시스 BBQ 그룹 윤홍근 회장을 새 수장으로 모셔와 재기를 모색했고,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 광명이 찾아오는 듯했다. 이 상황에서 음주 운전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정재원(왼쪽)이 베이징올림픽 남자 매스스타트 은메달을 따낸 뒤 동메달을 수확한 선배 이승훈과 태극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 박종민 기자


한국 빙상은 베이징올림픽에서 개최국 중국의 편파 판정에도 의연하게 대처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남자 쇼트트랙 1000m에서 석연찮은 실격을 당한 황대헌(강원도청)은 1500m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따냈고, 계주 3000m에서도 동료들과 값진 메달을 수확했다. 여자 에이스 최민정(성남시청)도 심석희(서울시청)의 욕설 파문에도 1500m 2연패를 일궈냈고, 계주 은메달 등 간판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특히 연맹이 메달 포상으로 선수들에게 이른바 '치킨 연금'을 수여한 것은 화기애애한 한국 빙상의 분위기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다. 황대헌, 최민정 등이 치킨을 좋아한다고 적극 어필하자 윤 회장이 흔쾌히 60살까지 평생 치킨을 쏘겠다고 밝힌 것. 금액과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금메달리스트는 물론 올림픽 메달리스트 전원에 대해 혜택이 주어졌다.

이에 김민석과 정재원도 치킨 연금의 수혜자가 됐다. 그랬던 둘이 음주 운전 파문에 휩싸였으니 연맹으로서는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다. 한 관계자는 "간신히 한국 빙상이 정상화하게 된 상황에서 음주 운전 파문이라니 정말 참담하다"면서 "선수들이 아직도 정신이 못 차린 것 같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그동안 한국 빙상은 파벌 싸움과 짬짬이 논란, 욕설 파문, 선수촌 음주 등 숱한 악재를 겪었다. 이제 얼룩졌던 과거를 털고 새 도약을 노리던 찰나 다시 음주 파문으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됐다. 과연 연맹이 문제의 선수들에게 어떤 조치를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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