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지조가 지난 18일 첫 번째 정규앨범 '캠프파이어'를 냈다. 2020년 10월 발매한 싱글 '자양강장제' 이후 1년 9개월 만의 신곡이다. 본인 이름을 건 솔로 앨범으로 정규앨범을 내기까지 11년이 걸린 만큼, 그동안 쓴 곡들을 꽉꽉 채웠다. 신곡 14곡을 '선공개'도 없이 한 번에 세상에 내놨다. CBS노컷뉴스는 최근 지조를 만나 새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컴백 주기를 2~3개월로 잡고 적게는 한 곡, 많아야 두세 곡 담긴 싱글 앨범을 발매하는 것이 하나의 추세가 된 요즘 작업 기간도 훨씬 길고 트랙도 몇 배는 많은 정규앨범을 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지조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음악도 비즈니스니까 당연히 수익적인 거 고려해야 하고 회사(소속사)가 있으니까 제가 마음대로 다할 수는 없다. 디지털 음원 시대에 역행하는 행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뭔가… 아까웠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예전에 만들어 둔 가사는 (인제) 이 시대에 안 어울리는 음악이 될 수 있다. 아예 영영 못 쓰는 곡도 많아졌다. (이번) 수록곡 절반은 벌써 2~3년 전에 만들어둔 거여서 지금 아니면 못 내겠다 하던 와중에, 수익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몇 곡 더 실어보자는 결론이 나왔다"라며 "적당한 트랙(수)이었다. 앞으로 이렇게 열네 곡 낼 일이 없을 것 같긴 하다"라고 설명했다.
양동근, 차붐, 화나, 던밀스, 자메즈 등 피처링진 절반도 이미 2~3년 전에 섭외해 곡을 만들었다. 지조는 "(곡을) 묵혀놓으면 좋은 점이 그중에서 '쇼미더머니'에 나가는 분들이 계신다. 내 노래에 도움을 줬던 피처링진이 잘되기를 기도했다. 그러면 예전에 녹음했던 거라도 내놓으면 되니까"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10곡 전후로 담기는 정규앨범을 낼 때 한두 곡을 선공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다 추려서 한 번에 내자고 했다. 선공개는 일장일단이 있다. 선공개 곡이 너무 좋으면 정규앨범 냈을 때 실망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기대감을 낮추기 위해 별로인 곡을 선공개하기도 그렇고… 음악적인 부분에 치중을 많이 해서 (새 앨범을)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타이틀곡은 두 곡이다. 첫 번째 타이틀곡 '한국은행'은 양동근이 피처링했다. 한국에 있는 모든 은행처럼 많은 돈을 모아 언젠가 네가 힘들 때 힘이 되어주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제로금리에 가까웠던 시절에 썼는데 요즘은 하루하루 금리가 올라 상황이 확 달라졌다.
지조는 "플렉스(본인 능력이나 부에 대한 과시, 과시적 소비를 하는 것) 좋아한다. 자랑하고 싶고. 근데 (그런 생활 태도가) 저랑 잘 안 맞는 것 같더라. 내가 고작 이 정도 가지고 (타인과) 대결하기에는 좀 그렇고, 자신 있게 얘기하기에 기본적인 멋스러움에 안 맞는 것"이라고 밝혔다.
워낙 '플렉스'와 관련한 노래가 많이 나오니 조만간 그 반대의 노래도 등장하지 않을까 예측했다. 다행히 그런 곡이 거의 나오지 않아 주제 의식의 신선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지조는 "셀링 포인트이자 나만의 독특한 소구점이 생긴 것 같아서 좋다"라고 덧붙였다.
화나와 차붐이 피처링한 9번 트랙 '깡통'도 비슷한 방향이다. 지조는 "나 소시민적으로 살아, 하고 솔직한 얘기를 가사로 주로 썼던 것 같다. 남 잘되는 거 보면 시샘도 하는 덜 익은 인간이니, 나를 너무 선망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캔은 비어있으니 채울 수 있고, 또 'can'은 '~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그런 의미를 담았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타이틀곡 '삐뚤빼뚤'은 언오피셜보이가 피처링했다. 마음처럼, 계획처럼 이뤄지지 않는 삐뚤빼뚤한 인생에도 그 나름의 의미를 찾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지조는 "맨 마지막에 만든 노래라 신선했고, 더블 타이틀로 해도 되겠다 싶었다"라고 전했다.
두 곡을 타이틀로 선정한 데도 나름의 전략이 있었다. 그는 "동근 형님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분이니 ('한국은행'은) 연령대 있는 분들도 두루 들어보고 기대를 가질 만한 곡이라고 생각했다. '삐뚤빼뚤'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언오피셜보이가 참여한 곡이라 힙합 시장의 주 청취자, 연령대가 낮은 분들에게 더 맞을 것 같았다"라고 설명했다.
지조는 "대중 코드에 다가가는 걸 언제나 생각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잘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안 해봤지만 잘할 수 있는 것도 해 보자는 마음이다. 음악을 하는 일련의 과정 중 제가 아직 한 번도 성공해 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그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이어 "실패 도사리고 있는 걸 알지만 위험 요소를 아예 제거할 순 없다. 오히려 '대중성도 예술성도 만족시켜야지!' 하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다. 그러기보다는 차라리 제가 하고 싶은, 나만의 색깔을 만들 기회도 만들어봐야 나중에 뭔가 시도할 때 그게 자산이 되지 않을까 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어정쩡하면 결국 남는 건 없는 것 같다. 대중적인 색채보다는 조금 더 독특하고, '힙합'에 가까운 느낌을 주고자 했다"라고 전했다.
새 앨범 '캠프파이어'에는 타이틀곡 2곡 외에도 '개성만점' '엘도라도'(Feat. 스월비) '금강산'(Feat. 던밀스, 자메즈) '코미디언'(Feat. 서사무엘) '평화주의자' '전체관람가(Feat. 래원, 리뷰어) '깡통'(Feat. 화나, 차붐) '모델하우스'(Feat. 쿤타) '이렇게 살아'(Feat. 유명한아이) '청자켓'(Feat. 지구인) '냉장고' '가시광선'까지 총 14곡이 실렸다.
다채로운 피처링진이 눈에 띈다. 지조는 "힙합 하는 사람 중 그리 친한 사람이 없다. 그냥 아는 정도라서 거절당할 용기를 갖고 먼저 제의했다. 거절당하면 힘이 빠지고 솔직히 자존심도 상하지만 그래도 했다. 사석에서 친한 사람이 거의 없어서 한 명 한 명 시도했다"라고 말했다.
데뷔 11년 만에 정규앨범을 내는 것이라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정작 본인에게선 "조급하지는 않았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더 풍성하게 곡을 실을 수 있기에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지조는 "제가 들어도 여러 곡을 랩으로만 들으면 피곤할 것 같았다. 주제도 여러 가지를 포용하려고 했고 멜로디컬한 노래도 실었다. 당장에 큰 인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아, 이런 스타일도 있구나'를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노래도 해 본 경험을 묻자, 지조는 "이걸 프런트로 갖고 갈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김치찜이 주력인 가게에서 달걀말이는 사이드인 것처럼. (노래를) 시도는 했지만 메인으로 팔고 싶지는 않다. 보너스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라고 재치 있는 답을 내놨다.
랩과 노래를 대하는 마음가짐에도 차이가 있었다. 자신을 육상 100m 선수로 비유한 지조는 그렇기에 주 종목인 100m(랩)에서는 늘 메달을 따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사람들이 (제가) 출전하는 것도 모르는" 400m(노래)에서는 조금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정규앨범을 내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던 지조는 올해에야 그 꿈을 이뤘다. 그는 "밀린 숙제를 털어낸 것 같다. 래퍼라고 소개하는데, 뭘 하더라도 음악은 좀 내고 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라고 운을 뗐다.
"'이 노래를 하나하나 빠짐없이 들어주십시오' 하는 건 저의 큰 바람이죠. 노래를 정성껏 다 듣기는 어려울지라도 1분 미리듣기를 이용해서라도 나중에 생각날 때 들을 수 있게 본인만의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이 노래 이랬었지' 하고 떠올려주시면 (그것만으로) 굉장히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봐요. (많은) 곡 수를 자랑삼는다든지 이런 마음은 추호도 없어요. 저 자신, 또 저를 생각해주는 감사한 분들을 위해서 냈어요. 호불호는 분명히 있을 거예요. 워낙 다양하게 냈으니 좋아하는 곡이 한두 곡만 있어도 좋을 것 같고, 입소문 내 주시면 좋겠어요. 오며 가며 '이 집 괜찮더라' 하는 입소문이 나고 그로 인해 조금만 더 음악을 할 수 있게 사랑을 주시면 이번 정규앨범 내는 의미와 만족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