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링'에 속속 차는 병상…"여력 충분" 느긋한 정부

"당분간 감소세" 전망에 순차적 감축…3월말 대비 약 '9분의 1' 수준
정부 예측치 이미 벗어나…"하루 20만 확진 시 1405병상 필요" 추산
전문가 "BA.1·BA.2 유행 시 치명률 적용결과…이번엔 더 오를 수도"
"상황 닥쳐서 병상 비우라 하면 대응 불가…지금부터 준비해도 내달 초"

서울 용산구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모습. 류영주 기자

신규 확진자가 매주 2배로 불어나는 '더블링' 현상이 3주째 지속되면서 코로나19 하반기 재유행이 심화되고 있다. 당초 정부는 11월쯤에 일일 확진 10만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달 중순 7만 명대로 벌써 진입하면서 유행 정점은 더 빨리, 더 높게 다가오고 있다.
 
정부는 오미크론 변이 출현 이후 치명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 위중증은 큰 폭의 증가가 없다는 점을 들어 현재 위험도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료현장에서는 정부가 올 초 오미크론 대유행 당시 안이한 인식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과 한 달 사이 중환자 전담병상과 준중증 병상 가동률이 몇 배로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향후 피해규모도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취지다.

'11월, 16만~17만' 예측했던 정부…"내달 중순 25만" 전망치 상향

20일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전날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7만 3582명으로 지난 4월 27일(7만 6765명) 이후 83일 만에 최다치를 기록했다. 1주일 전(12일·3만 7347명)과 비교하면 1.97배, 2주 전(5일·1만 8136명)에 비해서는 4.05배 수준이다.
 
'1 이상'이면 유행 확산을 뜻하는 감염재생산지수(Rt)는 지난달 마지막 주 1.05에서 이달 첫 주 1.40, 둘째 주 기준 1.58까지 올랐다. 기존 우세종인 '스텔스 오미크론'(BA.2)보다 전파력이 높은 BA.5 변이는 국내 감염사례 검출률이 47.2%까지 올라 우세종화 초읽기에 들어갔다.
 
서울 송파구 송파구청 재난안전상황실에서 관계자들이 코로나19 확진자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박종민 기자

설상가상 지난 14일에는 이보다도 감염력과 면역회피력이 더 진화한 일명 '켄타우로스' 변이(BA.2.75)가 수도권에서 처음 발견됐다. 해당 확진자가 해외여행 이력이 없었단 점을 감안하면 BA.2.75가 몇 주 전 유입돼 지역사회에서 '조용한 전파'를 일으키고 있을 수도 있다.
 
앞서 하반기 재유행을 올 가을~겨울쯤으로 내다봤던 정부의 예측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당초 지난 4월 당시 전망은 '11월 중 약 16만~17만'이었으나 이달 들어 '9월 말 최대 18만 5천 명'으로 변경됐고, 내달 중순 약 20만에서 25만명 전후(20만~28만명)로 수정을 거듭했다.
 
문제는 현재 가파른 확산세를 고려할 때 보정된 당국의 수리모델링도 오산(誤算)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다음 달이 아니라 이달 말 20만을 찍을 판"이라며 "확진자 폭증을 막을 장치가 없기 때문에 30만도 충분히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중환자병상 가동률 한달 새 배로↑…수요 느는데 총량은 감축

코로나19 준중증·중등증병동 의료진이 업무를 보고 있다. 박종민 기자

전체 확진규모가 커지면 이에 비례해 중환자와 사망자도 늘 수밖에 없다. 전날 기준 재원 중인 위중증 환자는 91명이다. 이달 초 50명대 초반까지 떨어졌다가 33일 만에 다시 90명대로 올라섰다. 사망자는 지난 13일(12명)부터 1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루 확진자가 무려 62만여 명에 달했던 3월 17일(위중증 1159명·사망자 429명)에 비하면 매우 안정적인 수준이지만, 중요한 건 지표의 '흐름'이다. 위중증 환자는 이미 나흘 연속 증가세인 데다 앞으로 변동 폭이 더 커질 확률도 배제할 수 없다. 후행 지표인 사망자도 동반 상승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직 의료대응체계 여력이 충분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전날 기준 위중증 병상 가동률은 14.9%(1428병상 중 213병상 사용), 준중증 병상은 27.5%(2222병상 중 612병상 사용)의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이 역시 가동률 70~80%를 훌쩍 넘겼던 과거 대유행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양호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현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숫자에만 속아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당장 4주 전(6월 21일) 가동률과 놓고 비교해보면, 중환자 전담병상 가동률은 6.5%에서 14.9%로 2배 이상 뛰었고, 준중증 병상도 7.3%→27.5%로 4배 가까이 찼다.
 
수요가 늘어난 반면 총량은 오히려 줄었다. 한 달 새 감염병전담병원의 중등증 병상 등까지 합친 코로나19 병상 수는 총 6557개에서 5689개로 860여 개 감소했다. 넉 달 전인 3월 말 보유병상(5만 2578개)의 약 '9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당분간 유행 감소세가 계속되리라 믿었던 정부가 병상을 단계적으로 감축한 탓이다. 정부는 반등세가 뚜렷해진 지난 14일에야 전국 45개 상급종합병원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추후 중증병상 재가동 관련 협조를 요청했다.

유사시 동원하겠다는 정부…"닥쳐서 비우라 하면  확보되나" 

코로나19 병상. 연합뉴스

정부는 '사전에' 병상 확보계획을 수립해 '적시에' 신속하게 치료병상을 가동하겠다고 강조했지만,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전날까지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는 병상 확충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담긴 공문이 시달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3일 내놓은 '재유행 대응방안'에서 당국은 "이달 말까지 중증병상 운영 의료기관의 현장점검 결과를 반영해 코로나 전담병상 재지정 목록을 마련하고, 유사 시 재가동 명령을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하루 확진자 20만 명을 가정할 경우, 총 1405병상(중증 435, 준중증 970)이 필요하다는 추산에도 구체적인 병상 마련계획은 여전히 미정인 상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작년 말 델타 유행 시 '병상 대란'부터 오미크론 대유행의 혼란을 겪고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짚었다. 의료체계는 임박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선제적 대응이 핵심인데, 위기가 닥쳐서야 부랴부랴 병상을 쥐어짜는 '동원령'을 내리는 것은 사후약방문이라는 것이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지금 중환자병상을 한꺼번에 다시 많이 확보하긴 어렵다. 늘리더라도 단계가 필요해 어제쯤이면 몇 병상을 확보하란 지시가 올 줄 알았다"며 "병상 마련은 아무리 빨라도 2~3주는 필요해 (지금 준비해도) 다음달 초에나 확보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리 유행 징조를 보고 결정해야 되는 거지, 상황이 터지고 나서 비우라고 하면 대응이 아예 안 된다. '이맘때쯤 연락이 오겠지' 하고 병상을 비워놓는 병원이 어디 있나"라고 반문했다.
 
김 교수 또한 "병원은 각 과마다 관리하는 병동 수가 정해져 있고 고도로 전문화된 시스템이라 원장 말 한 마디로 병상이 즉각 준비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정부가) 6~7월 반등을 대비해 어느 정도 준비를 갖춰놨어야 했는데 한치 앞을 못 봤다. 결국 예전처럼 행정명령으로 밀어붙여 보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증화율·치명률에 대한 인식도 엇갈린다. 당국은 신규 변이가 잇따르고 있지만, 중증화율·치명률은 감소추세이기 때문에 의료대응을 크게 염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반면 전문가들은 해외에서도 입원환자가 늘고 있을 뿐 아니라, BA.5·BA.2.75의 위험도가 과거 BA.1 또는 BA.2보다 결코 낮지 않다고 평가한다.
 
엄 교수는 "현재 정부가 재가동이 필요하다 말하는 병상도 BA.1과 BA.2 유행 당시에 근거한 중환자 발생 예상"이라며 "BA.5는 면역회피력이 굉장히 뛰어나고, 4차접종률도 그때 3차접종률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라 치명률이 올라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도 "면역 감소로 인해 재감염·돌파감염의 위험이 커졌다. 변이는 더 강해졌는데 방역은 역주행 중"이라며 "포르투갈만 해도 우리나라처럼 접종률이 높은 나라인데 중증·사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BA.5가 일찌감치 우세종이 된 미국은 최근 신규 확진자가 13만을 넘겼고, 입원환자도 4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최초 오미크론 유행 당시보다 낮은 수치긴 하나 400명을 넘긴 사망자와 더불어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포르투갈도 올 1월 오미크론 대유행 때와 비슷한 입원환자(약 2천 명)를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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