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봤다. 할아버지가 계신 곳은 건물 2층이었지만, 1층에 들어서자마자 족히 100마리는 꼬여 있었다. 바닥에도 파리 알이 깔려 있었다. '이상하다, 이거 뭔가 있다' 싶었다".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3층짜리 건물, 2층에 거주 중이던 70대 A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건물 1층에 세들어 장사를 하는 B씨는 파리 떼가 꼬이고, A씨가 집 밖을 나오지 않자 걱정스러운 마음에 "할아버지가 두 달째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신고했다.
25일 CBS 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A씨의 사망 사실은 두 달이나 지나서 세상에 알려졌다. 해당 건물의 소유주였지만, 주변은 그의 죽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과의 교류 없이 홀로 임종을 맞고, 그 시신이 한참 뒤에야 발견된 고독한 죽음이었다.
A씨의 죽음이 뒤늦게 알려진 배경엔 그의 경제적 궁핍을 포착할 수 없는 현행 복지의 사각지대와 가족 및 주변인들과 교류가 끊긴 사회적 단절이 자리했다. 서류 상으로 건물주였지만, 수 년간 쌓인 채무에 상당 지분이 저당잡혀 있었다. 압류 목록에는 건강보험과 각종 세금 등을 제때 지급하지 못한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
부동산을 보유했기 때문에 복지혜택을 누리지도 못했고, 등본 상의 주소지가 서울이 아닌 경기도였던 점도 구청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원인이었다.
인근 부동산업자는 "A씨는 수년 전부터 여기저기 빚을 냈다. 큰 건물 갖고 있으면서도 돈 줄이 막혀 버렸다. 동사무소에서 단돈 10원 어치의 지원도 못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고자인 B씨는 "한 달 전쯤 동사무소와 구청에 '할아버지와 연락이 안 된다'는 신고했지만 '우리 지역에 주소가 등록돼 있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A씨가 관내에 실거주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주소지가 경기도여서 전산망에 등재가 되지 않았다. 또 재산이 있는 건물주라 취약 가구로 보기 어려운 비복지대상자였다"고 설명했다.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가족과의 단절도 드러났다. 주변 주민들은 "A씨가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혼자 지냈다"고 증언했다. 망자의 방을 치우는 청소업체 관계자는 "고인이 가족끼리 사이가 소원했던 것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외로운 죽음은 자주 발견되기 때문에 더 슬프다. A씨가 사망한 지 뒤인 지난 21일 서울 은평구에선 또 다른 70대 노인 C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만65세 이상의 기초수급자나 차상위계층 등을 상대로 하는 노인 맞춤 돌봄 서비스 대상자였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형편이 어려웠던 C씨는 가족과 떨어져 살다 어느 날 홀로 죽음을 맞았다. 평소 우울감을 느꼈고 병력으로 건강이 안 좋았다. 사회복지사가 일주일에 세 번 안부 인사를 다녔다. 그의 임종을 지킨 건 가족이 아니라 IoT센서였다. 집안 내 움직임이 없다는 센서의 신호를 알아차린 복지사들이 신고해 그나마 빨리 발견됐다. 시신은 곧바로 수습됐지만, 외로운 죽음이긴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고독사'의 사각지대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복지 그물망'의 허점을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사각지대의 크기라도 줄이자는 얘기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가를 보유한 상태에서 사실상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며 "서류 상으로는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어 사정이 좋아 보이지만, 실상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생활비 면에서 빈곤 상태인 사람들이다. 이들을 조사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남성의 경우 여성보다 경제적인 상황이 어렵거나 가족관계를 회복하지 못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며 "지역 단위에서 사회적 고립의 정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홀로 사는 노인들의 집안 움직임을 포착하는 IoT 센서 등 디지털 기술이 현재는 수익성이 없어 확산이 더딘 실정이다. 이런 기술 도입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도 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과 고독사의 관계성에 대해 "대부분 경제적 빈곤이 관계적 빈곤으로 이어지는 식으로 결부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인가구를 중심으로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개인정보 문제가 나올 수도 있지만 '확인이 어렵다, 관할이 아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A씨의 사례와 관련, "재산 있다고 해도 부채가 많은 경우는 위험 요소로 고려한다든지 실주거지가 법적 주소지와 다른 경우도 챙길 필요가 있다"면서 "결국 모든 노인을 감시망 안에 넣을 수 없으니 공공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